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채로 살아가야 할 아이들은…"
"아픈 채로 살아가야 할 아이들은…"
  • 윤지아 기자
  • 승인 2016.07.08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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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식구 모두 가습기살균제 피해 입은 한 가정의 삶

【베이비뉴스 윤지아 기자】

어떤 질문을 던져도 엄마의 대답은 ‘우리 아이들은…’으로 마무리됐다. 어느 엄마가 자식사랑이 뒤 쳐지겠냐마는, 본인 역시 아픈 몸으로 아픈 아이 둘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이 어떨지는 감히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지난 7일 가습기살균제 가족피해를 입은 김태은 씨를 인천 자택에서 만났다. 초등학교 6학년, 3학년의 두 아이를 둔 엄마는 폐섬유화를 앓고 있으면서, 정신과 치료도 함께 받고 있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다. 엄마만 아프면 다행이겠지만, 남편과 두 아이까지 4명의 가족이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김 씨 가족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장마가 끝날 무렵, 이슬비가 내렸던 그날도 엄마는 집 안의 모든 문을 닫고 제습기를 켰다. “폐가 좋지 않은 사람은 습할수록 호흡이 어렵다”는 말과 함께, 그녀는 바깥세상과 연결된 모든 문을 닫았다. 이런 상황을 ‘감옥생활’이라 칭하면서 말이다.





◇ ‘99% 살균, 아이도 안심’ 그 말을 믿은 순간 찾아온 아픔

“2004년 초겨울부터 옥시 싹싹 가습기당번 제품을 사용했어요. 살던 집이 중앙난방이라 집이 굉장히 건조했거든요. 첫 아이가 태어나고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어요. 공기나 온도 모든걸 맞춰주고 싶었죠.”

어떤 엄마든 아이가 태어나면 아낌없이 해주고 싶기 마련이다. 태은 씨 역시 그랬다. 육아잡지만 해도 몇 권을 봤는지 모른다. 당시 육아 잡지 속에는 ‘옥시 싹싹이 제안하는 가전제품 살균 방법’이란 형태의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광고와 기사가 가득했다. 태은 씨는 그 광고를 믿었다. 옥시만큼 큰 회사의 제품이 육아 잡지에 실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길 권하고 있었다.

2006년 둘째 아이를 임신한 그녀는 집중적으로 가습기를 틀었다. 방에서 생활할 때는 방에서 틀고, 거실에 나와 생활할 때는 거실로 가습기를 꺼내와 틀었다. 틀 때마다 살균제는 정량에 맞춰 넣었다. 여행을 가거나 일이 있어 외출을 할 때도, 가습기살균제만큼은 챙겼다. 그렇게 신경 쓸 만큼 태은 씨에게 소중했던 두 아이였다.

태은 씨의 호흡기 이상 증세는 둘째 아이 임신 6개월 즈음인 2006년 가을부터 나타났다. 첫째 아이를 낳고도 회복이 빨랐던 태은 씨였던 터라 이상 증세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임신 중엔 호흡이 불규칙할 수 있다”고 설명할 뿐, 이렇다 할 설명을 해주지 못했다. 당시 의사에게 전한 ‘유통기한 2~3일 정도 지난 우유를 먹었다'는 말만 진료기록에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호흡이 가쁘던 태은 씨는 결국 둘째 아이가 태어나던 2007년 3월 3일, 산소호흡기를 낀 채로 자연 분만했다. 2주간 예약해둔 산후조리원에서는 10일 만에 나왔다. 집으로 온 게 아니었다. 큰 병원으로 옮겨졌다. 원인 모를 희귀병에 걸렸다는 진단과 함께 말이다.

갓 태어난 둘째 아이는 혼자 산후조리원에서 지냈다. 산후조리원 계약 기간이 끝나고선 친척집을 전전했다. 큰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세 살도 채 안 된 큰 아이와 갓 태어난 둘째 아이는 그 어린 나이에 엄마 곁에 있을 수 없었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은 가습기살균제 때문이었다. 그땐 몰랐다.





◇ 젖이 돌아도 모유를 줄 수 없었던 엄마

태은 씨는 ‘원인 모를 희귀병’이라는 병명으로 한 달간 입원했다. 출산 직후였던 태은 씨는 초유를 아이에게 줄 수 없음에 절망했다. 젖이 돌 때마다 아이 생각이 간절했다.

병원에서는 “집안에서 폐병의 원인을 찾아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이사도 했다. 이사하면서 곰팡이가 의심돼 온 집안의 장판과 벽지를 뜯었지만 특이점은 없었다. 순간 열심히 틀었던 가습기를 의심하기도 했었지만, 살균제를 꼼꼼히 넣었기 때문에 가습기 곰팡이균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퇴원 후 3개월, 6개월 즈음 시간이 흐르자 굳었던 폐로 생활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아이들도 곁으로 돌아와 생활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숨이 가빠지고, 다시 호흡 이상 증세가 찾아왔다. 아프던 차에 검사를 진행하니 셋째 아이가 생긴 것이었다. 2010년 3월 27일이었다.

