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다 얼굴 맞은 딸, 친구가 왜 때렸냐 물으니
밥 먹다 얼굴 맞은 딸, 친구가 왜 때렸냐 물으니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6.06.0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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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가 쓰고 그린 <우리 딸은 어디 있을까?>

[연재]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어린이집인데요."

선생님과 통화가 되기까지 그 몇 초. 잠시 동안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어디 아픈가?' '다쳤나?'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닌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는데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런 것이다. 그러나 이날은 불길한 예감이 맞았다.

"아이가 친구에게 얼굴을 좀 맞았어요. 저희 반이 장애통합반인 거 아시죠? 약간의 자폐 증상을 보이는 친구인데, 식사 시간에 뭐에 화가 났는지 옆에서 밥 먹던 아이를 갑자기 때렸어요."
"아… 그래서 좀 다쳤나요?"
"아니 다친 데는 없는데… 좀 놀랐을 거예요. 밥 먹다가 갑자기 그래서."
"그렇군요. 다친 데 없어서 다행이네요."
"네, 좀 더 조심하겠습니다. 오늘 좀 잘 살펴주세요."
"아닙니다. 네. 그럴게요."

큰아이가 졸업한, 그리고 지금은 둘째아이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은 5세부터 '장애통합반'으로 운영한다. 신체 장애가 그리 크지 않은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과 함께 한 교실에서 같이 공부하고 밥 먹고 논다.

큰아이도 장애가 있는 친구들과 함께 3년을 보내고 졸업했다. 1년을 마무리 하는 재롱잔치 때도 장애 아이들은 끝까지 자리를 함께 했다. 똑같이 따라 하지 않아도, 중간에 울면서 엄마를 애타게 찾으면서도 무대에서는 내려오지 않았다. 대열에서 벗어나지도 않았다.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아주 복합적인 마음이 들어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우여곡절 끝에 모두 함께 공연을 마친 아이들 모습을 보는 건 그 자체로 큰 감동이었다. 그 아이들의 부모들은 더 했겠지.

요즘 같은 세상에, 결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이 시간들을 통해 자신과 '다른'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기다려주고, 배려하고, 함께 하는 마음을 키웠다고 믿는다. 물론 (내 아이를 포함) 장애가 있는 친구들 때문에 본의 아니게 상처를 받거나, 힘들었던 친구들도 있었을 거다. 그렇더라 해도 뭔가 문제를 삼거나, 대놓고 불만을 제기하는 엄마는 없었다. 모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니까. 세상에 귀하지 않은 아이들은 없다는 걸, 엄마들은 아니까.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건 있었다. 가끔 만나게 되는 통합반 친구들 엄마들은 늘 뭔가 잘못한 얼굴이었다. 불편한 얼굴, 숨고 싶은 얼굴. 나는 그 표정이 늘 마음에 걸렸다. 그러지 않아도 좋은데, 좀 맘껏 웃어도 좋을텐데…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가 쓰고 그린 <우리 딸은 어디 있을까?> 속 엄마처럼, "우리 딸은 나에게 이 모든 것이에요. 우리 아들은 나에게 이 모든 것이에요" 크게 말해도 좋을 텐데.

ⓒ논장
ⓒ논장


우리 딸은 숨는 걸 좋아해요. 껍데기 속으로 숨는 달팽이처럼. 그럴 땐 찾기가 쉽지 않죠. 우리 딸은 새처럼 즐겁다가 물개처럼 슬프고, 토끼처럼 얌전하다가 악어처럼 거칠어요. 물고기처럼 조용하다가 수탉처럼 시끄럽고 거북이처럼 느리다가 캥거루처럼 날쌔요. 하마처럼 서툴기도 하지만 다람쥐처럼 잘하기도 하죠. 돌고래처럼 친절하다가 가끔은 늑대처럼 사납기도 하죠. 여기까진 다소 밋밋한 그림책이었다. "우리 딸은 나에게 이 모든 것이에요"라고 딸의 모습을 공개하기 전까지는. 마지막 장을 펴는 순간, 심쿵주의!

그랬는데 큰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후엔 뭔가 좀 달랐다. 학교에서 만난 엄마들이 어린이집 엄마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좀 과장한 것일 수는 있지만) 철저하게 '내 아이' 편이 된다(나라고 다를까, 늘 그렇다고 솔직히 장담은 못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만 계속 그 아이 짝을 시켜요. 아마 우리 딸이 순하고, 또래 아이들에 비해 잘 챙기니까 그런 것 같은데… 벌써 두 달째인데, 다음에 또 짝이 되면 선생님께 말씀을 드려볼까 해요. 우리 애가 너무 힘들어 하니까."

그 애는 큰아이랑 같은 어린이집을 다녔던 장애통합반 친구다. 엄마들 반모임에서 나온 이야기. 잠시 정적이 흘렀다. 순간 엄마들 머리 위로 동시에 말풍선이 하나씩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럼 우리 애도 힘들어지는 거잖아'. 그 엄마 말대로 자리를 자주 바꾼다고 힘들지 않을까. 문제는 짝꿍이 아닐텐데… 그보다 서로의 차이에 대해 알게 하는 건 어떨까. 친구가 가진 장애를 이해하면 아이들도 덜 힘들지 않을까. 분위기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혼자 했더랬다.

ⓒ논장
ⓒ논장


아이가 얼굴을 맞았다는 이날,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작은 아이에게 물었다.

"오늘 어린이집에서 친구랑 안 좋았다면서?"
"응… 엄마, 친구를 때리면 나쁜 아이지?"
"음… 때리는 행동은 분명 안 좋은 건데, 때린 사람이 늘 나쁜 건 아니야."
"그래?"
"친구가 왜 때렸는지 알아?"(이때만 해도 장애 아이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이었다)
"응. 그 친구들은 하나 하나 하나 생각주머니가 작아서 그래."
"그렇게 예쁜 말을 어떻게 해?"
"선생님이 알려주셨지."

오늘도 아이에게 하나 배웠다.

[이 책의 작가는요]

이 책 저자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는 폴란드 전역에 있는, 여러가지 천을 이용해서 바느질한 것을 책으로 엮었다. '이 천을 사용했던 사람들의 경험과 에너지가 들어있을 거라' 여기면서. 조금은 허술하고, 만들다 만 것 같은 그림들도 보이지만, 작가는 말한다. '어떤 일이든 그 뒷면에는 삐뚤빼뚤한 실자국이나 튀어나온 매듭같은 그런 부분이 있다는 걸 드러내고 싶었다'고. '우리 모두의 본성은 완벽하지 않고 어떤 일이나 마무리는 힘든 법'이라면서. 읽을수록 작가의 고운 마음이 느껴지는 그림책이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로, 10살 다은, 6살 다윤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두 딸과 함께 읽으며 울고 웃은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함께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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