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철학이 아니라 현실이다
육아는 철학이 아니라 현실이다
  • 칼럼니스트 권성욱
  • 승인 2015.04.18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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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은 슈퍼맨이 되고 싶은 아빠의 육아 이야기

[연재] 일 가정 양립을 꿈꾸는 워킹대디의 육아칼럼

 

언젠가 어떤 젊은 정신과 의사가 쓴 육아책을 읽었습니다. 주로 육아에 대한 자신의 평소 생각을 모은 에세이집인데, 책 서문에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육아는 철학이다." 솔직히 워킹부부로서 직장인과 전업주부의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하는 제 입장에서는 "철학은 둘째치고 현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보면 연예인들이 초보 아빠로서 어린 자녀들과 알콩달콩하며 생활하는 모습을 비추어 줍니다. 처음에는 서툰 솜씨로 이유식를 만들거나 땀을 뻘뻘 흘리며 목욕을 시키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익숙해져가는 모습을 보면 같은 아빠로서 참으로 훈훈합니다. 하지만 방송에서는 그들의 육아 중 극히 일부만을 보여줄 뿐이죠. 각본대로 만들어진 육아랄까요.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을 하면서 혼이 쏙 빠지는 엄마들 입장에서는 "현실의 육아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아!"라고 외칠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정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맞벌이 부부에다 누구의 도움을 받을 처지가 아닌 저희로서는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하나부터 열까지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육아책을 읽고 인터넷을 뒤지며 공부를 했건만 막상 와닿으니 실수 연발이었습니다. 4년이 지난 지금 이제와서 돌이켜 보면 "그럴 때가 있었지" 싶네요.

 

산후 조리원에서 돌아와 처음으로 둘이서 애기 목욕을 시킬 때 고작 내 손바닥 만한 작디작은 딸래미가 혹시나 다칠까, 혹시나 실수할까 싶어서 부들부들 떨면서 머리를 감겨주고 몸을 씻겨주었습니다. 백일 때까지 낮이고 밤이고 하도 안아달라 울어대길래 수면교육을 시켜보겠다고 하다가 울어대는 딸래미 앞에서 차마 마음이 아파서 15분만에 포기했습니다.

 

육아 휴직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미역국을 끓인다는 것이 맹물탕을 만들고 반쯤 태운 핫케익을 간식이라며 아이 앞에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유식 먹이다가 꽥 토하는걸 반사적으로 손과 옷으로 받아내었지만 이미 흥건하게 바닥에 고인 것을 걸레 대신 손으로 그릇에 퍼담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응가를 하면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변색깔을 확인하여 건강 상태를 체크했습니다.

혼자서 처음 아이의 머리를 감길 때의 모습. 그 시절에는 행여나 손에서 미끌어질까 부들부들 떨었지만, 지금은 집사람보다 더 능숙하게 합니다. ⓒ권성욱
혼자서 처음 아이의 머리를 감길 때의 모습. 그 시절에는 행여나 손에서 미끌어질까 부들부들 떨었지만, 지금은 집사람보다 더 능숙하게 합니다. ⓒ권성욱

기저귀를 잘 못 채운 덕분에 응가가 삐져나와 바지에 넘쳐난 걸 손으로 일일이 털어내던 일, 장염에 걸려 링겔 맞추려고 병원에서 데리고 가면서 기저귀 챙기는 걸 깜빡하여 젖은 바지를 벗기고 제가 입고온 잠바로 아이를 둘둘 싸서 한 겨울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집에 갔던 일, 자다가 침대에서 굴려떨어져 눈썹 근처가 찢어진 아이를 업쳐매고 한밤중에 응급실에 달려 간 일(그 때의 흉터는 아직도 있습니다.),  애써 기저귀 채워놓았더니 안 보이는 사이 성가시다며 벗어던지고 거실과 방마다 응가와 오줌을 싸놓은 걸 걸레로 닦고 똥오줌이 묻은 옷과 이불을 손빨래 한 다음 세탁기로 돌리던 일.... 저처럼 비위 약한 사람이 예전같으면 저 멀리 도망갔겠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합니다. 부모이기 때문이겠지요.

생후 6개월 째 구내염에 걸렸습니다. 병원에서 링겔을 맞추고 똥꼬에 해열제를 넣어주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열이 40도까지 올라가는 아이의 체온을 떨어뜨리기 위해 집사람과 둘이서 밤새 찬 손수건으로 몸을 닦아주었습니다. ⓒ권성욱
생후 6개월 째 구내염에 걸렸습니다. 병원에서 링겔을 맞추고 똥꼬에 해열제를 넣어주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열이 40도까지 올라가는 아이의 체온을 떨어뜨리기 위해 집사람과 둘이서 밤새 찬 손수건으로 몸을 닦아주었습니다. ⓒ권성욱

 

이제는 어엿한 다섯살 숙녀가 되어 온갖 애교도 부리고 만만한게 아빠라고 "아빠 다시는 그러지마!"라면서 호통도 칩니다. 어떨 때보면 귀엽다가도 어떨 때보면 심술이 가득합니다. 늘 "난 공주야"라면서 예쁜 옷 입고 예쁜 물건 가지고 노는걸 제일 좋아합니다. 하루 종일 엄마 아빠 퇴근 시간에 맞추어 유치원과 학원을 전전해야 하고 집에 와서도 엄마 아빠가 가사일에 정신없는 사이 혼자서 놀아야 합니다.

