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육아휴직을 해야 하는 이유
아빠가 육아휴직을 해야 하는 이유
  • 칼럼니스트 권성욱
  • 승인 2016.01.13 1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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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육아휴직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

[연재] 일 가정 양립을 꿈꾸는 워킹대디의 육아칼럼


지난달 집사람이 교육청 단체 연수로 중국에 다녀왔습니다. 물론 관광은 아니지만 신혼여행 이래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외국에 나간다는 설렘, 하지만 3박 4일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아이와 떨어져 집을 비운다는 부담감. 집사람은 꽤나 마음이 복잡한지 고민하더군요. "이 좋은 기회를 왜 놓쳐? 무조건 가야지.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애도 이제 여섯 살인데 언제까지 품에 안고 있을 거야. 우리는 우리끼리 알아서 잘 살 거니까 걱정 말고 다녀와" 저는 떠밀듯 보냈습니다.

큰 소리는 쳤지만 집사람 없이 혼자서 다섯 살짜리 유아를 돌보기가 제게는 여전히 쉽지만은 않습니다. 퇴근 시간이 되어 부랴부랴 ​내려가면 벌써 집 앞에는 유치원 버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은아~" 부르면 버스 안에서 한참 기다리고 있던 아이가 껑충 뛰어내리면서 선생님에게 넙죽 인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아이 손을 잡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본 후 집에 옵니다. 욕실에서 목욕물 받아 아이를 담근 다음, 그 사이 저녁을 차리면서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어 베란다에 넙니다.

아이 밥 먹이고 양치 시켜주고 책 몇 권 읽어주면 어느덧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늘 엄마 품에 매달려 아빠를 찬밥 대우하던 아이가 오늘은 자연스레 아빠의 팔을 베개 삼아 눕습니다. "엄마 보고 싶지 않아?" "엄마 보고 싶어. 하지만 나는 언니라서 안 울어. 엄마가 나은이 안 울면 올 때 인형 사 온다고 했어." 다섯 살 치고는 꽤나 다부지게 말합니다. 작년에 수학여행 갔을 때 "엄마 보고 싶어"라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던 때를 생각하면 언제 이렇게 컸나 싶습니다.

주말에는 대공원에 가서 그동안 나은 공주가 타고 싶어 하던 킥보드를 태워주고 솜사탕도 사 주었습니다. 아빠와 딸의 데이트라기에는 아직은 공주와 시종 같은 느낌입니다. 집에 오는 길에 저녁까지 시간이 남았기에 집에서 가까운 블록 카페에 들렸습니다. 아직은 서툴러서 조립보다는 레고 캐릭터 가지고 인형 놀이하는데 더 흥미를 느낍니다. 덕분에 아빠만 눈알 빠지도록 조립했습니다.

저녁에 집사람에게 전화가 와서 한국에 도착했다는군요. 밤 11시쯤,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집사람이 들어왔습니다. "엄마~~" "나은아~~" 마치 몇십 년 만에 보는 가족 상봉 같습니다. 그리고 제게 말합니다. "당신 나흘 동안 고생 많이 했지?" "고생은 무슨. 연수 잘 보내고 왔어?"

​맞벌이 부부라면 어느 가정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제아무리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해도 직장 일로 가정을 포기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걸핏하면 야근에, 주말에도 행사 때문에 출근하기 일쑤이고 장거리 출장이나 연수 때문에 며칠씩 얼굴을 못 보는 일도 있습니다. 제가 며칠씩 집을 비워야 할 때에는 집사람이 혼자서 직장과 육아, 가사를 오롯이 전담하듯, 집사람이 없을 때에는 마찬가지로 제가 그 역할을 고스란히 해야 합니다.

한창 일해야 할 나이인데다 학교에서는 중견 교사로서 부장 업무까지 맡아 눈코 뜰 새 없는 집사람이지만, 집에 오면 끝없이 쌓여 있는 집안 일과 아이 돌보미까지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슈퍼 워킹맘이죠. 그나마 저는 가사와 육아를 분담하여 집사람이 직장 생활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주변에서는 그런 저를 보고 "별난 아빠"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집사람이 하는 일의 1/3이나 될까 싶기도 합니다. 그만큼 엄마들이 해야 할 일은 많습니다.

