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피해자가 내 가족이었다면···
[취재수첩] 피해자가 내 가족이었다면···
  • 정가영 기자
  • 승인 2013.07.17 0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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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존재이유 생각해, 피해자 마음으로 돌아가 정책 펼쳐야

지난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관련법’ 공청회. 이날 공청회에는 환경부, 기획재정부, 복지부를 비롯해 환경전문가, 법률전문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등이 참석해 입법에 대한 진술 및 토론을 진행했다.

 

이날 공청회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불거지고 햇수로 3년이 돼서야 피해자들을 위한 실효성 있는 법의 입법을 위한 자리였다. 많은 피해자들은 공청회에 참석해 법의 방향과 쟁점 사항 등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들이 나눠지길 소망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공청회 내내 환경부와 기획재정부의 입법 반대 입장만을 몇 번이고 재확인하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아야만 했다.

 

이날 환경부는 “특별법 제정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소송 진행 중이고 유사법률 양산 가능성 등을 고려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우선 현행 제도를 활용해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지원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펼쳤다. 피해자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당장 지원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는 것이 실효성 있는 방안이라는 셈이다. 이 같은 의견은 기획재정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들 부처가 말하는 ‘당장 지원할 수 있는 대책’은 현실적으로 마땅치 않다. 환경부가 대책방안으로 내세운 ▲긴급의료지원 ▲장애인등록 ▲희귀난치성질환 지정 지원 ▲재난적 의료비 지원대상 포함 지원은 모두 피해자나 피해가족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대책이 아니다. 긴급의료지원은 1회당 300만 원씩 총 2회에 국한돼 있으며 소득·재산 기준이 긴급지원요건에 합당해야만 한다. 이는 폐이식 수술로 1억 원이 넘는 수술비를 내고 매달 350여 만원의 약값을 지불해야 하는 피해자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지원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희귀난치성질환으로 지정되면 건강보험 급여총액 중 본인부담금 경감(10%로 경감, 차상위 계층인 경우 전액 지원), 중증질환에 대해 호흡보조기 등 대여료 및 간병비 등 의료비 지원이 이뤄지지만, 선천성 유전질환으로 규정하고 있는 현 제도를 거스르면서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희귀난치성질환으로 규정하기도 쉽지 않다.

 

애초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관련법은 현행법상으로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정부 측의 입장을 고려해 발의됐다. 법적 근거가 없어서 부처 간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한 정부에게 실효성 있는 법을 만드니, 이제는 정부가 나서 국가의 책임을 다해달라는 국민들의 바람을 담은 법안들이다. 하지만 정부에게 구제법 제정이라는 부담감은 피해자와 피해가족이 몇 년간 흘려왔던 피눈물의 고통보다도 우위에 있는 듯하다.

 

공청회에 참석해 있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게 있었다. ‘국가의 존재 이유’다. 왜 대한민국은 존재하는가? 국민의 생명과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하고 그 아픔마저도 외면한다면 국가가 존재할 이유는 없다. 가습기살균제를 만든 기업, 가습기살균제를 만들고 판매될 때까지 제대로 된 관리를 해주지 못한 정부로부터 어떠한 보상도, 제대로 된 사과도 받지 못한 피해자들이다.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의 입법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공청회에 앉은 피해자들을 뒤로한 채 ‘다른 지원’을 찾아보자는 말만 내뱉는 정부 관계자들이 진정 국민을 생각하는 정부의 대표자들인지 의문일 수밖에 없다.

 

이날 여당 의원으로 유일하게 참석한 김상민 의원은 정부 관계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피해자가 가족이었다면 어떤 심정이었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내, 사랑하는 자녀를 더 건강하게 하려고 가습기살균제를 넣었는데 죽었다, 그리고 고통스럽게 살아도 하는 일도 하지 못할 정도로 가정이 피폐해졌다면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정부 관계자들은 조심스럽게 “상당히 애석하고 아쉽다”,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을 것 같다”는 답변을 했다. 김 의원은 “피해자의 마음을 갖고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의 말처럼 정부 관계자들의 가족이 피해자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떤 마음으로 정책 방향을 정할지 답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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