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료 전자바우처 제도는 실패했다"
"보육료 전자바우처 제도는 실패했다"
  • 정은혜 기자
  • 승인 2014.12.16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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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보수정부 7년간의 보육정책 문제점 제기

【베이비뉴스 정은혜 기자】

 

제주도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A 씨는 원아 한 명이 한 달간 해외로 출국해 어린이집을 이용하지 않았는데도 부모의 아이사랑카드로 해당 기간 동안의 보육료 21만 6000원을 결제했다. 이중 19만 1000원은 보육료 지원금이었다.

 

이에 대해 제주시는 A 씨가 부정한 방법으로 보조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19만 1000원에 대해 반환처분을 내리고 과징금으로 210만 원을 부과했다. 복지부는 반환처분이 확정되자 A 씨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의 평가인증을 취소하는 처분을 내렸다.

 

A 씨는 보조금 반환을 취소해 달라고 제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광주고등법원은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결은 달랐다. 지난 6월 12일 대법원은 정부가 시설에 직접 지원하지 않는 재정지원은 시설에 대한 보조금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을 내린 것이다. 즉, 전자바우처(아이사랑카드)로 보육료를 결제 받는 어린이집은 보조금을 받아 보조사업을 수행하는 사업자가 아니라는 게 판결의 요지였다. 

 

윤홍식 인하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열린 ‘보육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릴레이 토론회’에서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이 민간어린이집에 투입되고 있음에도 정부가 어린이집을 관리 감독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은 현행 방식으로는 보육의 공공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고 말했다.

 

남윤인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참여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공공운수노조보육협의회, 참보육을위한참여연대,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어린이문화연대가 주최한 이번 토론회는 보육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점을 살펴보고 대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열린 ‘보육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릴레이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현행 보육정책의 문제점을 꼬집으며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정은혜 기자 eh.jeong@ibabynews.com ⓒ베이비뉴스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열린 ‘보육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릴레이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현행 보육정책의 문제점을 꼬집으며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정은혜 기자 eh.jeong@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이날 윤 교수는 보수정부 7년간 보육정책 영역에서 공공성이 어떤 방식으로 훼손됐는지 진단했다. 윤 교수에 따르면 ▲국공립어린이집 예산 삭감 ▲보육료 지원 방식(전자바우처의 도입을 통해 시설별 지원에서 개별 이용자에 대한 지원)의 전환 ▲양육수당 확대 등 3가지가 보수정부가 내세운 정책이었다.

 

먼저 국공립어린이집 예산을 보면 2010~2012년 신축된 수는 10개소, 전체 예산은 20여억 원에 불과했다. 반면 양육수당은 2009년 324억 원에서 2014년에는 1조 2153억 원으로 불과 5년 만에 38.6배 증가했다. 또 국공립을 확대하는 대신 민간어린이집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형어린이집 예산도 2011년 80억 원에서 2014년 385억 원 규모로 늘어났다.

 

윤 교수는 “양육수당의 확대는 가족의 돌봄 책임을 사회가 분담하기보다 가족 내에서 여성이 아이를 돌보는 것을 제도화했다”며 “보수정부 7년간 보육정책은 공적영역에서 확대되던 돌봄을 사적영역으로 돌려보냄으로써 돌봄의 공공성을 약화시키고 돌봄을 다시 개인적이고 사적인 문제로 전환시켰다”고 지적했다.

 

또 윤 교수는 전자바우처 방식의 보육료 지원도 보육서비스를 민간어린이집을 중심으로 제공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는 점에서 공공성 강화와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어린이집을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근접성이라는 걸 고려하면 아이가 사는 지역에 다수의 어린이집이 있어야 선택할 여지가 생기는데 현실에서 다수의 어린이집이 운영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전자바우처를 통해 어린이집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렸다는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언급했다.

 

따라서 윤 교수는 전자바우처를 폐기하고 재정지원을 개별 이용자에서 시설별 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윤 교수는 “유치원까지 포함해 거의 10조 원에 달하는 공적재원을 투여하면서 보조금 부정수급 등 어린이집의 위법행위를 제재할 수 없다는 것은 전자바우처 방식의 명백한 실패를 확인해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가 전자바우처를 유지하면서 민간어린이집 대신 보육서비스 이용자와 보육교직원을 처벌하겠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대응”이라며 “빠른 시일내에 전자바우처를 폐기하고 시설별 지원을 통해 민간어린이집에 대한 공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진석 서울여자대학교 교수는 보육교사의 신분을 안정시키고 임용권을 사회서비스인력공단(가칭)에 위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보육교사의 임용권을 전적으로 어린이집 원장의 손에 맡겨두는 것은 열악한 처우와 근무조건을 감수할 것을 강제하는 것이고 이는 결국 보육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고 답했다.