 

그러다 정말 심심하면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 심심해 놀아줘"라고 합니다. 평소 떼 한번 쓰지 않는 얌전한 성격이지만 때로는 가뜩이나 바빠서 정신 없는데 하지 말라는 장난을 치다 바닥에 물을 쏟거나 잠깐 사이 방안을 전쟁터로 만들고 방금 갈아입은 옷을 버리기도 합니다. 정말 짜증이 한없이 올라옵니다. 조그만 것이 화났다고 버릇없이 문을 쾅 닫고 들어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주로 혼내는 쪽은 저보다 집사람이지만요.

 

혼자 놀다가 사고 쳤다고 호되게 야단맞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습니다. 무슨 창의력 놀이나 가족 놀이를 할 여유까지는 없더라도 때때로 시간을 내어 몸놀이도 하고 자기 전 책 한권 더 읽어주려고 노력합니다. 주말에는 야외로 가족 나들이를 나가거나 나은공주가 좋아하는 키즈 카페에 가서 신나게 뛰어놀게 합니다. 재미있는 연극이나 뮤지컬이 하면 반드시 예약해둡니다. 엄마 아빠는 지쳐서 쓰러지지만 한없이 행복해 하는 아이를 보면서 힘을 냅니다.

저나 집사람 둘 중에서 어느 한쪽이 야근이나 회식 등으로 늦게 와야 할 때도 많습니다. 그럼 혼자서 저녁을 준비하여 밥 먹이고 목욕시켜야 합니다. 영양제에다 변비 방지를 위해 유산균도 챙겨서 먹입니다. 또한 설거지도 해야 하고 마른 빨래를 걷고 세탁기도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면 자기 바쁩니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워킹 부부의 육아입니다.

 

아이가 어릴 때에는 어린 만큼, 크면 큰 만큼 손에 갑니다. 그래서 아무리 주변에서 둘째를 권유해도, TV에서 공익광고로 "동생은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해도 저희로서는 차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아이를 셋, 넷 낳는 사람도 있는데 겨우 하나 가지고 뭘 그러냐?"라고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육아는 그렇게 산술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도 힘들고 셋, 넷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늘 베이비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새 조금씩 숙녀티가 나기 시작합니다. 아이의 커 가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오묘합니다. ⓒ권성욱
늘 베이비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새 조금씩 숙녀티가 나기 시작합니다. 아이의 커 가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오묘합니다. ⓒ권성욱

 

아빠 육아에 대해 흔히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가 육아에 적극적일수록 아이는 사회성과 지능이 발달한다." 아마 아빠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하는 말이겠지만, 저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엄마의 육아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요? 서로 역할을 바꾸어 엄마를 직장에 보내고 아빠가 아이를 키우는 쪽이 더 낫다는 말인가요? 반대로 싱글맘이 키우는 아이들은 사회성과 지능이 떨어진다는 걸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효과를 떠나, 아빠​이기에 해야 한다고. 요근래 남성들의 육아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는 있다지만 여전히 대다수 아빠들은 육아에서 한발짝 떨어진 채, 퇴근 후 또는 주말에 잠깐 놀아주는 것만으로 내 역할을 충분히 다 하다고 있다고 여깁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맞벌이 가정에서 엄마의 평균 육아 가사 노동 시간은 2시간 23분인데 아빠는 고작 17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얼마 전 무상보육과 관련해 모 장관이 "전업주부는 집에서 애를 봐야지"라고 말하여 물의를 빚기도 했습니다. 이는 아직도 우리 사회의 남성들이 육아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육아에 대해 편견을 가지는 것도 결국 이런 인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아이를 통해 삶의 행복함을 느끼지만, 이와 별개로 육아의 어려움은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사와 육아까지 하는 것은 정말 힘들고 피곤한 일입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면 쇼파와 합체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내 역할을 대신해 줄 수는 없습니다. 주변의 도움은 받을 수 있어도 결국 내 아이는 내 손으로 키워야 합니다. 그게 부모의 의무입니다. 만약 내가 게으름을 부린다면 그만큼 아내의 몫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요즘 흔히 "아빠의 자리를 찾자"라고 하지만, 저는 그 말을 이렇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을 아내에게 떠넘기지 마라."

 

맞벌이 아빠의 넋두리지만, 대신 아이와 부대끼면서 울고 웃고 화내는 와중에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누가 아빠의 역할에 대해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나는 아빠라는 것을. 저는 그게 자랑스럽습니다.

 

*칼럼니스트 권성욱은 울산 토박이이면서 공무원으로 13년째 근무 중이다. 36살 늦깎이 총각이 결혼하자 말자 아빠가 되었고 집사람의 육아 휴직이 끝나자 과감하게 직장에 육아 휴직계를 던져 시한부 주부 아빠로서 정신없는 일년을 보냈다. 현재 맞벌이 집사람과 함께 가사, 육아를 분담하며 고집 센 다섯살 딸아이의 수발들기를 즐기고 있다. 인생에서 화목한 가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고 항상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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