더욱이 주변 아빠들과 얘기하면 가사, 육아를 분담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머리로는 막연하게 공감합니다. 하지만 막상 ​"뭘 하느냐?"라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 합니다. "그런 건 당연히 여자가 해야지" "알기는 아는데 바빠서" 차라리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아빠들은 퇴근 후 설거지라도 하고 아이와 놀아주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울거나 응가를 싸는 등 뭔가 자신이 해결하기 곤란하다 싶으면 "엄마한테 가"라고 떠넘깁니다. 더욱이 집에만 오면 한없이 게을러지는 것이 남자들의 본능인지 몰라도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그런 마음마저 사라지고 가사와 육아, 자녀교육 문제는 자연스레 아내의 몫이 됩니다.

주변 아빠들만이 아니라, 작년 통계청에서 양성평등과 관련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맞벌이 여성이 가사 육아로 일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3시간에 달하는 반면, 남성들은 40분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OECD 국가 중에서 양성평등 수준은 최하위입니다. 그만큼 맞벌이와 상관없이 가사와 육아는 아내의 몫이라는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시대의 변화에 사람의 의식이 따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일까요. 사람이란 아무리 말로만 들어도 결국 몸소 경험해 보고 느껴보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아이가 두 살 때 육아휴직을 통해 가사와 육아의 어려움을 절감하고 아이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낄 기회가 없었다면 여느 아빠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육아휴직 1년.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내 손으로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아이와 부대끼며 서툰 솜씨로 이유식과 간식을 만들었습니다. 문화센터에 가면 엄마들 속에 끼어 있는 유일한 아빠였습니다. 물론 청소에 빨래, 설거지, 장도 봐야 합니다. 하루만 게을리해도 집안은 난장판이 되고 집사람과 아이에게 먹일 찬거리가 없습니다. 그제야 이전에 집사람이 육아휴직할 때 "도대체 당신은 집에서 뭐 하기에 집안 꼴이 늘 이 모양이야" 투덜대었던 제 모습이 부끄러워집니다. 제게 육아휴직은 첫째로 아내의 입장을 이해하고 둘째로 아이와의 애착심을 쌓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작년에 남성 육아휴직자는 3400여 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공무원, 군인, 교사는 제외한 숫자입니다. 요 근래 많이 늘었다지만 ​여전히 전체의 4%가 채 되지 않습니다. 물론 사회적 인식 부족과 보수적인 직장 분위기가 가장 큰 걸림돌일 것입니다. 많은 직장에서 남성 육아휴직은 고사하고 여성들조차 변변히 출산 휴가도 쓰지 못한 채 자의반 타의 반으로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사회 탓, 직장 탓 말일까요. 설사 기회가 있으면 육아휴직을 선택할까요. 책임은 남성들의 낮은 의식에도 있습니다.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해도 진짜로 육아휴직을 하는 사람은 여전히 보기 드뭅니다.

언젠가 제 직장에서 어떤 아빠가 뒤늦게 육아휴직을 용감하게 신청하면서 저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얻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반년 만에 복직하더군요. "막상 해보니까 아빠 노릇하기가 너무 힘들더라" 육아휴직이란 결코 장기 휴가가 아닙니다.『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연예인들이 초보 아빠로서 어린 자녀들과 알콩달콩 하게 사는 모습은 참으로 훈훈하지만 현실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제가 육아휴직을 한 것도 전례가 없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육아휴직을 한 아빠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대부분 이렇게 말합니다. "원래 아이는 여자가 키워야 하는 것 아니냐" 진짜 걸림돌은 바로 이런 인식에 있는 것이 아닐지.

세상이란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습니다. 더욱이 내가 가만히 있으면 정치하시는 분들이 알아서 바꿔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엄마들이 나서야 할까요. 바로 아빠들이 나서서 "나부터" 생각을 바꾸어야 비로소 우리 사회도 조금씩 바뀝니다.


*칼럼니스트 권성욱은 울산 토박이이면서 공무원으로 13년째 근무 중이다. 36살 늦깎이 총각이 결혼하자 말자 아빠가 되었고 집사람의 육아 휴직이 끝나자 과감하게 직장에 육아 휴직계를 던져 시한부 주부 아빠로서 정신없는 일 년을 보냈다. 현재 맞벌이 집사람과 함께 가사, 육아를 분담하며 고집 센 다섯 살 딸아이의 수발들기를 즐기고 있다. 인생에서 화목한 가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고 항상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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