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법, 누구를 위한 평등법인가?
양성평등법, 누구를 위한 평등법인가?
  • 이정윤 기자
  • 승인 2015.12.1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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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은 양성평등법 주요 내용과 한계

【베이비뉴스 이정윤 기자】

대한민국이 평등한 사회로 나아갈 길은 아직 먼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가 여성의 사회 참여나 직장 내 승진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하는 ‘유리천장지수’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조사 대상국 가운데 최하위인 28위를 기록했다.


정부는 이런 사회 불평등을 개선하고자 1995년 ‘여성발전기본법’을 제정,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지위향상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우리나라 여성의 권리는 앞선 조사에서 보듯, 아직 바닥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불현듯 지난 7월 ‘여성발전기본법’이 모두를 위한 ‘양성평등기본법’으로 바뀌었다. 새롭게 개정된 양성평등기본법의 주요 내용과 그 한계에 대해 알아보자. 


◇ 양성평등기본법이란?


지난 7월 1일, 정부는 ‘여성발전기본법’을 현시대의 상황에 맞춰 법안을 발전시키고 양성평등을 구현한다는 이유로 ‘양성평등기본법’으로 명칭과 법안 내용을 개정했다.
 
양성평등기본법의 모태인 여성발전기본법은 성차별적 관행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고용, 교육복지, 인권 등 각 부문에 걸쳐 여성차별적 요소를 시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1995년에 제정됐다.


이번에 개정된 양성평등법의 목적은 양성평등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등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양성평등을 실현하는 것이다.

과거의 여성발전기본법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남녀평등을 촉진하고 여성의 발전 도모’를 목적으로 한 여성 위주의 정책이었다면 이번 개정은 ‘양성’을 위한 평등을 실행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양성평등’이란 성별에 따른 차별, 편견, 비하 및 폭력 없이 인권을 동등하게 보장받고 모든 영역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대우받는 것을 말한다.


양성평등법은 정책이 ‘성인지적’으로 수립될 수 있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강화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제3장에 명시된 기본시책 중 16조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관계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이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운용에 반영하는 성인지(性認知) 예산을 실시해야 한다고 돼 있다. 


‘성인지예산제도’란 예산이 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예산에 반영하는 제도를 뜻한다. 재원의 남녀 차별적 배분을 시정, 양성평등의 사회적 형평을 구현해야 한다.


그 외 바뀐 주요내용으로는 모성권뿐 아니라 부성권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으며(제25조), 성차별 금지를 위한 시책을 마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또한 7월 한 주간은 여성의 문제를 이야기하자는 목적으로 1996년부터 매년 7월 1일부터 7일까지 열리고 있는 ‘여성주간’을 ‘양성평등주간’으로 변경했다.


◇ 양성평등기본법의 한계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여성단체 회원들이 지난 11월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 종합청사 정문 앞에서 양성평등기본법 개정 이후 후퇴하고 있는 성평등 정책에 대한 기자회견을 갖고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차별을 조장하는 여성가족부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이기태 기자 ⓒ 베이비뉴스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여성단체 회원들이 지난 11월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 종합청사 정문 앞에서 양성평등기본법 개정 이후 후퇴하고 있는 성평등 정책에 대한 기자회견을 갖고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차별을 조장하는 여성가족부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이기태 기자 ⓒ 베이비뉴스


양성평등법이 시행된 지 채 반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개정 이후 여성단체, 인권단체, 소수자인권단체는 차별을 조장한다는 측면에서, 기독교보수단체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반대를 하는 등 양성평등법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1월 27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 여성인권위원회 등 여성단체와 소수자인권단체가 개최한 ‘성평등 정책, 이론, 운동의 방향과 미래’ 토론회에서도 각계 전문가들이 양성평등기본법에 대한 지적을 쏟아냈다. 


▲ ‘양성평등’의 기계적 해석

양성평등기본법의 문제는 ‘양성평등’이라는 말을 기계적 평등으로 해석하는 인식과 해석에서부터 시작된다.
 
