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할 수도 있는 순대와 복부비만 이야기
거북할 수도 있는 순대와 복부비만 이야기
  • 칼럼니스트 박창희
  • 승인 2017.06.2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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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속에 들어있는 허연 기름, 생각해 보셨나요?"

【연재】다이어트 명강사 박창희의 살과 사랑 이야기

 

굳이 좋아하는 동물을 고르라면 필자는 단연코 돼지를 꼽는다. 생김이 귀엽거나 맛이 있어서도 아니고 필자처럼 다리가 짧아서도 아니다. 부모와 오 남매를 포함한 필자의 일곱 식구가 살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의 중심에 돼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필자의 부모가 축산업 등 거창한 업종에 종사한 것은 아니다. 필자의 모친이 돼지 부속 따위를 재료로 하는 순댓국 장사를 했을 뿐이다.

 

한국전쟁 당시 이북이 고향인 부부는 지긋지긋한 북한 땅을 많이 넘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게 겨우 철원이다. 참 많이 넘었네요. 살면서 필자는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부모가 부산까지 갔더라면 국제시장에 터를 잡았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젊은 남녀는 38선을 넘어 몇십 리를 더 왔을 뿐이며 쉬어가려고 한 곳에서 필자를 포함한 오 남매를 낳고 평생을 살았다. 농담을 좋아하는 필자가 너무 오래 쉬는 것 아니냐고 농을 던지면 부부는 박장대소를 하곤 했다. 가진 것 없이 혈혈단신으로 월남한 남, 녀가 자식 다섯을 키워야 했으니 고생이 오죽했겠는가. 농담이 아니면 웃을 일조차 없는 힘든 삶이 이어졌다.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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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리어카로 고물을 모으고 엄마는 순대를 만들어 좌판에서 팔았다. 흙벽돌로 지은 집은 겨울이 되면 틈새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일 정도로 벽이 갈라지곤 했다. 칼바람이 부는 철원의 겨울은 혹독하게 춥다. 아버지는 갈라진 틈새를 신문지로 틀어막았는데 외부에서 신문 일부가 작은 나비처럼 펄럭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순대를 만들게 된 것은 가장이 주워오는 파지나 탄피, 전깃줄 등으로는 일곱 식구의 호구지책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 남매를 둔 스물여덟의 여성이 왜 하필 '고기를 담은 작은 자루'라는 뜻의 만주어인 순타를 만들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후 젊은 여성은 이순(耳順)의 나이가 될 때까지 돼지 창자와 선지로 순대를 만들어 팔며 오남매를 키우는 힘든 삶을 살게 된다. 어머니의 손은 항상 돼지기름으로 번들거렸는데 큰아들 놈은 자신을 만지려는 엄마의 손을 피하곤 했다. 돼지기름이 얼굴에 묻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손은 싫었지만, 그 손으로 만든 순대 만큼은 환장하고 먹었다.

 

어머니가 김이 오르는 순대를 길게 잘라 주면 필자는 김밥 베어 먹듯 먹어 치우곤 했다. 지금은 순대를 동그랗게 썰지만, 그 당시는 어슷하게 썰어냈는데 사람들은 줄을 서서 순대를 먹었고 엄마는 부지런히 기름 묻은 돈을 앞치마에 담았다.

 

국민 간식으로 대표되는 떡볶이와 달리 순대를 일반인이 만들어 먹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재료의 특성과 더불어 만드는 과정 또한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순대의 원재료를 동네 푸줏간에서 받아오는데 비싸지는 않았던 기억이 난다.

 

칼로 썰기만 하면 바로 구워 먹을 수 있는 고기와 달리 내장이나 머리 등은 특별한 손질이 필요하다. 보통 한 마리의 머리와 창자, 허파, 간 등이 세트로 끈에 묶여 있는데 큰 함지박에 몇 마리 분량이 담겨있곤 했다. 지나던 사람들은 핏물에 담긴 내장을 보고 충격을 받기도 하는데 비위 약한 여성들은 구역질을 하기도 한다.

 

거친 북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어머니는 나중에 맛있게 먹을 그들을 보며 비웃듯 말했다. “너희가 아직 창세기 안을 못 봐서 그러는구먼.” 느닷없이 죽어간 돼지가 관장이라도 했겠는가. 우리가 좋아하는 순대의 주재료인 창자 안에는 돼지가 남긴 삶의 흔적이 오롯이 담겨있다. 편육이나 순대, 또는 순댓국을 즐기는 독자분들께는 필자의 리얼한 레시피들은 다소 충격적일 수 있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살아 숨 쉬며 먹이를 먹던 동물이 불과 몇 시간 후에는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는 그 과정이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어머니의 돼지 내장 손질은 힘들고 지루한 작업이다. 그것을 지켜보던 어린 필자의 눈앞에 평생 잊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왕소금으로 닦기 위해 뒤집은 창자 안에 무언가 있다는 거다.

