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선택하면서 모든 걸 포기해야 했어요”
“아기 선택하면서 모든 걸 포기해야 했어요”
  • 안은선 기자
  • 승인 2013.11.04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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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어려움에도 양육비 청구마저 포기하는 미혼모

 【베이비뉴스 안은선 기자】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나 원하는 대학에 입학한 이하얀(가명·여·23) 씨. 입학 후 처음 맞이한 대학 축제, 들뜬 마음에 이웃대학 학생들과 단체 소개팅을 하고 술자리도 가졌다. 어른이 돼서 처음 먹는 술이었다. 주량을 가늠하지 못해 금세 술에 취해 비틀거렸고, 소개팅 때 짝이었던 이웃대학 남학생이 부축해줬다. 기억나는 것은 거기까지였고,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전날 처음 본 그 남학생과 함께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렇게 기억에도 없던 첫 경험은 이 씨의 인생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임신 사실을 알게 됐고 막막했지만 두 사람은 아이를 낳아 기르기로 했다. 임신한 상태에서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낙태를 강요할 것 같아 아기를 낳은 후에 알리기로 했다.

 

두 사람은 다음 학기 등록금을 납입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방을 얻었다. 몇 달 후 아기가 태어났고, 남학생은 부모님께 아기 출산 사실과 두 사람의 동거 상황에 대해 말씀드렸다. 부모님은 아들의 말에 노발대발했고, 당장 헤어질 것을 종용했다.

 

이 씨는 아기를 뺏길까봐 전전긍긍했고, 자신의 부모님께 알리려던 마음도 접었다. 두 사람은 양가 부모한테 알리지 않고 아기와 셋의 삶을 계획했다. 몇 달 후 어느 날, 남학생은 이 씨의 머리맡에 자신을 영원히 용서하지 말라는 편지만을 남겨두고 사라졌다.

 

남학생이 떠난 후 이 씨는 자신의 부모님에게 찾아가지 못했다. 오랜 동안 한 동네에서 살아온 부모님에게 딸이 미혼모가 돼 돌아오면 이웃에게 얼마나 창피스러울지 짐작이 갔기 때문.

 

이 씨는 당장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어린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아르바이트에 나서야 했다. 아기 때문에 시간제로 일하면서 일찍 끝나는 곳에 택해야 하는 형편이라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수도 없었다. 동네 편의점에서 일하며 적은 급여로 월세를 내고 아기를 양육하며 남학생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치열하게 살았다.

 

그로부터 2년 후, 친구를 통해 남학생의 소식을 들었다. 그 사이 군대를 다녀와 복학을 했고, 복학 후 같은 대학 여대생과 연애 중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자신은 아기를 하나 선택함으로써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했는데 남학생은 아무 것도 잃지 않고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 살고 있다는 것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차마 남학생한테 아기를 데리고 찾아가 따지지 못했다. 자칫했다가는 남학생의 부모가 나타나 아기를 빼앗아 갈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4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비양육 미혼부(모) 양육책임강화를 위한 포럼에서 권경희 착한벗심리상담센터 대표가 '두리모(미혼모) 양육비 청구 관련 상담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4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비양육 미혼부(모) 양육책임강화를 위한 포럼에서 권경희 착한벗심리상담센터 대표가 '두리모(미혼모) 양육비 청구 관련 상담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이는 착한벗심리상담센터에 접수된 실제 상담사례다. 권경희 착한벗심리상담센터 대표는 한국두리모지원협의회가 주최하고 서울시한부모가족지원센터가 주관해 4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2층 회의실에서 열린 비양육 미혼부(모) 양육책임강화를 위한 포럼에서 주제발표자로 나서 어려움을 겪는 미혼모들의 상담사례를 소개했다.

 

권 대표는 “두리모(미혼모)는 준비되지 않은 임신과 출산으로 가족과 주변의 냉대와 비판 등의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한 생명을 지키고 책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그러나 당장 아이와 함께 머물 곳, 먹을 것, 입힐 것이 부족해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권 대표는 “이들에게는 당장 주거할 곳과 생활비용을 조달하는 것도 급하지만 아이와 함께 미래를 기약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끄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고 공부할 수 있도록 자녀에 대한 양육비 지원은 물론, 두리모 당사자의 능력 함양을 위한 교육비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아이의 아버지에게 양육비를 청구하고, 경제력이 없는 아버지에 대해서는 국가나 기관에서 선지급을 해주는 등 시스템을 구축하고, 친권과 양육권이 박탈될까 두려워 양육비 청구를 지레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주제발제자로 나선 장명선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연구원은 “미혼모의 경우 미혼부에 대한 거주지 등 정보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미혼부에 대한 인지청구 절차 등 어려움이 있다”며 “미혼부가 자녀양육비 부담에 대한 인식이 적고 경제적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아 자녀양육비 확보하는데도 어려움이 많다”고 지적했다.

 

장 연구원은 미혼 한부모 자녀의 양육비 확보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자녀양육비 확보를 위한 전담기구 설치 ▲자녀양육비 선지급제도 도입 ▲자녀양육비 확보를 위한 법률제정 ▲자녀양육비 산정기준 도입 등을 제시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박동혁 여성가족부 가족지원과장도 “한부모가정의 자녀양육비 이행확보를 개인 간의 문제로 방치하던 것에서 벗어나 국가차원에서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막대한 재정부담이 소요되는 선지급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어렵다면 우선 양육비를 비양육 부모에게서 징수해 양육부모에게 이전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양육비 이행지원기관’을 설치·운영하는 등 연차적 추진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4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비양육 미혼부(모) 양육책임강화를 위한 포럼'에서 장명선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연구원이 '미혼한부모 자녀양육비 실태 및 확보강화 방안'이란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4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비양육 미혼부(모) 양육책임강화를 위한 포럼'에서 장명선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연구원이 '미혼한부모 자녀양육비 실태 및 확보강화 방안'이란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4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한국두리모지원협의회가 주최하고 서울시 한부모가족지원센터가 주관한 '비양육 미혼부(모) 양육책임강화를 위한 포럼'이 열리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4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한국두리모지원협의회가 주최하고 서울시 한부모가족지원센터가 주관한 '비양육 미혼부(모) 양육책임강화를 위한 포럼'이 열리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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