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일 가정 양립을 꿈꾸는 워킹대디의 육아칼럼
어느새 봄이네요. 그런데 겨울 내내 춥다는 이유로 아빠가 겨울잠 자는 곰마냥 게으름을 부렸더니 나은공주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예전 같으면 "오늘은 어디 갈꺼야?" 눈이 반짝반짝했는데 요즘은 "피곤해서 그냥 집에 있을래" 타령입니다. 그렇다고 모처럼의 주말에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 TV 삼매경일 것같아서 "오늘은 엄마랑 아빠랑 다같이 서점에 나들이갈건데. 나은이가 좋아하는 스티커북도 사고" 그러자 따라나서겠다네요.
오늘 갈 곳은 울산의 하나 밖에 없는 중고서점입니다. 그곳에 가서 아빠도, 엄마도, 나은공주도 사고 싶은 책을 고를 생각입니다. 예전에는 골목마다 동네 서점이 많이 있었는데 요즘은 거의 사라지고 학교 주변에 참고서 파는 작은 서점만 눈에 띕니다. 저만 해도 책을 많이 보지만 주로 인터넷에서 사거나 공공 도서관에서 빌려보니까 직접 서점에 갈 일은 거의 없네요. 그래도 서점에서는 이 코너 저 코너 돌다보며 내가 미처 몰랐던 책을 찾기도 합니다. 또한 아이에게도 늘 엄마 아빠가 골라주는 책만 읽히는 것보다는 자신이 직접 읽고 싶은 책을 고를 기회를 줄 수 있죠. 그럼 책과 더욱 친숙해집니다.
오랜만에 왔는데 주말이라 사람들이 제법 북적북적합니다. 엄마가 서점 코너를 한바퀴 도는 동안 나은공주는 아빠와 함께 어린이 코너로 갑니다. "나은이가 직접 읽고 싶은 책 골라봐. 읽고 싶으면 앉아서 읽어도 돼. 마음에 들면 사줄께." 일곱살인 나은공주도 이제는 스스로 한글을 읽을 줄 안답니다. 집에서 직접 한글을 가르쳐 준 적은 없는데 작년 가을에 어느 순간 갑자기 말문이 트이듯 한글을 술술 읽기 시작하더군요. 처음에는 받침없는 한글만 읽다가 요즘은 왠만한 동화책은 혼자서도 잘 읽습니다. 유치원에서 배우는 것도 있겠지만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꾸준히 동화책을 읽어준 덕분이라는군요. 이것이 아빠 파워!
나은공주가 코너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했는지 한권 뽑아듭니다. <룸펠슈틸츠헨>이라는 독일의 전래 동화책입니다. 전에 나은공주에게 읽어준 적이 있어서 내용을 기억합니다. 임금님의 명령으로 방앗간 집 아가씨가 볏집으로 물레를 돌려 황금실을 뽑아내야 하는데 난쟁이가 도와줍니다. 그런데 그 난쟁이가 대가로 나중에 아기를 낳으면 달라고 합니다. 아가씨는 왕비가 되었고 나중에 세월이 흘러 아기를 낳자 난쟁이가 나타나서 아기를 달라고 하는데 자기 이름을 맞추면 그냥 가겠다고 합니다. 그 난쟁이의 이름이 "룸펠슈틸츠헨"이었답니다.
나은공주가 동화책 두어권을 더 꺼냅니다. 발레 공주가 나오는 동화책, 예쁜 아가씨가 나오는 동화책입니다. "아빠, 나는 이게 마음에 들어" 나은공주의 취향은 무조건 핑크빛에 예쁜 것. 천상 여자아이입니다. 마침 책꽂이마다 의자가 하나씩 놓여 있습니다. 차가운 바닥에 앉지 않아도 되겠네요. "여기 의자에 앉아서 한번 읽어보고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봐"
나은공주가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는 동안, 아빠가 사고 싶은 책도 찾아봅니다. 아빠의 취향은 역사와 인문학. 눈에 띄는 것이 몇권 보입니다. 마침 앞쪽 코너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습니다. 요즘 서점들은 이렇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준비돼 있죠. 서울의 대형 서점에서는 서점이 아니라 마치 카페 같다던데 아직 울산에는 그런 대형 서점이 없다는 것이 아쉽네요. 자리에 앉아서 몇 페이지 뒤져보는데 나은공주가 동화책을 한아름 들고 와서 옆자리에 앉아서 읽어답니다. 혼자 책을 읽을 수 있어도 역시 아빠가 읽어주는 것이 좋은가 봅니다.
계산대에 가니 아빠가 두 권, 엄마가 네 권, 나은공주는 여덟권. 합해서 열네권입니다. 돈이 만만치 않게 나오겠는걸. 그래도 중고서점이라 반값도 안하네요.
오는 길에 물어보았습니다. "나은이는 엄마가 동화책 사주는게 좋아? 아니면 직접 고르는게 좋아?" "응…내가 고르는거" "왜?" "내맘이니까"
전집은 부모가 골라줄 수 밖에 없지만 때로는 이렇게 아이에게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는 선택권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온 가족이 다같이 서점으로 나들이 가서 책 쇼핑을 하는 것도 재미있답니다. 여러분들도 이렇게 '책 읽는 아이 만들기' 미션을 수행해 보세요. 나중에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요.
*칼럼니스트 권성욱은 울산 토박이이면서 공무원으로 13년째 근무 중이다. 36살 늦깎이 총각이 결혼하자마자 아빠가 되었고 집사람의 육아 휴직이 끝나자 과감하게 직장에 육아 휴직계를 던져 시한부 주부 아빠로서 정신없는 일 년을 보냈다. 현재 맞벌이 집사람과 함께 가사, 육아를 분담하며 고집 센 여섯 살 딸아이의 수발들기를 즐기고 있다. 인생에서 화목한 가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고 항상 노력 중이다.
【Copyrights ⓒ 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