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하면 당장 일에 지장이 오니 주변 동료와 상사가 불편해지고 입덧이라도 하는 날에는 죽을죄를 지은 죄인이 됩니다.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의 처지에 놓인 직장 여성들이 더 많은 이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은 직장과 맞바꿔야 하는 엄청난 모험이자 고통입니다. 몇 년간 청춘과 젊음을 바쳐 열심히 일했더라도 임신하는 순간 그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됩니다."
부산 금정구청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일하다 얼마 전 재계약에서 탈락한 김지연(가명·33) 씨가 직접 쓴 글의 일부다. 이 글은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등의 단체들이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 앞에서 개최한 '부산시 금정구청 직장어린이집의 임신한 보육노동자 해고 규탄 기자회견'에서 공개됐다.
김 씨는 지방계약직 공무원으로 어린이집에 입사해 5년간 근무하다 지난 2월 19일 계약만료를 앞두고 교사 공개모집에 응시했지만 임용되지 못했다. 5년간 함께 일했던 다른 보육교사 2명은 재계약됐다.
김 씨는 면접 당시 임신 8개월이었다. 김 씨는 부산광역시와 어린이집연합회로부터 표창장을 받을 만큼 열심히 일했음에도 재계약되지 않은 이유를 꼽자면 임신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김 씨는 글을 통해 "근속자 3명 중 임신한 나만 떨어진다는 것은 '임신한 사람을 지금 다시 뽑으면 출산휴가도 줘야 되고 대체 인력을 뽑아야 해 번거롭다'는 윗자리들의 마인드가 어떤 힘을 발휘하지 않았겠느냐"며 "비정규직 여성에게는 임신하는 순간 미래는 없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오는 20일이 출산 예정일이지만 그간의 스트레스로 조기 분만의 위험이 있어 계속 병원을 다니고 있는 상태다. 김 씨는 "실제 내가 목격하고 경험한 바로는 임신으로 사직을 권고 받는 게 당연한 분위기다. 본인이 알아서 좀 나가주기를 바라는 눈치를 주는 것이 참 고통스럽다"며 "구청이 이런데 다른 사업장은 어떨까 싶다"고 털어놨다.
김 씨는 "임신한 여성을 보호하는 법을 더 현실적으로, 면밀히 검토하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당당히 요구하고 쓸 수 있고 복직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단체들은 한 목소리로 해당 보육교사의 원직복직과 보육노동자의 임신·출산 권리 쟁취를 촉구했다.
단체들은 "금정구청에서는 임신한 보육교사에게 산행을 강요하고 술도 권하고, 임신한 배가 보기 싫다며 앞치마로 가리라는 말로 표현 못할 인권침해까지 벌어졌다"며 "임신 및 출산을 이유로 여성노동자를 해고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음에도 가장 모범을 보여야 할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를 임신을 이유로 해고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명화 보육협의회 부산지역 대표는 "보육노동환경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안아 해결해야 할 공공기관이 임신한 보육노동자만 재고용에서 탈락시킨 것은 매우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이자, 박근혜 첫 여성대통령의 여성정책을 통째로 거스르는 사안"이라고 꼬집었다.
또 김경자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의 권한으로 공공기관부터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정책을 만들고 법으로 제도화해서 여성의 임신과 출산 권리가 보장되도록 자기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사무국장은 "금정구청이 해고된 교사를 원직 복직시킬 때까지 함께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부산 금정구청 인사담당자는 10일 베이비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해당 보육교사는 면접위원 점수를 적게 얻어서 신규임용 자체에서 불합격했을 뿐, 임신을 이유로 임용되지 않았다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자질이 우수한 교사를 뽑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담당자는 보육교사에 대한 인권침해와 관련해 "다른 보육교사들도 그런 일이 없었다고 얘기하고 있다. 우리는 인권침해를 하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