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아이에게 트라우마 남길 수 있어
부부싸움, 아이에게 트라우마 남길 수 있어
  • 기고 = 박동혁
  • 승인 2014.09.05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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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기 트라우마는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며 발달적 손상을 일으킨다

[특별기고] 어린이의 트라우마, 왜 주목해야 하는가

 

바싹 마른 체격의 18살 인영(가명)이의 팔에는 꽤 깊은 흉터가 이어져 있었다. 중학교 때 술에 취한 아빠가 깨진 병을 휘둘러 열 바늘 이상을 꿰맨 상처였다. 상담 결과 3살 경부터 부모의 폭행이 시작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처음에는 큰 소리를 지르고 몸을 힘으로 짓누르거나 꿀밤을 때리는 정도였다.

 

하지만 한글과 산수를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거나 딴짓을 하면 따귀를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 방구석에 집어던지기도 했다. 주변에 있는 물건은 닥치는대로 체벌에 사용되었는데 심지어 쇠막대기로 때리는 일도 있었다. 특히 학업적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않을 때 인영이의 엄마는 이성을 잃을 정도로 흥분해 폭행을 했고 아이는 목숨의 위협을 느껴 집 밖으로 도망치는 일도 있었다.

 

아빠는 이런 상황에 전혀 보호막이 되지 못했고 술을 먹으면 물건을 던지거나 심지어 엄마와 아이를 함께 폭행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 계속해서 가출을 시도했고, 이런 아이를 향해 아이의 아빠는 다음에 만나면 더 때려서 정신을 차리게 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었다. 반복된 가출로 정상적인 학교 생활은 불가능했고 또래 아이들의 비해 몸도 마음도 나뭇가지처럼 야위어가고 있었다.

 

트라우마는 전쟁이나 재해와 같은 흔치 않은 예외적 사건보다 일상적 사건들 속에서 더 많이 벌어진다. ⓒ베이비뉴스
트라우마는 전쟁이나 재해와 같은 흔치 않은 예외적 사건보다 일상적 사건들 속에서 더 많이 벌어진다. ⓒ베이비뉴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정신장애의 분류에 포함된 계기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겪었던 여러 가지 심리적 증상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연구를 진행하자 참전 군인들이 보인 것과 같은 만성적 증상과 삶의 붕괴 현상이 전쟁터가 아닌 일반적 삶의 테두리 안에서도 흔하게 일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트라우마는 전쟁이나 재해와 같은 흔치 않은 예외적 사건보다 일상적 사건들 속에서 더 많이 벌어지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것들도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트라우마가 된다.

 

▲ 부모의 잦은 부부싸움 혹은 가정폭력을 당하거나 목격하게 되는 것

 

▲ 체육 시간에 철봉에 팔이 끼어 부러지는 것과 같은 운동 중 심각한 부상

 

▲ 갑작스러운 질환이나 화상으로 응급실을 찾게 된 어린 시절의 수술경험

 

▲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약속했던 선물을 받지 못했거나 원하는 학교의 진학에 실패 하는 등의 매우 실망스러운 사건

 

▲ 급우들 앞에서 모욕적인 말을 듣거나 체벌을 받는 등의 수치심을 유발하는 사건

 

▲ 또래 집단으로부터 버림받거나 왕따를 당하는 것과 같은 중요한 관계의 상실


트라우마는 사실 성인들도 견딜 수 없는 사건들이 대부분인데 만일 어린 아이가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면 그 영향의 정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비명을 지르며 우는 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적절한 개입이 제공되지 않으면 부모와 양육자에게서 완전히 버림받은 느낌을 받게 되고 이러한 고립감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최악의 상황에서 자신에게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혹은 못했다)는 사실은 트라우마 만큼이나 충격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도미노 게임과 같이 하나의 사건은 그 다음 단계의 인생 사건에 체계적으로 영향을 끼쳐 결국에는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모두가 잘 알다시피 아동기는 인생 전체에서 가장 성장 속도가 빠른 기간 중 하나이며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발달이라고 한다. 발달은 이전 단계에 비해 질적, 양적인 성장이 일어났을 때를 의미하는데 트라우마는 이러한 발달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정서적 손상은 말할 것도 없고 때로 생리적 손상도 발생하게 된다. 특히, 어린 아동의 경우 뇌가 성장중이기 때문에 트라우마는 뇌의 특정 기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위협에 반응하는 부위가 과도하게 예민해져 소음과 같은 외부 자극에 취약해지고 주의력이 심각하게 저해되는 등의 문제를 겪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아동기 트라우마에 관련된 범죄가 발생했을 때 그 처벌은 인생 전반에 영향력을 고려해 강력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2008년 안산시 단원구에서 발생했던 조두순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8세 여아에게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폭력을 가해 영구적인 손상을 입혔지만 조두순은 나이가 많고(당시 56세)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심신미약이 인정되어 겨우 12년형을 선고 받았다. 피해아동이 20살 남짓이 되면 그는 석방된다. 보이는 상처에 대한 형량이 12년이라면 남은 삶 동안 아이가 겪어야 할 고통에 대한 형량은 얼마가 되어야 할까? 아동기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치료함에 있어 우리 사회에 좀 더 치열한 고민과 인권의식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며 2회에 걸친 기고를 마무리할까 한다.

 

◇ 어린이 트라우마 지원사업 컨퍼런스 초대=한국어린이안전재단(대표 고석)과 베이비뉴스(대표 최규삼)는 서울특별시와 보건복지부, 동양생명의 후원으로 오는 9월 19일 오전 10시 서울 시민청 태평홀에서 '어린이 트라우마 지원사업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어린이들의 트라우마에 대해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널리 알리기 위한 자리다. 어린이 트라우마에 관심있는 기관과 단체, 시민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베이비뉴스 홈페이지(http://childtrauma.ibabynews.com)에서 참가 신청을 하면 된다.

 

*박동혁 교수는 심리학 박사로 주로 아동, 청소년의 학습과 진로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아주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교사들을 대상으로 학습상담과 진로상담을 강의하고 있다. 허그맘소아청소년심리센터 대표원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학습심리검사인 MLST 학습전략검사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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