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부모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쓰는 편지 - 가고 싶은 유모차
박근혜 대통령님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덴마크 거주 1년을 앞두고 있는 주부 김경진이라고 합니다. 제 딸은 현재 세 살이고, 이제는 유모차에 타는 것을 벗어날 때도 되었지만 자가용을 사용하지 않는 저로서는 아직 유모차를 즐겨 이용합니다.
작년에 처음 덴마크에 왔을 때가 생각나네요. 사정상 아이 아빠가 먼저 덴마크로 오고 저는 30개월가량 된 딸과 나중에 출국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원래 사용하던 유모차가 충분히 휴대용으로 사용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매우 가벼운 휴대용 유모차를 한 대 구입하여 나오게 되었습니다.
덴마크 생활에서 차를 사기는 저희 가족의 재정상황상 쉽지 않았기 때문에 자전거와 버스를 이용하여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늘 자가용을 이용하여 다니는 것이 생활화되어있었기에 처음에는 먼 거리를 걷고 버스를 기다려 타는 것이 쉽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처음 유모차에 아이를 싣고 버스를 타는 날. 일단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를 유모차에서 내리게 한 후 유모차를 얼른 접어서 바닥에 두었습니다. 두 손이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배낭형 책가방에 아이 짐과 제 소지품을 넣고 등에 맸습니다. 그리고 저 멀리서 버스가 보이기 시작하자 얼른 유모차를 어깨에 매고 버스 티켓을 꺼내기 쉬운 주머니로 옮긴 후 아이 손을 잡고 잔뜩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버스가 도착했을 때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후다닥 달려가 아이를 먼저 버스에 올리고 저는 배낭과 유모차를 어깨에 맨 채로 뒤뚱거리며 얼른 올라탔습니다. 일단 아이를 앉히고 버스 티켓을 찍은 후 자리에 앉으니 '성공이다'하는 생각과 함께 '휴'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몇 정거장 가지 않아 다른 아기 엄마가 버스에 올라타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엄마는 한국에서는 찾아보기도 힘든 매우 큰 수레형 유모차를 밀며 뒷문으로 유유히 올라타서 유모차의 브레이크를 건 후 침착하게 앞으로 가서 버스 티켓을 찍고 돌아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버스는 저상버스였고, 유모차가 탈 때는 버스를 내려서 타기 좋게 해 주었습니다(덴마크에는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입니다).
나중에 살펴보니 버스는 인도가 있는 곳에서는(인도가 없는 곳은 자전거 도로가 있는 곳에 차를 댑니다) 늘 인도에 최대한 붙어서 차를 대기 때문에 유모차가 타기 매우 쉬웠습니다. 또한 버스 안에는 유모차를 댈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있고 다른 짐을 가지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유모차가 타면 항상 양보를 해 줍니다. 물론 자리의 부족과 안전 때문에 한 번에 두 대의 유모차만 탈 수 있습니다.
지하철과 시내를 다니는 기차는 어땠을까요? 지하철과 시내를 다니는 기차도 모든 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고 경사로도 있는 곳이 많습니다. 그리고 자전거와 유모차가 탈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어서 다른 승객들도 불만이 없이 기차나 지하철을 탈 수 있습니다.
시설만이 문제라고요? 제 생각은 아니라고 봅니다. 버스를 탈 때 버스 운전자는 유모차가 타면 항상 안전하게 설 수 있게 기다려 줍니다. 그리고 덴마크에는 한국보다 훨씬 자주 지하철이나 시내 기차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납니다. 게다가 고치는 속도도 매우 느려서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유모차를 밀고 잠깐만 서성거리면 금세 사람들이 다가와서 도와주겠다고 나섭니다. 여자 남자 가릴 것 없이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봅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을 때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기차나 지하철을 탈 수 있습니다. 물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보다 힘들지만 마음은 더 따뜻해집니다.
이번 여름에는 유모차를 끌고 덴마크 이곳 저곳을 여행했습니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는데 유모차는 저를 힘들게 하는 짐이 아니라 아이를 재우고 저의 가방까지도 주렁주렁 매달 수 있는 고마운 이동 수단이었습니다.
요즘은 자전거 타는 실력이 많이 늘어서 가까운 거리는 아이를 자전거(자전거에 트레일러 부착)에 싣고 자전거 도로를 이용하여 다닙니다. 많은 덴마크 사람들이 그렇게 합니다. 저야 차가 없지만 그 사람들은 대부분 차가 있어도 자전거를 이용하여 가까운 거리를 다닙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보면 공사하는 구간을 많이 만납니다. 공사를 할 때도 항상 자전거와 유모차를 배려하여 임시로 철판을 깔아놓은 곳에도 아스팔트로 경사로를 만드는 것은 잊지 않습니다. 대통령님 매우 작은 것이지만 작은 경사로가 유모차가 휠체어를 얼마나 자유롭게 하는지 기억해 주시고 꼭 정책으로 실천해주세요.
유모차를 이용하여 버스타고 다니기, 자전거를 이용하여 아이와 함께 다니기. 모두 꿈만 같은 일이라고요?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배려를 잊지말아주세요. 버스는 더 많은 돈이 들더라도 미래를 위해 점차 저상버스로 점차 바꾸어주세요. 조금만 천천히 해도 되는 사회로 만들어주세요. 공사를 하거나 시설을 점검할 때 조금만 더 신경 쓸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주세요.
작은 배려와 따뜻한 마음이 행복지수 1위의 국가를 만든 다는 것을 몸소 느낍니다. 한 가지만 더!! 어린이 집이 쉬거나 봐 줄 사람이 없을 때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는 것을 회사가 배려해 주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어주세요. 이것은 또 다른 차원의 새로운 운동이 되기를 바랍니다.
◇ 대통령에게 쓰는 편지 공모 안내
'박근혜 대통령에게 쓰는 부모들의 편지 - 가고 싶은 유모차' 공모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응모할 수 있습니다. 유모차를 이용하면서 느꼈던 불편했던 점과 유모차를 이용하게 되면서 교통약자에 대한 자신의 시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적어 보내면 됩니다. 심사를 거쳐 채택된 원고에는 소정의 원고료가 지급됩니다. ▶ 보내실 곳 ibabynews@ibab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