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논란, 누가 전업주부를 화나게 하나?
어린이집 논란, 누가 전업주부를 화나게 하나?
  • 김은실 기자
  • 승인 2015.09.17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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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잘못 만든 정부, 여성 혐오자들…"보육 정책 관점 바꿔야"

【베이비뉴스 김은실 기자】


정부와 정치권은 2012년 대선을 기점으로 무상보육의 전면 시행을 추진했다. 하지만 그후 대상을 축소하고 나서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정부와 정치권은 2012년 대선을 기점으로 무상보육의 전면 시행을 추진했다. 하지만 그후 대상을 축소하고 나서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0~5세 보육 및 유아 교육 국가 완전 책임제 실현!'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이 내건 공약이다. 세부 내용으로는 '0~2세 영아 보육료 국가 전액 지원 및 양육수당 증액, 양육 유형 선택권 보장'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3년 차에 접어든 지금, 정부는 약속한 정책을 하나둘씩 손보고 있다. 지난주 공개된 '전업주부 자녀의 어린이집 이용 제한' 정책은 그중 하나다.


보건복지부가 전업주부의 0~2세 자녀는 어린이집을 6~8시간(맞춤반)만 이용하게 한다는 보도가 12일 나오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기사가 나간 포털 사이트와 SNS에는 종일 찬반논쟁이 지속됐다.


복지부는 해당 보도가 나간 다음 날 "여성의 취업 여부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전업주부도 구직, 다자녀, 임신 등 장시간 보육이 필요한 경우 종일반을 이용할 수 있고, 맞벌이 부부도 보육이 낮에만 필요한 경우 맞춤반 이용이 가능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번 시작된 갈등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정부가 복지 예산이 늘어난 이유를 ‘전업주부의 종일반 이용’에서 찾고 정책을 내놓은 탓이다. 전업주부가 졸지에 복지 예산을 증가시킨 주범으로 지목된 셈.


논쟁은 정책의 정당성을 다루지 못한 채 '전업주부가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것이 옳은가'라는 식으로 엇나가기 시작했다.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전업주부는 온라인에서 ‘맘충’으로 전락해 공격을 받았고, 전업주부는 분노에 떨었다.


◇ '어린이집 이용 제한' 카드 나온 이유


갑자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많은 전문가가 그 원인을 잘못된 정책 설계에서 찾는다. 무상보육을 시행할 때 정부와 정치권이 표심을 얻는 데 급급해 실현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소득 하위 70%에게 보육료를 지급하기로 했던 정책은 2012년 대선을 거치면서 대상이 '전 계층 지원'으로 확대됐다.


2013년부터 전 계층을 대상으로 무상보육을 제공하면서 예산 규모는 커졌다. 경제적 취약 계층만 지원하던 2009년의 보육예산은 3.6조 원이었으나, 무상보육 시행 3년 차에 접어든 2015년에는 10.5조(복지부 추산)를 기록했다.


"모든 아이에게 종일반 보육료를 지원하다 보니…중략… 보육예산이 점차 증가함에도…중략…보육료나 보육교사 처우 등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이라는 복지부의 인식. 맞춤형 보육 시범사업에 참여한 학부모의 90%가 종일반을 선호했다는 설문 결과에도 맞춤반을 추진하는 태도. 맞춤반을 도입해 종일반으로 나가는 지원금을 줄이겠다는 설명까지……. 결국 '예산 절감'이 정부의 주요 목표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옥 덕성여대 명예교수는 "무상보육이 훌륭한 정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돼서) 안타깝다"며 "정부가 보육 정책을 만들 때 보육의 질이 아닌 예산에 방점을 두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 곽문혁 부산시회장은 정부의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2000년대 초반 국가가 지원금을 주면서까지 어린이집을 늘렸으면서 이제 와 어린이집 이용을 줄이는 정책을 편다는 것이다.


곽 회장은 "아이들 많이 낳으라고 영유아 보육을 활성화한 게 정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예산이 없다고 엄마와 아이들을 집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꼴이다. 정책에 맞춰서 예산을 짜야지 예산에 맞춰서 정책을 바꾸나. 어린이집에 CCTV까지 달아놓고 아이들을 집으로 보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무상보육, 애초에 왜 하더라?


물론 모든 사람이 정부의 축소 방침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무상보육을 다시 다듬어야 한다는 데는 많은 이가 동의한다.


