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일개미로 키우지 말자
아이를 일개미로 키우지 말자
  • 칼럼니스트 이승현
  • 승인 2013.05.0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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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교육의 가장 심각한 폐해는 ‘내적 동기의 상실’

일반적으로 아이 출산 후 효심이 깊어진다고 한다. 부모님이 나를 힘들게 키우셨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으면서 보다 효녀·효자가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은 통계적으로도 입증된 바 있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아이를 키우는데 많은 정성이 요구됨을 의미한다. 태어난 뒤 이토록 오래, 세심하게 보살펴야 하는 동물은 인간 밖에 없다. 수시로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고, 한밤중에도 2시간마다 젖을 먹어야 하며, 체온과 기온을 적절히 유지해줘야 한다. 이 시기가 지나도 이유식을 해 먹이는 등 부모의 노력은 계속된다.

 

부모는 이러한 고생을 보상받으려는 심리를 가지기 쉽다. 뽀송뽀송한 아이의 웃음 한번이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가도, 막상 아이가 성장하면서는 내가 못했던 무언가를 얘가 이뤄냈으면 하고 바라면서 교육에 열정을 쏟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아이가 눈을 부릅뜨며 ‘나 이거 안 해!’라고 소리치기라도 하면,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서운함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물론 아이의 교육에 반드시 부모의 보상 심리가 투영되는 것만은 아니다. 아이보다 먼저 살아보니 대한민국은 땅덩어리가 좁고 경쟁은 치열한데, 이 살벌한 세상에서 우리 아이만큼은 도태되지 않고 떵떵거리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학원, 저 학원 보내는 것이다. 그러다가 옆집 엄마들이 ‘이 학원이 좋대!’라고 속닥거리면 혹여나 우리 아이만 뒤처지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 다른 지출을 줄여가면서라도 교육비에 재정을 쏟는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아이를 망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은 바로 부모이다. 내 자식에게 충분한 교육을 제공하고자 하는 마음이야 당연하지만, 그게 늘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부모는 ‘열심히’ 하기 이전에 ‘방향부터’ 점검해야 한다. 동쪽으로 가야 하는데 서쪽으로 열심히 달려봤자 목적지에서 더 빨리 멀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나친 교육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지나친’이라는 단어는 ‘아이의 내적동기를 깎는’이라는 말과 바꿔 쓸 수도 있다. 내적동기는 심리학에서 등장하는 용어로, 풀어 쓰자면 행동 자체에 즐거움을 느껴 발생하는 능동적인 동기이다. ‘호기심, 도전, 열정’ 등이 대표적인 내적동기이다. 이에 대비되는 용어는 외적동기로, 보상을 목표로 하는 수동적인 동기이다. 돈이나 명예, 승진을 쫓는다면 외적동기에 의해 일하는 것이다.

 

내적동기는 힘이 세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스티브잡스이다. 그는 애플에서 쫓겨났다가 CEO로 복귀하면서 연봉은 오직 ‘1달러’만 받겠다고 자청했다. 일 그 자체가 즐거웠기에 외적 동기에 해당하는 임금은 사실상 배제한 것이다. 결국 그의 열정은 IT업계의 패러다임을 뒤바꿔놓았고, 애플은 혁신의 대명사가 됐다.

 

축구선수 이영표 또한 내적동기를 중시했다.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라는 이영표 선수의 명언은 그의 인생관을 대변한다. 결국 그는 높은 내적동기로 대한민국의 열악한 축구환경을 극복, 세계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축구선수가 됐다.

 

자, 이제 시선을 돌려 보자.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하교하기가 무섭게 각종 학원에 다니고 여러 개의 학습지를 푼다. 그러나 우리의 뇌에는 한계가 있다. 많이 가르친다고 해서 아이의 뇌가 다 흡수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무리한 교육의 가장 심각한 폐해는 ‘내적 동기의 상실’이다. 좋아하지 않는 분야를 강요받는 아이는 현실 세계에 대한 흥미를 잃어 간다. 이런 아이들이면 게임중독에 빠져들기 딱 좋다. 현실세계와 달리 게임 속의 ‘나’는 주도적이며, 그 속에서 왕으로 군림할 수도 있기 때문에 도피처로 적당한 것이다. 이처럼 어린 시절에 ‘현실 세계는 재미없다.’라는 인식이 굳어진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고생해서라도 배워놓으면 다 쓸모가 있다.’라고 항변하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기교육의 1세대들이 이제 막 대학과 사회에 진출하며 ‘조기교육은 내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다 쓸모없는 것들이었다.’라고 증언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조기교육은 아이의 적성과 재능을 파악하여 내적동기를 키워주는 데 그 목적이 있어야 한다. 사람의 적성은 고민이나 자기성찰로 찾을 수 없고, 경험으로만 찾을 수 있다. 그 분야를 직접 겪어 봐야만 ‘내 일’인지 아닌지 파악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조기교육이라면 바람직하고 권장할 만하다. 아이가 좋아하는 분야를 발견한다면, 내적동기는 당연히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래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에서 부지런한 개미는 풍요로운 겨울을 나고, 베짱이는 노래만 하다가 죽을 위기에 처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반대 결말의 new version이 나왔다. 개미는 일만 해서 관절염을 얻고, 베짱이는 노래를 열심히 해서 슈퍼스타가 됐다는 것이다.

 

이는 시대정신이 ‘성실 중심’에서 ‘동기 중심’으로 넘어간 점과도 연관된다. 정보가 넘쳐나고, 소비자의 욕구가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단순히 성실하기만 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몰두하는 사람이 훌륭하게 과제를 해결하며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다. 또한 학력은 더 이상 리더의 조건이 되지 못하며, 이러한 변화는 사회 전반에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필자가 재직하던 삼성계열사의 CEO 역시 지방대 출신이었다.

 

성공의 측면에서 뿐만이 아니다. 행복의 측면에서도 아이는 일개미보다 베짱이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세대는 상황이 주어지는 대로 살아왔던 일개미였다. 그로 인해 서른, 마흔이 되어서도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라며 한숨 쉬는 경우가 허다하다. 적어도 내 아이에게는 똑같은 아쉬움을 물려주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를 일개미로 키우지 말자. 현실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눈이 반짝거리는 베짱이로 키우자. 열정의 불씨가 활활 타오르도록 도와주고, 그 불을 꺼뜨리지 않도록 자신의 선택을 늘 점검하자. 훗날 ‘엄마아빠 덕분에 이 분야를 찾았고 난 정말 행복하다’라는 이야기를 아이에게 듣는다면, 부모로서 이보다 더 큰 보람이 있을까.

 

*칼럼니스트 이승현은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삼성그룹에서 3년간 근무했다. 직장인에게 희망과 교훈을 주는 소설 'Suggestion'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는 (주)Mind solution에서 재직하며 진로적성 프로그램과 문화교육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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