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일 가정 양립을 꿈꾸는 워킹대디의 육아칼럼
저희 집에서 나은공주의 책읽기 담당은 아빠입니다. 물론 엄마가 읽어줄 때도 많지만, 나은공주는 잠자리에 들기 전 책장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네다섯권 뽑아 침대로 들고 와서는 아빠에게 읽어 달라고 합니다. 책 좋아하는 아빠로서 워낙 독서 교육에 열성이다 보니 자연스레 '책을 읽어주는 사람은 아빠'라고 여기나 봅니다.
책을 읽어주는 요령은 사람마다 제각각이겠지만, 저는 뭔가를 가르치기보다는 책을 통해 아이와 교감하고 대화하려고 합니다. 가령 "그림에 사과가 몇개 있어?"라는 식으로 묻는 것은 아이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뭔가 과제를 받는 것같은 느낌이 들어 책의 흥미를 떨어뜨리게 합니다. 만약 아이가 책에 관심이 없다면 책 읽어주는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저는 글밥을 읽어주면서 때때로 이렇게 묻습니다.
"친구가 혼자 있고 싶대. 나은이도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어?" "응" "언제?" "유치원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 나는 혼자 있고 싶어" "그렇구나. 나은이도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구나"
책을 읽다가 시내로 나온 곰때문에 깜짝 놀란 사람들이 도망가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왜 도망갈까?" "곰이 나타났으니까" "왜?" "곰이잖아" "맞아. 곰은 아주 무서운 동물이야. 덩치도 크고 사납거든" "아기곰은?" "아기곰은 귀여워. 안 무서워. 하지만 크면 무서워" 이렇게 문답을 통해 저는 아이의 기질과 감정을 이해하고, 아이는 책에 대한 공감을 높이면서 내용을 더 오래 기억합니다. 몇달 전에 딱 한번 읽은 책조차 뒷 내용을 통째로 기억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놀란 적도 있습니다.
나은공주는 또래에 비해서 말문이 빨리 틔였고 어휘력 또한 상당히 풍부한 편입니다. 감정 표현도 풍부하고 재치도 있습니다. 이는 어쩌면 타고난 재능일지도 모르지만, 책 읽기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하루 아침에 된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서툴기 짝이 없었지만 꾸준히 책을 읽어주다보니 어떻게 읽어줄 때 아이가 가장 좋아하더라는 것을 자연스레 체득하였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신문기사에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것은 아이의 어휘력 발달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 아빠가 읽어주면 훨씬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주장 자체는 다소 설득력이 부족할지 모릅니다. 그 말대로라면 엄마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필요가 없는 것일까. 아빠가 없는 싱글맘 아이들은 모두 어휘력이 부족할까.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책은 엄마도 읽어주고, 아빠도 읽어주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읽어주면 다 좋습니다. 다만 우리 대다수 가정의 여건상, 엄마가 읽어주는 쪽이 보편적이기 때문이죠. 핵가족 시대이다 보니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사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다 아빠 역시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다보니 책 읽어줄 기회가 드뭅니다.
바꾸어 말해 요지는 엄마가 읽어주는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엄마 다음으로 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아빠이기에 아빠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또한 엄마의 고음보다는 아빠의 중저음이 아이의 두뇌와 감성을 보다 자극해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나은공주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나은이는 엄마가 읽어주는 것이 좋아? 아빠가 읽어주는 것이 좋아?" "둘 다 좋아" "왜?" "둘 다 나 사랑하잖아" 아이는 정말 솔직합니다.
*칼럼니스트 권성욱은 울산 토박이이면서 공무원으로 13년째 근무 중이다. 36살 늦깎이 총각이 결혼하자마자 아빠가 되었고 집사람의 육아 휴직이 끝나자 과감하게 직장에 육아 휴직계를 던져 시한부 주부 아빠로서 정신없는 일 년을 보냈다. 현재 맞벌이 집사람과 함께 가사, 육아를 분담하며 고집 센 다섯 살 딸아이의 수발들기를 즐기고 있다. 인생에서 화목한 가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고 항상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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