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웨딩뉴스팀 김고은 기자】
십수 년 일해 왔지만 여전히 밥벌이는 쉽지 않고 새까만 인파를 헤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못내 헛헛하다. 아내에게 걸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꼼쳐둔 돈으로 가끔 술이나 한 잔 걸치는 게 그나마 낙이라면 낙이랄까. 치열하고도 나른한, 쓸쓸하지만 감미로운 일상.
‘아내는 밥이다’(조성원 저, 해드림출판사, 2013)는 이러한 시간을 지난 중년 남성이 써 내린 수필이다. 아내처럼, 밥처럼 친근하지만 매일같이 부대끼는 일상을 담백하게 담았다. 삶의 뜨거운 오후를 지나는 이들에게, 노을 녘에 다다른 이들에게 단편적 순간을 통해 생의 의미를 환기하게 한다. 정신없이 앞만 보며 가지 말고 주변도 둘러보라며 시선을 조른다.
저자의 아내는 책 곳곳에서 등장한다. 걸레질을 하다가, 동네 아낙들과 수다를 떨다가, 뜨개질을 하다가 저자의 시선에 걸려든다. 우악스럽지도 않고 마냥 호락호락하지도 않은 아내다. 저자는 속보이게 아내 자랑을 한다거나 슬쩍 묵혀둔 사랑 고백을 하는 것 대신 아내가 보여주는 그대로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삶을 들여다본다. 그중 한 단락이자 책 제목인 ‘아내는 밥이다’에서 그 정서를 엿볼 수 있다.
“어쩌다 내가 밥을 하면 똑같은 밥솥에 밥인데 맛이 없다. 아들은 반의반도 안 먹는다. 아내의 밥상은 헐한 반찬에 김치 한 쪼가리를 얹어도 차지고 맛이 있다. 밥은 한솥의 문화답게 따스한 정서를 가진다. 아내 밥이 차지다 싶은 것은 정성과 정서가 먼저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란 생각을 한다.”
“아내는 아무리 아파도 밥은 짓고 드러눕는다. 숱한 세월 지긋지긋도 할 텐데 여전히 밥을 짓고 나 또한 질리지만 늘 아낌없이 먹는다.”
수도꼭지, 걸레, 연필, 전봇대 같은 흔하고 하찮은 물건에 스민 이야기도 풀어놓는다. 수도꼭지에 똑똑 흐르는 물에 비유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말하고 전봇대를 보며 흘러간 세월을 추억한다. 그늘서 한숨 쉬어가는 선비처럼 느긋하게 수를 읊는다.
황혼을 앞에 둔 저자의 마지막 고백이 저릿하다. 뜨거운 청춘에서 허덕이고 있다면 한 번쯤 ‘씨름 같던 결혼생활’의 초야를 지난, ‘알다가도 모를 세상사’를 한 시절 지난 2~30년 후의 자신이 들려주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 저자는 호된 감기를 치른 후 “조금 더 참고 견뎌 내 볼 것이 이 세상이다”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아프고 난 뒤의 해방감 속에서 지난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에 대해, 그 시간을 채우고 있는 것들에 대해 고마움을 표한다.
“조심스레 가슴팍 단추 하나를 끌렀다. 느껴지는 것이 미풍의 달콤함이다. 거리에 남은 훈풍이 살갑고 그저 고맙다. 어차피 찾아온 감기라면 감기는 역시 제대로 앓아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