토론회에 참석한 배은경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법 개정이 한국 여성정책의 패러다임을 제대로 변화시킬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배 교수는 “여성가족부 장관은 신년사에서 양성평등기본법 시행을 여성정책의 패러다임과 연결시켰다. 그간 여성정책이 여성만 신경 쓰고 있었다면 앞으로는 ‘남성과 여성 모두의 관점에서’ 정책을 펼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권리로서의 성평등, 평등한 주체로서의 여성에 대한 인정, 성 주류화 등에 대한 관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여성인재 활용’을 위한다는 발전주의적 시각과 남녀를 ‘챙겨준다는’ 온정주의적 시각을 드러냄으로써 과거 여성발전기본법이라는 이름에 함축됐던 정책 관점으로 회귀한 듯 보이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또한 “여성정책의 패러다임을 한 차원 끌어올릴 최적기라고 언급하면서도 여성정책을 끌어가는 패러다임의 전환의 의미에 대해서는 공백으로 둔 채 ‘실질적 양성평등’이라는 목표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쉽다”고 밝혔다.


▲ ‘성주류화’ 조치 미흡

양성평등기본법의 기본시책으로 명시된 ‘성 주류화 조치’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평이다.


‘성 주류화’란 양성평등기본법의 기본시책에서 가장 먼저 표기된 사항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성평등화 관점을 통합하는 성 주류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박진경 인천대 기초교육원 교수에 따르면 성 주류화는 사회 전 분야에서 여성참여를 확대하고 정책 전 과정에 걸쳐 젠더관점을 통합해 결과적으로 남성지배적 주류조직을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여성정책의 핵심전략이다.


박 교수는 “성 평등과 성주류화 전략의 목적인 젠더관점에서 불평등의 원인이 되는 사회전반의 권력관계에 가림막을 치고, 생물학적 성별에 의한 기계적 평등으로만 규정하는 양성평등기본법을 만들었다. 기존의 불평등한 성역할과 권력관계는 그대로 둔 채 성비균형이나 남성의 참여에만 집중했다”고 밝혔다.


◇ 여가부의 양성평등은 성적 소수자는 제외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여성단체 회원들이 지난 11월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여성단체 회원들이 지난 11월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양성평등기본법 개정 이후 성평등 정책이 후퇴하고 있다"면서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차별을 조장하는 여성가족부는 각성하라"고 촉구했다. 이기태 기자 ⓒ 베이비뉴스

사회의 소수자였던 ‘여성’을 위한 법이 온 국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양성’을 위한 양성평등기본법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또 다른 소수자는 배제하는 등 양성평등법의 차별적 해석에 따른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8월 여성가족부는 대전시 성평등조례의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가 대전시 성평등조례에서 성소수자 보호 및 지원, 인권보장 등의 내용을 문제 삼아 여가부에 민원을 제기한 것. 여가부는 이를 받아들여 양성평등기본법은 성소수자와 관련된 개념이나 정책을 포함하거나 이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대전시 성평등조례에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삭제하라 요구했다.


이에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경기여성단체연합 및 전국의 여성단체들은 여성가족부에게 개정요구를 철회하고, 오해의 논란이 있는 양성평등기본법이란 이름을 ‘성평등기본법’으로 개정하라는 내용의 공동성명서를 지난 8월 12일 낸 바 있다.


여성단체뿐 아니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성주류화정책을 이해하지 못한 이번 요청은 취소돼야 한다고 지난 8월 13일 성명서를 발표했다. 

각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성가족부의 요구는 철회되지 않았으며, 성소수자 관련 조항이 삭제된 ‘대전광역시 성평등기본조례’ 개정안이 지난 9월 18일 대전시의회를 통과했다.


여가부의 이번 지시를 규탄하는 현장의 목소리와 더불어 성소수자 차별은 UN가입국인 대한민국이 국제법을 어기는 행위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성평등 정책, 이론, 운동의 방향과 미래’ 토론회에서 박 교수는 “유엔은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 등 대한민국이 체결한 여성 관련 국제 조약 이행을 점검하도록 하고 있고, 협약국에 LBTI여성과 관련된 차별적 상황에 관한 상당수의 권고가 이어지고 있다. 2011년 유엔인권이사회에서는 성적지향에 기반한 인권침해 금지결의안을 통과시켰고 한국 역시 이에 찬성투표를 했다. 국제법도 무시하고 시기상조라며 ‘성평등’이 아닌 ‘양성평등’으로 규정하며 기계적 평등과 ‘남성참여’에 집착하며 불평등한 권력관계 변화를 위한 목적을 상실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번 대전시 조례 지시에 대해 “현행 양성평등기본법에서도 성주류화, 성평등지수, 성인지 등 ‘젠더’를 혼용하고 있어 이를 배제할 이유가 없다. (중략) 대전시 조례에 대한 여성부의 개입이 적절하였는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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