어린이집에서 부모들이 웬 총회를?
어린이집에서 부모들이 웬 총회를?
  • 기고 = 옥세진
  • 승인 2013.02.27 17:0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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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터전의 모든 것은 우리들이 결정한다

[성미산마을-베이비뉴스 공동기획] 왜 공동육아가 대안인가?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이 말 그대로 서울 도심에서 온 마을 사람들이 하나가 돼 아이를 키우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성미산마을이다. 최근 서울시가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에 적극 나서면서 성미산마을이 펼치고 있는 공동육아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베이비뉴스는 성미산마을 주민들과 함께 공동육아 기획기사를 진행한다. 성미산마을 주민들이 번갈아가며 한 달에 한 번씩 공동육아를 소개하는 기고를 쓴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성미산마을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지난 주 금요일. 터전(공동육아는 어린이집을 터전이라고 부른다) 마지막 청소를 했다. 만 5년 동안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내가 사는 집보다 더 열심히 청소를 했던 터전을 이제는 떠나야한다.

 

신입 조합원 교육, 청소, 방모임, 소위원회, 이사회 그리고 총회까지 매번 “힘들어, 언제 끝나나?”를 되풀이하던 5년. 그렇지만 ‘아이와 어른들이 함께 크는 공동육아’라는 말처럼 세 살이던 우리 아이는 여덟 살이 되었고 나 역시 공동육아의 협동정신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많이 성장했음을 절감한다. 공동육아를 하는 동안 정말 좋은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여러 가지 잊지 못할 기억들도 많다. 그 중에서 한 가지가 조합원 총회다.

 

공동육아를 하는 동안 정말 좋은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여러 가지 잊지 못할 기억들도 많다. 그 중에서 한 가지가 조합원 총회다. 총회는 내부적으로 만장일치를 지향하기 때문에 단 한 사람이 반대해도 조합원들은 그 사람의 의견을 묵살하지 않는다. ⓒ성미산어린이집
공동육아를 하는 동안 정말 좋은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여러 가지 잊지 못할 기억들도 많다. 그 중에서 한 가지가 조합원 총회다. 총회는 내부적으로 만장일치를 지향하기 때문에 단 한 사람이 반대해도 조합원들은 그 사람의 의견을 묵살하지 않는다. ⓒ성미산어린이집


공동육아를 처음 시작할 때 총회를 우습게 생각했다. 선입견이기도 했지만 그냥 안건 읽고 처리하고 일사천리로 끝날 줄 알았다. 웬걸 안건마다 자세한 설명과 궁금한 사항에 대한 질문, 그리고 생각이 다른 부분은 논쟁까지, 오후 일찍 시작한 회의가 저녁 늦게까지 이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어떤 경우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서로 얼굴을 붉힐 때도 있다.

 

길고 지루한 시간이 지나가지만 표결은 쉽게 하지 않는다. 공동육아의 정관에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내부적으로 만장일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이 반대해도 조합원들은 그 사람의 의견을 묵살하지 않는다.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되어도 지칠 때까지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합의된 사항들에 대해 조합원 개개인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물론 표결을 할 때도 있다. 통과되고 안 되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사안이거나 이견으로 인해 너무 오랜 시간(해를 넘겨) 논의가 진행되었던 안건들에 한해서다. 그런데 표결을 치열하게 한 기억이 한 번 밖에 나지 않는다. 


공동육아의 핵심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것이며 터전에서의 일상생활(낮 시간 보육)을 제외한 모든 운영을 아마(엄마, 아빠)들이 책임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총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보육료(조합비)를 결정하고 터전 운영에 관한 일체의 사항을 논의하는 자리이다. 그렇기에 무엇 하나 허투루 결정할 수가 없다. 터전 운영과 관련해서는 아이들의 생활이 달려 있는 것이고 운영경비와 관련해서는 아마들이 부담해야 할 금액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총회의 핵심은 뒤풀이에 있다. 회의 때 생긴 감정이 있다면 풀어야 한다. “내 말이 맞는데 왜 안 들어주는 거야? 도대체” 농반진반의 항의가 이어지고 웃고 떠들다보면 어느새 총회 때의 언쟁은 사라지고 없다. ‘성미산공동육아 아마’라는 우리만 남는다. ⓒ성미산어린이집
총회의 핵심은 뒤풀이에 있다. 회의 때 생긴 감정이 있다면 풀어야 한다. “내 말이 맞는데 왜 안 들어주는 거야? 도대체” 농반진반의 항의가 이어지고 웃고 떠들다보면 어느새 총회 때의 언쟁은 사라지고 없다. ‘성미산공동육아 아마’라는 우리만 남는다. ⓒ성미산어린이집

 

성미산어린이집은 일 년에 두 번 정기총회를 연다. 한 번은 연초에 한 번은 가을에, 1월 정기총회는 작년 한 해를 평가하고 새로운 해의 살림살이와 터전 운영을 논의한다. 가을 정기총회는 상반기 평가와 함께 다음 해 이사진을 미리 뽑는다.

