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 개구쟁이의 파란만장 한글 이야기
천방지축 개구쟁이의 파란만장 한글 이야기
  • 칼럼니스트 원혜진
  • 승인 2013.04.03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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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한글 몰라도 괜찮으니, 책 많이 읽어주시랍

[연재] 우리집 보물 넷, 사람 만들기

 

둘째가 1학년에 8명인 작은 학교에 입학했다. 사실, 한글 뗀 지 불과 얼마 안 돼서 걱정이 많았다. 그래도 읽는 건 웬만큼 하는지라 저 좋아하는 책 읽기에는 크게 무리가 없는데, 세부적으로는(?) 아직까지 많이 힘들겠지 싶기는 했다. 형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혼자 6세 초반에 한글을 터득했는데, 둘째는 7세 후반이 돼서야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무지 애쓰셔서) 지금만큼이나마 알게 됐다.

 

우리 아이 학교는 홈페이지 대신 포털사이트 카페에 수업 내용, 학교 생활을 올려주셔서 늘 재미나게 감사하게 아이의 학교 생활을 훔쳐보고는(?) 한다. 그런데 지난번 담인선생님께서 올려주신 수업 활동 동영상에 우리 아이만 빠진 7명의 모습을 봤다. 아이에게 엄마 너무 속상하다고 이야기했더니, ‘어, 선생님도 똑같이 말씀하셨는데’하는 천진난만한 녀석. 너는 뭐했냐 하니, (다른 아이들을 모음을 주워서 읽으며 지나가는데) 그냥 슥 지나갔지,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해서, 그래도 열등감은 없구나, 안도했었다. 공부 아닌 다른 활동에서는 너무나 활달한 모습을 보여주는지라, 조금은 맘을 놓고 있기도 했다. 그래 읽기는 어느 정도 읽어도, 모음 따로 자음 따로 보려면 힘들겠지, 모르는 글자 조합도 얼마나 많을까 싶었다.

 

그런데 오늘, 첫째 둘째 수영 끝날 시간에 데리러 갔는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수영선생님께서 둘째가 선생님 말씀을 하나도 안 듣고, 제멋대로 뛰어다니며, 야단맞을 때도 딴 짓만 하고 수영은 하나도 안 했다고 말씀하셨다. 몸둘 바 몰라, 죄송합니다, 잘 타이르겠습니다, 말씀을 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천방지축 개구쟁이 우리 둘째, 학교에서도 수영 강습에서도 안 봐도 모습이 그려진다. 한시도 가만 안 있고, 싫으면 도망가고, 선생님 말씀? 가뿐히 무시했겠지.

 

둘째가 쓴 반성문 2013.04.02 ⓒ 원혜진
둘째가 쓴 반성문 2013.04.02 ⓒ 원혜진

 

수영장에서 나온 아이에게, 일장 연설을 늘어놓고는, 저녁은 없다고(!) 했다. 형과 동생들이 차에서 사과와 우유를 먹을 때 침만 꿀꺽꿀꺽 삼키다, 집에 와서는 형과 동생들 저녁 먹는 걸 보며 뒤돌아 앉아 있던 우리 둘째. 너 저녁 못 먹으니 엄마도 굶겠다며, 뭘 잘못했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반성문을 쓰라고 했더니, 모르는 글자는 물어가며 반성문을 써놓았다.

 

번역하자면,

 

1. 수영장에서 수영선생님께서 혼내셨다. 왜냐하면 수영선생님 말씀을 안 들어서 그랬다. 그리고 내일은 수영을 잘 할 거다.

 

2. 내일은 수영 선생님 말씀을 잘 들을 거다.

 

도치맘(ㅠㅠ), 아이의 글에 감동해서, 아이 몰래 눈물을 훔치며, ‘내일 또 선생님께 여쭤보고, 선생님 말씀 안 들었다 그러면 진짜로 밥 못 먹을 줄 알라고!!!!’ 엄포를 놓고, 얼른 따뜻한 밥 한공기 떠주었다.

 

녀석, "엄마, 나 아까 멸치 반찬 보고, 입에 군침이 딱~~ 돌았었어요" 하며 우적우적 잘도 먹었다. 가뜩이나 깡마른 녀석들 먹는 거 보면 무조건 배부른 엄마인데, 오늘 간만에 저녁 굶기려다가 실패했다.

 

엄마가 국어논술 경력 18년차 강사인데, 정작 엄마는 아이들 한글 안 가르치고, 맞춤법 전혀 안 가르친다. 그저 많이 이야기해주고, 책 많이 읽어주고, 책 좋아하게, 엉뚱한 상상하면 폭풍칭찬하고, 한글 알면 책 많이 읽게, 그렇게만 유도한다. 아직 저학년이니까.

 

그래도 에미인지라, 한번씩 우리 아이가 뒤쳐진다 느껴질 때 갈등될 때 있지만, 첫째가 받아쓰기 50점 받아도, 둘째가 자음을 꺼꾸로 써도 (왼손잡이이다ㅠㅠ) 우리 아이들 넷은 벌써 <홍당무>도 읽고 <오페라의 유령>도 읽고 <어린왕자>도 읽는다고, 엄마가 들려주는 고전 명작을 눈을 반짝이며 듣는 아이들이라고, (속으로만) 외친다.

 

세 살에 한글 뗀 아이, 나중에 책 좋아한다는 보장 없다. 1, 2학년 때 받아쓰기 100점 받은 아이, 고3 때 언어영역 점수 낮으면 무슨 소용인가, 책 많이 읽으면 이해력 좋아지고 감수성 예민해진다. 그리고 각 학교마다 서술형 평가, 엄청나게 늘어나는 추세이다. 무조건! 우리 아기들 책 많이 읽어주시라. 무조건 재미나게!!!

 

봄나들이 나선 4남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원혜진
봄나들이 나선 4남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원혜진

 

*칼럼니스트 원혜진은 3남 1녀(04년, 06년, 08년, 11년생)를 키우는 주부이다.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학원, 도서관 등에서 논술 강사로 일해 왔다. 홈스쿨링과 자연 속에서의 삶을 꿈꾸며, 집안일하는 것보다 아이들과 책 읽고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철없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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