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실의 시대, 유모차 부대]유모차는 이제 평화시위의 상징
[순실의 시대, 유모차 부대]유모차는 이제 평화시위의 상징
  • 정가영 기자
  • 승인 2016.11.24 14: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우병→세월호→박근혜 사태까지 유모차 부대의 ‘힘’

【베이비뉴스 정가영 기자】

[특별기획] 순실의 시대, 유모차 부대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린 것 같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작금의 현실은 국민들을 혼동에 빠트렸다. 국민들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시작해 분노, 자괴감, 그리고 깊은 상실감까지 너무나 아픈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6년 우리는 끝 모를 ‘상실의 시대’ 아니, ‘순실의 시대’에서 허덕이는 중이다. 괴롭고 미안한 시간들의 연속이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순실의 시대를 이겨내기 위해 거리로 나온 시민들, 너나 할 것 없이 높게 든 촛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해야 한다는 깊은 염원의 상징이다.

촛불집회 현장 속에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거리로 나온 ‘유모차 부대’도 있다. 상실의, 순실의 시대일지라도 아이들의 미래만큼은 어른들이 지켜주자는 마음이 유모차 부대를 이끌었을 것이다. 베이비뉴스는 특별기획으로 ‘순실의 시대, 유모차 부대’를 싣는다.

지난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엄마들이 자녀를 유모차에 태우고 광우병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이기태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엄마들이 자녀를 유모차에 태우고 광우병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이기태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12일과 19일 거리로 쏟아져 나온 민심은 지도자를 향한 분노, 그리고 ‘대체 끝은 어디인가’하는 절망과 공허함이 폭발한 장이었다. 목소리는 같았고 강했다. 그러나 참여자는 남녀노소, 세대를 초월한 온 계층이었다. 특히 아이와 함께 나온 가족들, 일명 ‘유모차 부대’라 불리는 시민들의 모습은 강렬했다. 유모차 부대는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힘을 실어주는 동력체인 동시에 촛불집회를 문화 축제의 장으로 만드는 평화의 상징이 됐다.

◇ 1980년대는 넥타이 부대, 2000년대는 유모차 부대

 

‘유모차 부대’는 1980년대 흰색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주로 사무직에 종사하는 소시민을 뜻하는 용어인 ‘넥타이 부대’에서 유래됐다. 아이와 엄마의 상징인 유모차에 집단이나 무리를 뜻하는 ‘부대’가 붙었다. ‘아줌마 부대’, ‘예비군 부대’도 같은 맥락이다. 대개 유모차나 아기띠를 이용하는 영유아와 함께 한 가족이나 엄마들을 일컬어 유모차 부대라고 칭한다.

중앙대학교 신광영 사회학과 교수는 “자발적으로 나와 무리가 이뤄지고, 한 목소리를 내긴 하지만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런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가 마땅히 없다보니 과거 넥타이 부대의 ‘부대’를 사용해서 유모차 부대로 불리게 됐다”고 말했다.

유모차 부대가 본격적으로 거리에 모습을 드러낸 건 2008년 광우병 파동 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같은 해 4월 광우병 우려로 수입이 제한됐던 30개월 이하 미국 소의 모든 부위를 수입하는 내용을 담은 미국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개정에 합의하자,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졌다. 이때 아이의 먹거리를 걱정했던 엄마들도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거리에 섰다. 당시 집회 참여자들의 특징을 보면 조직적인 구심력은 떨어지고 시민의 자발성이 커질 때였다. ‘광우병 쇠고기가 내 아이의 밥상에 올라간다’는 불안감은 엄마들을 움직이게 했다. 인터넷 육아카페에서 육아정보를 교환하던 엄마들이 ‘아이를 위해 우리도 나가자’며 삼삼오오 거리로 나왔고 그것이 유모차 부대를 탄생시킨 셈이다.

참여연대 안진걸 사무처장은 “당시 아이의 건강과 안전, 먹거리 문제에 예민했던 엄마들이 거리로 나왔다”며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무효나 미선이, 효순이 때도 안타까운 마음에 아이와 함께 나온 분들이 있었지만,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때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무서운’ 곳으로 기억됐던 집회 현장에 아이와 함께 등장한 엄마들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 번도 집회 현장에 참여한 적 없는 엄마들이 유모차에 노란 풍선을 달고 동요를 부르며 거리 행진을 했다. 집회 현장 바닥에 돗자리를 펴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는 모습은 낯설지만 아름답다는 시선이 많았다. ‘엄마가 뿔났다’, ‘아이들아 미안하다. 우리들이 지켜낸다’는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유모차 부대를 위해 예비군 부대까지 나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2012년 5월 광우병 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중단 및 재협상 범국민촛불대회에 참가한 아이들과 부모. 이기태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2012년 5월 광우병 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중단 및 재협상 범국민촛불대회에 참가한 아이들과 부모. 이기태 기자 ⓒ베이비뉴스


