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그 참을 수 없는 무거움
육아, 그 참을 수 없는 무거움
  • 칼럼니스트 권성욱
  • 승인 2015.11.1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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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함과 관대함의 사이

[연재] 일 가정 양립을 꿈꾸는 워킹대디의 육아칼럼


엊그제 아버지 교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강사님은 "아이의 마음을 읽어라"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부모는 아이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데 그럴려면 어릴 때부터 친밀도를 높이고 평소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 하지만 요즘 부모들은 너무 바빠서 아이와 함께 할 시간 자체가 너무나 부족하다,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져 어린이집과 학원을 전전하면서 남의 손에 크고 있다보니 애착심이 부족하다는 등 당연하면서 다소 장황한 얘기를 늘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앞에 앉은 한 아빠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만약에 아이가 장난치다가 실수로 그릇을 깨뜨렸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 아빠는 30대 후반의 젊은 직장인으로, 아이가 셋인 외벌이 가족이라더군요. 그 분은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뭐, 일단 위험하니까 저리가 있어, 라고 얘기하고 제가 치우죠."

그러자 강사님은 ​"아닙니다. 먼저 아이가 얼마나 놀랐을까요. 놀란 아이부터 '괜찮아'라고 진정시킨 다음, 같이 치워야 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퇴근 후, 또는 주말 내내 아이와 부대껴야 하는 저한테는 두 분의 말씀 모두 교과서같은 대답으로 들렸습니다. 만약 똑같은 질문​을 엄마들에게 던졌다면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분명 열이면 열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아유, 알죠. 그런데 그게 되나요? 아무리 혼 안 내고 참으려고 해도 그만큼 장난 치지 말라고 했는데 잠깐 한눈 팔면 사고 치고 그렇게 혼나고도 10분도 안되어서 다른 방에서 또 장난을 치지 않나, 동생과 싸우지 않나. 엄마도 사람인데 어떻게 만날 참을 수 있겠어요? 그냥 열번 혼낼 거 일곱 번 참고 세 번만 혼내는거죠."

이것이 육아의 현실이죠.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같은 TV 오락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기획 육아와는 다릅니다. 아빠들이 직장에서 업무와 싸우는 동안, 엄마들은 집에서 육아​와 싸웁니다. 밤이 되면 녹초가 되어 잠깐 쇼파에 누워 있으면 퇴근한 남편은 그걸 보고 "하루 종일 그러고 있었냐?"라고 핀잔을 줍니다. 언젠가 어떤 광고에서 남편의 핀잔에 아내가 어이없다며 웃으면서 그 날 하루 자신의 전쟁같은 삶을 떠올리는 장면을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나는군요.

가정마다 육아 환경이 천차만별이고 아빠와 엄마가 체감하는 것 또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언젠가 저녁을 먹은 뒤 TV를 보는데 나은공주가 우유가 담긴 컵으로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컵은 마시는 것이지 장난치는 것이 아니야. 그러다가 바닥에 쏟는다"라고 나무랬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무섭게 결국 카페트에 쏟아버렸습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집사람이 "그러기에 장난 치지 말라고 했지"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방금 전에 카페트를 교체한데다 매트리스까지 통째로 갈아야 하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이 하루 종일 반복되는 것이 육아이고, 엄마들 입장에서 위의 아빠나 강사님의 말씀은 아마 딴 세상 얘기로만 들리겠지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도 생각합니다. 아이는 어른이 아니라 아이라는 사실. 당연하면서도 평소 우리 부모들이 잊고 있죠. 생기발랄하고 호기심 넘치는 아이가 컵으로 장난치는 것이 정상이고 가만히 있으면 그게 이상한 것입니다. 아이는 아이다워야지 엄격한 양육에 짓눌려 주변 눈치나 보면서 애늙은이처럼 행동한다면 그것대로 곤란하지 않을까요.

다시 앞으로 돌아가, 아이 앞에 컵이 있다면 장난을 칠 것이라는 사실은 뻔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고 그걸 뻔히 보면서도 치우지 않은 저나 집사람의 잘못도 있습니다. 물론 저와 집사람도 다른 일을 하고 있었기에 여기에만 신경 쓸 겨를은 없었지만 이유가 어떻든 일단 엎지러진 것은 아무리 화를 낸들 사후 약방문일 뿐입니다. 이미 엎질러진 상태에서 아이를 닥달하는 것은 화풀이일 뿐이고 그런다고 어차피 치워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죠. 아이 또한 자기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혼이 나지 않을까 눈치를 봅니다.

이럴 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아이가 놀란 것을 진정시키는 것이 아니라(3살 짜리에게는 필요하겠지만) 실수를 관대하게 용서해 주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괜찮아. 치우면 돼. 하지만 그렇게 장난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알겠지? 다음에는 그러지마." 육아를 하면서 때로는 엄할 필요도 있지만, 때로는 관대함이 백마디 잔소리보다 훨씬 효과가 있습니다. 아이는 그 관대함에서 부모에게 고마움과 죄송스러움을 느끼고 또한 남에게도 관대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남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엄격함과 포용력을 함께 지녀야 하며, 그걸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이 부모입니다. 따라서 엄격함만이 결코 능사도 아니고, 뭐든 다 괜찮아, 괜찮아 라고 대수롭지 않은 양 말하는 것도 아이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는 정말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테니까요.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루 종일 혼을 쏙 빼놓는 아이들에게 시달리다보면 부모도 인내심의 한계에 직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일단 잔소리가 입에 한번 배면 그게 습관이 되어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반성하면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 튀어 나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잔소리를 듣다보면 무덤덤해집니다. 인간의 뇌란 묘하게도 금새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이런 아이들을 상대로 우리가 올바른 육아를 하겠다면 그만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첫째로, 아이는 아이라는 점, 둘째로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아이를 나의 소유물이 아닌, 나와 똑같이 존중받아야 하는 인격체이지만 아직은 다소 미숙한 존재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노력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가르치려고 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현실의 ​육아는 육아책과는 다릅니다. 어떤 부모도 교과서처럼 완벽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20점 짜리 부모보다는 50점 짜리 부모가 낫고 50점 짜리 부모보다는 80점 짜리 부모가 낫지 않을까요.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아이가 건강한 정신과 높은 자아존중감을 가지게 하는 것은 오직 부모의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육아는 결코 가벼울 수 없습니다. 저는 "육아, 그 참을 수 없는 무거움"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칼럼니스트 권성욱은 울산 토박이이면서 공무원으로 13년째 근무 중이다. 36살 늦깎이 총각이 결혼하자 말자 아빠가 되었고 집사람의 육아 휴직이 끝나자 과감하게 직장에 육아 휴직계를 던져 시한부 주부 아빠로서 정신없는 일년을 보냈다. 현재 맞벌이 집사람과 함께 가사, 육아를 분담하며 고집 센 다섯 살 딸아이의 수발들기를 즐기고 있다. 인생에서 화목한 가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고 항상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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