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행복해야 '좋은 아빠'도 된다
아빠가 행복해야 '좋은 아빠'도 된다
  • 기고 = 김혜준
  • 승인 2014.08.0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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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눈높이에 맞춰 아빠 역할 요구하지 말자

[한국보육진흥원-베이비뉴스 공동기획] 좋은 부모, 배우는 부모

 

부모는 아이들의 거울이다. 아이들이 훌륭하게 자라주길 바란다면, 부모부터 바뀌어야 한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좋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는 이들을 위해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지원도 뒷받침돼야 한다. 베이비뉴스는 보육정책 집행기관인 한국보육진흥원과 함께 ‘좋은 부모, 배우는 부모’ 공동기획을 시작한다. 부모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짚어보고, 부모들에게 꼭 필요한 게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국내외 석학 및 보육정책 전문가, 부모교육 전문가, 현장의 어린이집 교사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특별기고] 김혜준 함께하는 아버지들 대표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진작부터 육아에 참여하는 아빠가 매우 멋진 남자로 그려지고 있다. 아빠들을 위한 육아정보를 다루는 잡지까지 있을 정도이다. 당연히 표지모델로는 스타일리쉬한 아빠가 등장한다. 요사이 우리나라에서도 사정이 비슷해지고 있다. 주말에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아빠랑 아이가 나오는 프로그램 하나는 걸릴 정도이다.

 

'아빠'는 그야말로 대세남이다. 그런데 이른바 '좋은 아빠'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개운찮은 뭔가가 항상 남는다. 왜 그럴까? '좋은' 앞에 '아이에게만' 또는 '애엄마가 보기에'가 생략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 즉 '좋은 아빠'라는 말에는 당사자인 아빠 본인의 행복과 성찰이 빠져 있다는 거다.

 

아빠는 아빠이기 이전에 인간이고 모든 인간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해야 한다. 아빠 자신의 실존적 문제를 떠나서 그저 아이를 위해서, 나아가 엄마의 눈높이에 맞춰진 아빠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못하다. ⓒ베이비뉴스
아빠는 아빠이기 이전에 인간이고 모든 인간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해야 한다. 아빠 자신의 실존적 문제를 떠나서 그저 아이를 위해서, 나아가 엄마의 눈높이에 맞춰진 아빠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못하다. ⓒ베이비뉴스

 

오래전 사촌형이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을 때 일이다. 그 형은 정훈장교로 입대했었다. 하지만 장교든 병사이든 훈련받을 때 춥고 배고프고 어리버리한 건 매한가지이다. 훈련소에서 하루의 고된 훈련을 마치고 나면, 야식으로 '보름달'이라는 카스테라가 나왔다. 비닐포장에 달에서 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가 그려져 있는 그 빵이 얼마나 맛나던지! 그 보름달로 힘든 나날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청난 눈이 내렸고, 그 폭설로 그만 '빵' 트럭이 끊겨 버렸다. 장차 군의 교양과 이념을 가르치면서 사병들의 정신을 무장시킬 사람들이었지만, 빵 앞에서 이성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내무반에선 대한민국의 군수시스템에 대한 격한 성토대회가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훈련소장의 준비부족도 도마에 올랐다. "보름달이 없으면 반달이라도 줘야 할 것 아니야!" 뭐 이런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럼 뭐 하겠는가? 배만 더 고파질 따름이었다. 그저 울분을 삼키며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사촌형은 이미 결혼해서 아들까지 두고 있었기에 잠들기 전이면 그리운 아내와 아들을 떠올리면서 남몰래 눈물짓곤 했었다. 하지만 그날 밤엔 아내와 아들 얼굴은 온데 간데 없었다. 그저 천정에는 보름달만 아른거릴 뿐이었다.

 

아빠는 아빠이기 이전에 인간이고, 모든 인간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아빠 자신의 실존적 문제를 떠나서 그저 아이를 위해서, 나아가 엄마의 눈높이에 맞춰진 아빠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못하다. 배고픈 훈련병에게 아빠씩이나 돼서 "어떻게 토끼같은 아들보다 카스텔라를 먼저 떠올릴 수 있느냐"고 따지는 것은 그리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아빠라는 명찰을 달고 있건 말건 가족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 마리 수컷으로서 자신의 욕망만을 쫓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욕망을 억제하면서 좋은 아빠의 길을 수도승처럼 가야만 할 것인가? 너무 걱정하지 말자. 이처럼 극단적인 선택지 사이에는 반드시 그럴싸한 절충안이 있기 마련이고, 이 문제 역시도 예외는 아니니까 말이다. 이른바 '제3의 길'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아빠됨의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모든 아빠는 아이를 통해 엄마들 못지않게 행복을 느끼게 돼 있다. 아빠 노릇이 아빠 본인에게 행복감을 주게 진화해 왔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종족보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존을 위해서는 영양을 공급받아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먹는 것이 즐거워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배가 고플 때 음식을 먹으면 식감과 포만감을 통해 즐거워져야지, 만일 음식을 먹는 것이 고역이라면 어떤 종족이든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그동안 간과됐거나 숨겨져 왔던 아빠 노릇의 행복을 느끼는 훈련을 살짝궁 하면 된다. 굳이 훈련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저 잠재된 감수성을 깨우기만 하면 될 일이다. 

 

아빠로서 느낄 수 있는 쾌감, 만족감, 뿌듯함, 행복감은 어떤 때 생기는 걸까? 우리네 어른들은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소리는 자식 목구멍에 밥 넘어가는 소리와 자식이 글 읽는 소리”라고 했다. 이것이 대표적인 아빠되는 즐거움이다. 아내와 자식들이 맘 편하게 잠자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뿌듯함, 요지부동의 딸기잼 병의 뚜껑을 의기양양하게 따주면서 느끼는 뿌듯함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아빠로서 맛보는 행복이란 그리 거창하지 않다. 그저 소소한 기쁨에서 출발한다. 자식에게 억대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지금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보다 같이 목욕하면서 물장난도 치고 손잡고 동물원도 가는 것이 행복한 아빠가 되는 지름길이다. 일찍이 파스칼은 ‘현재의 소소한 기쁨에 소홀한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했는데, 특히 우리 대한민국의 아빠들은 이 말을 명심해야 할 것 같다. 행복은 강도(强度)보다 빈도(頻度)에 더 좌우되는 것이다. 행복은 ‘한방’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제부터 아빠의 행복을 고려하지 않는 기계적이고 당위론적인 좋은 아빠 타령은 그만 하자. 그러다간 오히려 청개구리 심리만 자극할 지도 모른다.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아빠 노릇을 해야 한다. '누구누구 아빠는 이렇게도 한다더라'며 남편을 몰아세우지 말고, 남편에게 아빠로서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을 맛볼 자연스러운 기회를 늘려 주자. '좋은 아빠 되라'는 이야기가 학창시절 '공부하라'는 엄마의 잔소리처럼 들리는 순간, 이른바 '좋은 아빠'는 물 건너가게 됨을 잊지 말자.

 

◇ 김혜준 함께하는 아버지들 대표 프로필

 

- 주요경력 : 전 한국가스안전공사 상임감사
                 전 청와대 행정관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정책보좌관
                 현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KACE) 이사 겸 아버지다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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