 

이어 김 교수는 지자체가 보육교사를 직접 고용해 (준)공무원 신분을 보장하고 해당 지자체 내 어린이집에서 근무하게 하는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또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단을 통해 보육교사를 직접 고용해 민간과 국공립어린이집에 배치하는 방안도 언급했다.

 

다만 김 교수는 “공단에서 인력을 임용하고 어린이집에 배치하는 경우 일종의 파견근무 형태가 돼서 노동법을 위반할 수 있으니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부모에게 지급되는 보육료, 누리과정 통합운영에 따른 지원금, 교사근무환경개선비 등이 어린이집에 지원되는 점을 고려할 때 복잡한 지원체계를 재정비하는 것만으로도 추가 재정부담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토론자들은 정부의 철학 없는 보육정책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김호연 공공운수노조보육협의회 고충상담센터장은 “민간어린이집을 견제하기 위한 대안들은 번번이 시설장들과 단체로 인해 좌절되고 있다. 이로 인해 보육현장은 돈벌이로 전락했고 그 안에서 노동착취와 인권유린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김 센터장은 보육예산을 운영비와 인건비로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령에 따른 보육료(교구교재비, 급간식비)와 시설규모에 따른 운영비를 어린이집 운영비로 직접 입금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따라 보육교직원 임금기준을 재편해 정부와 지자체가 보육교직원에게 임금을 직접 줘야 한다는 것.

 

김 센터장은 “여전히 블랙리스트에 대한 두려움은 보육교직원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하지만 안정된 임금을 정부로부터 직접 받게 되면 정부는 보육교직원의 관리를 철저히 할 수밖에 없고, 충분히 교육받고 자존감이 높아진 보육교직원은 조직된 힘을 발휘해 직접 고용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미순 참보육을위한부모연대 운영위원장은 “부모로서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지금 시스템은 개인이 잘 키울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정부의 보육정책은 부모부담이 없는 완전한 무상보육도 아니고 국가중심의 공적 체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며 “무상보육은 공공성과 보편성 모두를 담아야 하는데 박근혜 정부는 공공성은 확충하지 않고 보편성만 공격해서 재정지출을 줄이려 한다”고 혹평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 지난해 보육재정을 떠넘기고 올해는 누리과정과 초등돌봄교실 예산을 시도교육청에 떠넘긴 걸 볼 때 과연 무상보육을 지속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 정부는 매우 전략적으로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을 대립시키며 여론을 호도했고 누리과정 지원의 책임과 피해는 국민에게 전가시켰다”고 비판했다.

 

장 운영위원장은 “민간 경쟁을 유도해서 부모에게 선택권을 주겠다고 하는데 국공립이 안 되니 공공형을 바라보고 그것마저 안 되니 민간어린이집에 가는데 원하지도 않는 어린이집에 가서 특별활동비를 내는 실정”이라며 “아이를 맡기는 부모로서 서비스 개선을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못하고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블랙컨슈머로 낙인찍히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따라서 “부모, 보육교사가 진보진영과 함께 시민단체와 공동연대체를 만들거나 민주노총에 제안해서 교섭을 할 때나 공공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보육도 넣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민간어린이집을 대변하기 위해 나온 강미연 숲속천사어린이집 원장은 “이전부터 돌봄을 감당하는 데 민간(사립)어린이집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민간어린이집이 ‘갑’질을 한다고 하는데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이 든다”고 호소했다.

 

강 원장은 “보육이 공공성을 가져야 한다는 데 찬성하지만 국가의 예산으로 지어지고 운영되는 국공립과 개인의 투자로 이뤄진 사립어린이집이 모두 같을 순 없다. 또 국공립으로 전환하고 싶어도 운영권 보장이 없기 때문에 전환도 어렵다”고 털어놨다.

 

이어 “모든 어린이집을 동일한 입장으로 해석하고 전자바우처를 보조금이라고 주장하려면 모든 어린이집을 국공립체제로 전환하거나 그에 준하는 사립에 대한 적절한 방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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