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 직원 위해 전 부치는 보육교사의 눈물
구청 직원 위해 전 부치는 보육교사의 눈물
  • 김은실 기자
  • 승인 2016.02.19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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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조건 문제제기한 보육교사 3명 계약만료 통보 비정규직에 블랙리스트까지 고용 불안에 떠는 선생님들

【베이비뉴스 김은실 기자】

지난해 9월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날, 서울시 성북구청 직장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보육교사들은 전을 부치고 있었다. 구청 공무원에게 주기 위해서다. 교사 4명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전을 만들고 부쳤다. 교사가 전 부치기에 동원되면서 아이들은 몇 개 반을 통합한 교실에서 교육을 받았다.

업무 시간에 원장이 주문대로 다른 일을 해야 했지만 교사들은 시키는 대로 묵묵히 전을 부쳤다. 원장에게 문제를 제기하면 불이익이 올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원장은 구청을 돌며 교사들이 부친 전을 돌렸다.

근로조건을 두고 원장에게 문제를 제기한 이 어린이집의 교사 세 명은 올해 1월 계약 만료를 통보받았다. 직장을 잃을 위기에 놓인 교사들은 부당해고라며 반발했고, 구청 담당자와 구청 내 인권센터에 민원을 제기했다. 교사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구청은 재계약을 약속하고 교사들과 세부 내용을 논의 중이다.

원장에게 문제를 제기하면 바로 해고를 당할 수 있는 처지에 놓인 건 비단 성북구청 직장어린이집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린이집 교사의 대다수는 계약직으로 근무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은 자동적으로 계약 연장이 된다. 이번에 계약 만료를 통보받은 성북구청 직장어린이집 교사들도 “민간에서도 계약직으로 고용하지만 당사자가 그만두지 않는 한 자동으로 계약을 갱신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용 주체와 근로자가 갈등 상황에 놓이자 비정규직이란 조건은 큰 약점으로 작용했다. 성북구청 교사 A 씨는 “문제를 제기할 때만 해도 내가 비정규직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만약 그 점을 인지했더라면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어린이집 원장 사이에서 암암리에 오간다는 이른바 ‘블랙리스트’의 존재도 보육교사들의 입지를 약하게 한다. 2013년 보육시설비리고발및 고충상담센터가 “한 원장이 특정 보육교사들의 재취업을 방해하려고 교사들의 신상이 담긴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배포했다”고 주장하면서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세상에 공개됐다.

성북구청 교사 B 씨는 “원장에게 이의를 제기할 때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제일 부담됐다”고 토로했다. 교사 C씨는 아예 보육 현장을 떠날 각오까지 하고 부당해고를 지적했다고 말했다. 그는 “원장이 ‘이 바닥은 좁다. 신뢰를 쌓지 않고 나가면 좋은 소리 못 해준다’더라. 일을 더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하고 시작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비정규직 사용의 모범이 돼야 할 공공부문도...

ⓒ노동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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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청 직장어린이집은 비정규직의 무분별한 사용을 지양해야 하는 공공부문 기관이다. 정부는 2006년부터 “공공부문이 올바른 비정규직 사용 관행을 정착시켜 모범적인 사용자로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있어 민간부문을 선도해 나가도록 하자”며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정부는 이를 기반으로 ▲원칙 없는 비정규직 사용 ▲정규직과의 근로 조건 격차 ▲위법 · 탈법적 활용 등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2012년에는 ‘상시·지속적 업무 담당자의 무기계약직 전환 기준’을 만들어 2년 이상 상시·지속적 업무를 수행하는 비정규직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도록 했다. 이달 18일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에서도 “상시·지속적인 업무는 정규직(무기계약직)을 고용하는 관행을 정착시켜 나간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공공부문에 속한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계약을 자동으로 갱신하는 관행을 깼다.

이남신 한국비정규직센터 소장은 “지자체장에게는 민간과 달리 모범 사용자로서의 공익적인 역할도 있다. 예산에 제약이 있긴 하겠지만, 보육교사의 고용 형태를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으로 안정시키는 것이 아이들을 키우는 데도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또 인권 침해가 사실이라면 이도 엄정하게 다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원장이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이를 사과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별도의 대책을 마련해 재발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성북구청 "계약 만료 교사 문제, 곧 해결될 것"

성북구청은 보육교사들의 부당해고 관련 문제 제기에 대해 "계약 만료는 법에 따라 진행했다"고 전해왔다. "어린이집 보육교사를 기간제 근로자로 분류해 매년 2월 계약을 갱신했으며, 올해도 법령에 근거해 정당한 절차에 따라 갱신했다"는 것.

구청 측은 "계약 만료를 통보할 때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라 계약 만료일이 오기 한 달 전 계약 기간 만료를 통보했으며, 강압적이고 감정적인 처리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구청은 "계약이 만료된 교사들이 구청 직장어린이집에서 계속 근무하기 원하면 다시 응시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청 측은 교사들과 구청 측의 합의는 조만간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부당해고라며 문제를 제기한 교사들이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 지부에 전권을 위임해 구청과 노조가 재계약의 세부 내용을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구청 측은 22일 최종 합의가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명절 때 보육교사들이 구청 직원을 위해 전을 부쳤다는 주장에 관해서는 "이웃과 명절음식을 나눔으로써 원아들에게 미풍양속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으로 활용한다"고 해명했다. 어린이집에 많은 도움을 준 부서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차원에서 진행했다는 것. 그러나 "보육교사의 피로감을 인지하고 자발성이 없는 배려와 감사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올해부터는 행사를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성북구청 측은 마지막으로 "공공기관이 모범적인 비정규직 사용자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을 갖고 생활임금제 시행 등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므로 '성북구청 직장어린이집은 비정규직의 무분별한 사용을 지양해야 하는 공공부문 기관'이라는 지점에 그 누구보다 깊이 공감하고 있다"며 "보육교사가 제기한 문제를 다각적으로 검토한 바 개선의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해결의 의지를 갖고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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