◇ 유모차 부대, 평화적 시위의 상징

6년이 지난 2014년은 유모차 부대의 힘을 더욱 강하게 보여준 해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이에 대한 진상 규명이 요구되는 시점이었다. 아이 잃은 부모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힘이 되려는 엄마들이 ‘가만히 있지 말자’며 거리로 나섰다. 한 엄마가 기혼 여성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침묵시위를 제안한 것을 계기로 서울 강남역과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유모차 부대의 침묵행진시위가 진행됐다. 당시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단 엄마와 노란 풍선을 든 아이들 100여명이 거리 행진을 하는 모습은 엄마이기에 할 수 있다는, 유모차 부대의 특징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순수하게 나선 유모차 부대를 불순하게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일부 보수단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것은 학대”라며 유모차 시위 제안자인 전모 씨를 검찰에 고발했고, 이는 지난해 3월 무혐의 처분으로 결론 났다. 2008년 광우병 파동 때도 유모차를 끌고 집회에 참여했던 한 엄마가 국정감사까지 참석해 “왜 위험한 곳에 나왔냐”며 집중 추궁을 당하기도 했다.

중앙대학교 신광영 사회학과 교수는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행진하는 장면들은 평화적인 시위를 만드는 데 긍정적인 부분”이라며 “과격하거나 폭력적이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에 기여하는 측면이 높다”고 평가했다.
 

19일 오후 아이들과 함께 온 엄마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4차 민중총궐기대회에 참가해 세종대로에서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사진을 담고 있다. 이기태 기자 ⓒ베이비뉴스
19일 오후 아이들과 함께 온 엄마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4차 민중총궐기대회에 참가해 세종대로에서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사진을 담고 있다. 이기태 기자 ⓒ베이비뉴스


◇ “아이와 함께 거리에 선다는 것, 강한 저항의 메시지”

2016년. 유모차 부대는 여전히 거리로 나오고 있다. 유모차를 끌고, 아기띠를 하고 아이의 손을 잡은 엄마, 아빠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고 또 다음 촛불을 들 것을 약속했다. 지난 10일에는 인터넷 카페 ‘엄마라서 말할 수 있다’에서 모인 엄마들이 서울 홍대입구역 앞에서 유모차를 끌고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침묵행진을 진행하기도 했다. 유모차 부대가 거리에 나온다는 것은 여성학적, 사회학적 관점에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노진철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촛불집회는 여성이 전면에 많이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양육에 의해 사적영역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30대 여성들이 촛불집회를 통해 공적영역으로 나온 것이고 강한 저항의 메시지를 드러내기 위해 의견을 내세우고자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도 “아이를 데리고 엄마들이 나왔다는 건 우리 사회에서 정치에 덜 관심있거나 적극적이지 않은 사회집단이 참여했다는 걸 의미한다. 현재 이슈가 특정한 계층, 지역, 세대를 넘어섰고 국민들의 분노, 여러 정치적인 요구가 광범위하게 확산됐다는 걸 보여준다”며 “작금의 정치적인 상황들은 높은 정치의식을 갖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상식적인 수준의 것을 완전하게 허문 것이기 때문에 유모차 부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국민이면서도 아이들의 부모로서 ‘내가 가만히 있으면 내 아이 미래까지 위험하다’는 인식의 확산은 유모차 부대의 자발적인 참여를 더욱 이끌어냈다.

안 사무처장은 “아이의 먹거리 문제, 또 친환경 급식 문제 등에 이어 이제는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걱정돼 거리로 나오는 것이다. 특정 사람이 불공정하게 이익을 얻는 세상,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좀 더 공정하길 바라는 모든 부모의 마음이 하나가 됐다”고 강조했다.

19일 오후 엄마 아빠들이 자녀를 유모차를 태우고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4차 민중총궐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광화문 세종대로를 걸어가고 있다.이기태 기자 ⓒ베이비뉴스
19일 오후 엄마 아빠들이 자녀를 유모차를 태우고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4차 민중총궐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광화문 세종대로를 걸어가고 있다.이기태 기자 ⓒ베이비뉴스


【Copyrights ⓒ 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실시간 댓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