태은 씨는 지금도 그 날을 잊지 못한다. 산부인과에서 임신 6주라는 진단을 받은 날이자 아이를 보내기로 결정한 날이다.

“병원에서는 바로, 이 몸 상태로 임신유지가 어렵다고 했어요. 몸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아이를 보내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임신 진단 받은 다음날, 인공유산 수술을 했어요.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태은 씨는 지금도 그 날만 되면 남편과 절에 가서 기도드린다. 간질성 폐질환 진단을 받은 후 보낸 아이였다. 그녀에겐 몸에도, 마음에도 상처가 남았다.

◇ “남편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고 싶어요”

두 아이의 엄마 태은 씨는 아이들에게 혼자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 언제 호흡이 멈출지, 언제 또 아이들 곁을 떠나야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엄마가 없어도 아이들이 잘 살아가길 바라기 때문이다. 강하게 키운다. 마음은 아프지만 어느새 자리 잡은 교육방침이다.

아이들은 잠깐이나마 어릴 때 떨어져 지낸 탓에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다. 6학년인 큰 아이는 어릴 때 엄마가 아팠던 쇼크로 지금도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 작은 아이 역시 불안정애착으로 놀이치료를 받고 있다. 물론 아이들은 정신적 쇼크뿐 아니라 가습기살균제에 의한 폐질환과 피부질환, 다한증 등으로 고생하고 있는 상태다.

김태은 씨의 네 가족이 복용하고 있는 약. 이기태 기자 ⓒ베이비뉴스
김태은 씨의 네 가족이 복용하고 있는 약. 이기태 기자 ⓒ베이비뉴스


남편 역시 기관지염, 편도선염, 기관지확장증을 비롯해 가습기살균제에 의한 폐질환 진단을 받았다. 조금만 피곤해도 피를 토한다. 소주잔 2잔 정도의 적지 않은 양을 쏟아낸다. 하지만 남편에게 있어 가장 큰 아픔은 ‘내가 넣은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가족이 모두 아프다는’ 죄책감이었다. 짓누르는 죄책감에 정신과 진료까지 받고 있는 남편에게 힘이 되어주는 건 아내 태은 씨다.

온 가족이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몸, 정신 건강 모두를 잃었다. 태은 씨의 네 식구는 2011년 11월 우연히 켠 라디오에서 가습기살균제 관련 정부발표를 듣고, 바로 피해자 신고 접수를 했다. 정부 1차 조사 때 등급판정도 받았다. 구체적 진료 기록이 남아있는 태은 씨는 1등급, 아이들은 2등급, 폐렴을 앓았던 남편은 3등급으로 판정됐다.

“특히 막내 딸아이는 CT, 조직검사 등의 자료가 부족해 처음엔 3등급 판정을 받았어요. 재검을 통해 2등급이 됐습니다. 남편은 증세가 악화되고 있지만, 기저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3등급에 멈춰있습니다.”

외출 시에 김태은 씨 가족이 착용하는 마스크. 미세먼지 등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김태은 씨의 집 안에는 마스크의 종류도 다양하다. 이기태 기자 ⓒ베이비뉴스
외출 시에 김태은 씨 가족이 착용하는 마스크. 미세먼지 등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김태은 씨의 집 안에는 마스크의 종류도 다양하다. 이기태 기자 ⓒ베이비뉴스


◇ “상해입은 아이들을 위한 제도와 구제 필요해요”

온 가족이 아픈 통에, 태은 씨네 가족에게 자유로운 외출은 금지 된지 오래다. 미세먼지가 심하거나 습기가 많은 날, 메르스와 같은 감염성 질환이라도 유행하는 날엔 아이들은 학교조차 가지 못한다.

“친했던 주변 엄마들이 동네에서 이사 간줄 알 정도에요. 아이들은 무리하면 코피가 멎지 않고 병원 검진도 계속 받아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출석일수만 지키는 정도입니다. 분명 평범한 일상은 아닙니다.”

아이들은 리코더를 불거나, 체육활동 등의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 측은 비상사태를 대비해 아이 교실에 전용 산소통을 배치해 뒀다. 분명 살아가고 있고, 생활하고 있지만 모든 일에 장애가 있음은 틀림없다.

태은 씨는 본인보다 앞으로 살아갈 아이들이 걱정이다. 큰 아이의 꿈인 과학자가 되는 일에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아픔이 장애가 될까봐, 둘째 아이 역시 건강상의 문제로 어떤 일에서 장애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 가해 기업은 상해입은 아이들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지 않고 생활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그러려면 가해 기업은 책임있는 배상을, 국회는 국정조사를 통해 제대로된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해요. 정부 역시도 면역력이 약해져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이 장애등급을 받을 수 있거나 아이들을 위한 제도 개선에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만이 살아있는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건강히 살아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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