 

어머니가 순대를 만들기 위해 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내장을 정갈하게 다듬는 것이다. 손질이 부족하면 돼지 내장에서 역한 냄새가 난다. 왕소금과 밀가루를 뿌려가며 문지르고 헹궈내는 작업이 고단하고 지루하게 이어진다. 특히 창자의 표면에는 허연 기름이 많이 붙어 있는데 일일이 손으로 잡아채서 떼어내야 한다. 인간의 장간막이나 소장, 대장의 표면에 붙어 있는 것과 성분이 다르지 않다. 이게 많아지면 소위 똥배라고 불리는 중년남성의 복부비만이 형성된다.

 

정상적인 인간의 복부에는 연동운동과 원활한 혈액순환을 위한 복강이라는 공간이 있다. 피부의 아래에 형성돼 몸 밖으로 흐르는 양상으로 여성의 체형을 망가뜨리는 피하 지방과 달리 내장 지방은 복강 속을 차곡차곡 채워 나오며 배를 단단하게 압박한다. 바가지를 엎어 놓은 듯이 볼록하게 나온 배가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단단한 느낌이 들면 내장 지방임이 확실하다. 천장을 보고 누웠을 때 옆으로 흐르는 피하 지방과 달리 내장 지방은 누워도 배가 꺼지지 않는다. 피하지방은 단열, 보온의 기능과 더불어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우리의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만 몸속 깊은 곳 내장지방은 본래 기능을 하지 못한다. 술을 좋아하는 중년 남성들은 많은 위험을 초래하는 내장 지방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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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순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돼지의 내장 속에는 생전의 흔적들이 오롯이 담겨있다. 위에서 녹은 사료가 암죽 형태로 장 속을 흐르는데 인간들은 그것을 곱에서 나오는 즙이라며 유실되지 않도록 유의해가며 구워 먹기도 한다. 채 소화도 못 시키고 죽어간 돼지의 영양분이 인간의 구미를 당기는 기호식품이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잡식동물인 인간은 뭐든지 잘 먹는 씩씩한 식성을 가지고 있다. 수퇘지의 불까기를 통해 나온 불알도 연탄불에 구워 먹으니 말이다.

 

이토록 훌륭한 전천후 식성을 가진 인간도 돼지 창자 속에서 쏟아진 회충을 보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보통 내장을 손질할 때는 그것을 홀랑 뒤집어야 한다. 글로 설명이 어렵지만, 내장의 끝을 바깥쪽으로 젖힌 후 살살 그 속으로 창자를 밀어 넣으면 어렵지 않게 겉과 속을 바꿀 수 있다. 이때 회충들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바깥으로 나오게 된다. 고통스럽기는 갑작스레 죽임을 당한 돼지뿐 아니라 숙주의 횡액으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기생충도 마찬가지다. 아늑하고 따뜻한 동굴에서 자양분을 빨아먹던 눈먼 벌레들은 땅바닥에 던져진 채 최후를 맞이한다. 지구 위에는 다양한 생물이 존재하며 그 수 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간다. 숙주에 기생하며 최대한 효율적으로 살았을 뿐인 회충을 감히 누가 더럽다고 나무랄 것인가.

 

혹자는 돼지 창자에서 회충이 나왔으니 창자로 만드는 순대를 더럽다 할 것이다. 미네랄이 부족한 돼지가 흙을 핥아 먹었으니 회충이 있는 것은 당연지사다. 깔끔한 체하는 인간도 온 가족이 둘러앉아 구충제를 먹던 시절이 있었으니 돼지는 오죽하랴. 그렇다면 항생제를 듬뿍 먹여 회충을 박멸시킨 돼지 창자는 깨끗한가. 우리는 정말 더러운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아간다. 내장뿐 아니라 이마에 봉 해머를 맞고 억지로 죽어간 돼지라 머리 또한 상황이 좋질 않다. 살아생전 돼지가 면도를 했겠는가. 돼지는 죽어서 최초로 안면 면도를 하게 된다. 엄마는 돼지 머리 앞에 쭈그려 앉아 정성껏 손질을 하는데 면도칼에 손을 베이기 십상이다. 불로 털을 태우기도 하지만 노린내가 난다고 해 어머니는 끝까지 면도질을 고집했다.

 

손질된 머리는 다시 반으로 쪼개야 한다. 뼈나, 피, 살점이 튀지 않도록 신문을 덮은 후 도끼로 쪼개어 뜨거운 물에 펄펄 삶아내고 뼈를 발려 베 보자기로 싼 후 큰 돌을 눌러 놓는다. 편육을 만들기 위함인데 하룻밤이 지나면 또 무엇인가가 주위에 흥건하다. 다음 호에.

 

*칼럼니스트 박창희는 전산과 체육학을 전공한 다이어트 전문가로서 다이어트의 필요성과 방법을 알리는 강사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비만 사회운동가로서 비만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보고 비만을 야기하는 사회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는 현재 광고대행사와 방송 스튜디오의 대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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