 

이사들을 미리 뽑는 이유는 터전 운영을 총괄하는 이사들이 업무 인수인계를 통해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물론 조합원 또는 이사회의 요구로 중간 중간 임시 총회가 열린다. 총회가 자주 열린다는 것은 터전에 일이 많다는 것이다. 방모임, 소위모임, 이사회 등 총회가 아니더라도 시간을 내야할 일이 많은데 총회까지 겹치면(총회는 대부분 주말이다) 피곤해진다.

 

한편 작은 문제들은 기존 회의나 ‘열린 마루’라는 자유토론을 통해 풀리곤 한다. 그런데 총회까지 소집하는 것은 모두가 모여 결정해야 할 만큼 중요한 문제이거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가 조합원들 사이에 매우 크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총회의 핵심은 뒤풀이에 있다. 치열한 회의를 마치고 그냥 갈 수 없다. 회의 때 생긴 감정이 있다면 풀어야 한다. 매일 얼굴을 맞대야 하는데 풀지 않으면 더 큰 생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이어지지 않도록 복기하는 시간을 가진다. “내 말이 맞는데 왜 안 들어주는 거야? 도대체” 농반진반의 항의가 이어지고 웃고 떠들다보면 어느새 총회 때의 언쟁은 사라지고 없다. ‘성미산공동육아 아마’라는 우리만 남는다. 

 
총회는 준비도 힘들다. 어린이집 이사가 되면 처음으로 하는 것이 총회 준비 업무다. 총회 준비를 위해 신구 이사진들이 모여 워크숍을 한다. 이사가 되어 워크숍 당일, 강화로 갈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빨리 마치고 즐거운 밤을 보내겠다는…. 그러나 회의는 새벽 다섯 시가 넘어서 끝났고 이사들은 피곤한 나머지 그냥 서울로 돌아왔다. 그 허망함이란. 한 번도 일찍 끝났다는 소리를 나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다.

 

공동육아는 협동조합이다. 사람들은 종종 이 사실을 잊어버린다. 협동조합의 주인은 조합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총회 참석은 조합원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자 의무이다. 우리 터전은 총회 불참 시 벌금을 부과한다. 예외는 오직 직계 가족의 결혼식 등 행사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사촌조카 돌잔치가 겹쳤다. 그날은 조합원 정기 교육까지 동시에 있는 날이었다. 사촌조카 돌잔치를 빠질 수는 없는 법. 그날 나는 총회, 교육 불참 벌금까지 시가 두 배의 돌 반지를 조카에게 준 셈이 됐다.


협동조합 기본법이 작년 12월 1일 발효됐다. 이제 5인 이상만 모이면 누구나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게 됐다. 협동조합 생활 오 년 동안 체득한 협동조합 성공 비법. 그것은 소통이다. 같은 목적과 필요에 의해 협동조합이라는 테두리에 모였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공동육아도 마찬가지다. 육아라는 공통의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운영에 있어서는 각자의 생각이 다르다. 그럼에도 어른 60여 명이 모여 흩어지지 않고 터전을 유지하는 비결은 바로 ‘총회’라는 소통의 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형식적인 의례가 아니라 모든 것을 풀어 놓고 모두가 함께 결정하는 총회의 기능은 협동조합에 있어 매우 소중하다.


마지막 총회를 참석하지 못했다. 감사임에도, 먼 곳에 있는 동안 총회 생각이 났다. ‘마지막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을 텐데’하는 생각과 함께 마음속으로 외쳤다. 총회여 안녕! 나는 이제 터전을 떠난다. 그동안 함께한 아마들의 얼굴이 오버랩됐다. <끝>

 

글쓴이 = 비비(옥세진, 지운 아빠 / 성미산어린이집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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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ay**** 2013-02-27 17:50:00
공동육아
너무 좋은 아이디어로 시작해서~ 이렇게 발전하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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