김영심 숭실사이버대학교 교수는 "부모만 한 보육기관이 없으며 주 양육자는 부모여야 한다"는 관점에서, 전업주부의 어린이집 이용 제한에 찬성한다. 이번 정책을 차별이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양육하는 환경을 만드는 정책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방향성에는 동의해도 정부가 접근 방식만은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다. 무상보육의 대상은 '아이들'이고, 무상보육의 목표는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인데, 정작 정책을 논할 때 아이들이 배제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어린이집 이용 시간을 논하기보다 가정과 어린이집 두 곳에서 아이들이 함께 잘 자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백선희 서울신학대 교수는 "정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제안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보육예산을 줄이기보다, 무상보육에만 집중된 예산을 다른 곳에 편성해 보육의 질을 올리는 데 투자하면 지지를 받을 것"이라며 “정부가 얼마나 의지와 진정성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정책을 조정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투자해야 할 정책으로는 주로 일·가정 양립을 꼽았다. 서영숙 숙명여대 교수는 "아이를 키우는 기쁨을 가정이 누리도록, 부부가 아이를 함께 키울 수 있게 하는 노동 정책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조언했고, 이옥 교수 역시 "재정 문제를 말하기 전에 모성·부성보호제도 등 엄마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맡기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구종 강릉원주대학교 교수는 '교육'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느냐, 집에 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딜 가든 높은 질의 교육을 받는 쪽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어머니의 취직 여부에 따라 지원 대상을 나누면, 정작 서비스가 필요한 아동이 지원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소득이 높은 맞벌이 가정의 자녀가 소득이 낮은 전업주부의 자녀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게 되는 것.


한 포털 사이트 이용자인 대**는 "월수입이 300만 원인 전업주부 가정 A와 월수입이 600만 원인 맞벌이 가정 B가 있다고 할 때, B가정의 지출을 A가정의 두 배로 잡아도 10년 후 모을 수 있는 돈은 B가정이 2배 이상 많다. 이렇게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한 사람이 집에 있다는 이유로 외벌이 가정에 불리한 정책을 시행하느냐"며 "불공정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백선희 교수는 "복지의 기본은 보편주의"라는 전제 아래, 어머니의 취직 여부에 따라 지원 대상을 정하지 말고, 수혜자의 요구에 맞춰 지원 폭을 정해야 한다며, "7시간 보육을 보편적 서비스로 제공하되 지원 시간이 더 필요한 사람에게 보육 서비스를 추가로 주는 정책"을 제안했다.


백 교수는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이런 방식을 도입하면 보편성을 유지하면서도 이용자의 요구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맘충' 몰러 나간다!


이번 사태가 커진 데는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 즉, '맘충'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어머니를 향한 혐오'가 한몫했다. 전업주부의 어린이집 이용을 제한한다는 기사 아래에는 어김없이 전업주부를 비하하는 댓글과 맘충이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아이고 전업주부 어떻게 하냐. 애 어린이집 보내고 퍼질러 자거나, 커피숍 가거나, 운동가거나, 쇼핑할 시간을 뺏겨서. 이 정책은 당연한 거다. 일도 안 하면서 어린이집에 애 보내고, 엄청 늦게 데리러 오고, 심지어는 애 기저귀도 안 갈아주고 보내는 엄마들 많다."


한 포털 사이트에 달린 댓글에는 전업주부를 향한 혐오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혐오 아래에서 전업주부는 직장에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호할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되고, 노동과 삶마저 존중받지 못한다.


이런 시선은 심지어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 이에게서도 발견된다. 올해 1월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업주부가 종일제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겨 보육할 이유가 없다"고 말해 비판을 받았다.


전업주부들은 억울함을 토로한다. 온라인에서 말하듯 하는 전업주부는 극히 드물다고 하소연한다. 7살, 5살 난 두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한 전업주부는 베이비뉴스와의 통화에서 "집에서 일한다고 해도 개인적인 일보다는 다른 일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병원에 계신 친정어머니를 돌보고 가사노동을 마치면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된다고 했다.


전업주부의 근무 형태가 다양하다는 점도 설명했다. 아이를 돌봐야 하는 어머니들로서는 아르바이트나 부업 형태의 일을 많이 하고,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가정은 시시때때로 점포에 나가 일손을 돕기 때문에 오히려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근무시간이 길다고 했다.


정부가 어머니들을 워킹맘과 전업주부 둘로 나누고, 보육 예산 문제를 전업주부들에게 떠넘기면서, 전업주부들은 사회와 여성 혐오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인정해달라고 외쳐야 하는 처지가 됐다. 전업주부들이 분투하는 사이 논란의 핵심과 책임져야 할 당사자는 모습을 감췄다.


전문가들은 여성 혐오와 그로인해 논의의 주제마저 왜곡되는 현상에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을 사회 구성원이 모두 중요하게 여긴다면, 여성 즉, 어머니를 혐오하는 분위기 혹은 육아를 쉽게 포기하는 경향을 줄일 수 있다고 전했다.


서영숙 교수는 “아이 때문에 우리 사회가 존재할 수 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우리나라도 아이가 귀한 나라다. 사회는 아이를 키우는 주부의 헌신을 귀하게 여기고, 어머니는 아이와 함께 있는 행복한 시간을 감사히 여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Copyrights ⓒ 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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