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축의금 기부로 더 큰 것 돌려 받았어요"
"작은 축의금 기부로 더 큰 것 돌려 받았어요"
  • 김고은 기자
  • 승인 2014.08.20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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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부부 백정연·이승일 씨의 착한 결혼 이야기

【웨딩뉴스팀 김고은 기자】


“청첩장에 축의금 일부를 기부하겠다는 문구를 넣어 보냈는데, 받으신 분들이 ‘역시 너답다’라는 말을 하시는 걸 보면서 참 기뻤어요. 평소 저를 잘 봐주신 것 같아 좋았고, 기부와 나눔을 자연스럽고 기분 좋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컸습니다.”


지난달 유부녀 대열에 들어선 백정연(35) 씨가 결혼하면서 제일 잘했다고 꼽는 것 중 하나는 축의금 1%를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한 일이다. 백 씨는 몇 달 전 결혼을 앞두고 좀 더 의미 있는 결혼에 대해 고민하다 평소 눈여겨보고 있던 아름다운재단에 축의금 기부를 결정했다. 덕분에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물론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도 과분한 칭찬을 받았다. 포털 기부 관련 블로그에 백 씨 이야기가 소개돼 누리꾼들의 호응을 얻었던 것.


만약 남편 이승일(43) 씨가 아내의 제안에 반갑게 승낙하지 않았다면 축의금 기부가 쉽지만은 않았을 터. 그러나 백 씨는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이 존중해주셔서 가능했던 일”이라며 부모님들을 먼저 치켜세웠다.

 

지난달 부부가 된 이승일·백정연 씨. 두 사람의 예식은 주례없이 진행됐다. 신랑의 아버지가 축사를, 신부의 아버지가 성혼선언문, 신랑 신부 두 사람이 혼인서약서를 나란히 읽는 것으로 서약의 순서를 대신했다. ⓒ백정연
지난달 부부가 된 이승일·백정연 씨. 두 사람의 예식은 주례없이 진행됐다. 신랑의 아버지가 축사를, 신부의 아버지가 성혼선언문, 신랑 신부 두 사람이 혼인서약서를 나란히 읽는 것으로 서약의 순서를 대신했다. ⓒ백정연

 

◇ 축의금 기부 결정했던 가장 큰 이유는…

사실 백 씨가 축의금 기부를 결정하며 무엇보다 기대했던 건 친정부모님의 반응이었다. 사회복지를 전공하며 대학 4년 내내 장애인 시설에서 봉사하고 졸업 후 10년 간 아동·장애인 관련 단체에서 일하다 남편을 만나기까지, 그동안 백 씨가 걸어온 길에 누구보다 아낌없는 지지와 격려를 보냈던 건 부모님이었다. 척수 장애를 가진 남편과의 결혼에 걱정하는 안색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셨던 부모님이기도 했다. 이런 부모님에게 ‘우리 딸이 이런 방식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실만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바람이었다.


그런 기대와 다르게 백 씨 부모님은 축의금 기부에 관해 아무 말이 없으셨다. 예물, 예단을 안 하겠다고 선언할 때는 크게 서운해하시던 보수적이고 평범한 부모님이, 신랑 신부만의 축의금이 아닌 전체 축의금 일부를 기부하겠다는 말에는 ‘그러려니’ 하며 예사롭게 넘어가신 것이다. 그렇게 특별한 듯 평범하게 백 씨는 결혼 준비 과정을 지났다. 두 사람의 일터가 있는 여의도 이룸센터로 예식 장소를 정하고 지인을 통해 부대비용을 아껴가며 살뜰히 결혼식을 준비했다.

 

“손님 절반은 휠체어를 타시는 분들이어서 일반 예식장을 예약할 수는 없었어요. 편의시설 문제를 결혼하면서도 크게 인식했습니다. 다행히 일반 예식장이 아닌 덕분에 예식은 여유롭게 치렀어요. 직접 기획하고 손으로 만드는 것 좋아하는데, 하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였던 점도 좋았어요.”


◇ 평범한 듯 특별했던 두 사람의 결혼식

 

기다리던 결혼식 당일. 반주에 맞춰 예식이 시작됐다. 신랑 이승일 씨는 시어머니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다. 신부 백 씨는 아버지와 함께 입장해 신랑 이 씨와 나란히 하객을 보고 앉았다.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는 자고로 허리 펴고 꼿꼿이 서 있어야 가장 예쁘다는 남들 얘기는 귓등으로 흘렸다. 남편과 눈높이를 맞춰 앉아 있는 게 좋았다. 

 

신랑의 아버지는 주례를 대신해 이들에게 축사를 건넸다. 신부의 아버지는 이들의 결혼을 선포하며 성혼선언문을 읽어 내렸다. 딸을 둔 여느 아버지가 그렇듯 신부의 아버지는 잠깐 메인 목을 가다듬었다. 두 사람은 혼인 서약서를 차례로 읽으며 영원을 약속했다.

 

신랑과 신부 친구들의 축가가 이어졌다. 그리고 신랑 신부 행진의 순간, 백 씨는 시어머님이 밀고 들어왔던 이 씨 휠체어의 핸들을 쥐었다. 울려 퍼지는 팡파르, 터져 나오는 박수를 가르고 백 씨는 이 씨와 함께 부부로서의 첫 발걸음을 딛고 나왔다.

 

◇ 신혼 한 달차, 가장 많이 달라진 건

 

맞벌이 주부의 고단함은 백 씨에게도 피할 수 없는 숙제다. 분당에서 여의도까지의 짧지 않은 출퇴근길을 오가고, 서투른 초보 주부 손으로 겨우 집안일을 해내는 게 어렵고 낯설지만 그때마다 하객들과 누리꾼들이 건네준 메시지를 생각하며 기운을 낸다는 그. 다른 새댁이라면 피곤한 와중에 시부모님 생각할 여유가 없을 텐데, 남편을 걱정하실 모습이 떠올라 이틀에 한 번 꼬박 전화로 안부를 여쭌다고.

 

“누군가의 배우자가, 며느리가 됐다는 것에 책임감을 많이 느껴요. 지금까지는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거 하는, 내 행복만 생각하면 되는 삶이었는데 이제는 그 이유가 남편으로 다 바뀌었어요. 남편을 위해 건강해야 하고 가족을 위해 행복해야 해요. 결혼을 하고 나니 엄마 아빠가 저를 키우면서 어떤 마음이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저는 당연한 줄 알고 받았던 것 중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어요.” 본인을 누구보다 더 많이 걱정하실 부모님을 떠올리며 백 씨가 눈물을 글썽였다.

 
결혼 후 퇴근길에서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백 씨가 하는 건 자신의 이야기가 소개된 블로그에 누리꾼들이 남긴 메시지를 읽는 것이다. 읽고 또 읽을 때마다 힘이 나고 행복한 마음이 들어서다. 축의금 기부 내용이 적힌 청첩장을 받은 친구들이 ‘너희의 작은 행동이 세상을 따듯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던 기억도 백 씨를 행복하게 하는 것 중 하나. 백 씨는 “축의금의 단 1%,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을 수 있는 그 돈으로 아낌없는 축복을 받고 지칠 때마다 힘이 되는 격려를 얻었다. 한 것에 비해 너무 크고 따듯한 것들을 받았다”며 다시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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