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제도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설계돼야 한다"
"보육제도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설계돼야 한다"
  • 기고=신의진
  • 승인 2017.04.2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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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신의진 한국폭력학대예방협회 회장·연세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연재] 보육교사가 좋은 사회를 만든다

한국가정어린이집연합회(회장 김옥심)은 '보육교사가 좋은 사회를 만든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보육교사 처우 개선을 위한 정책개선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보육교사 처우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짚어보는 연속기고를 베이비뉴스와 함께 연재합니다.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들의 캠프에서 사회, 경제, 정치, 안보 분야 관련 공약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모든 분야가 다 중요하겠지만, 제대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분야, 지금 당장은 눈에 크게 보이지 않으나 해결하지 않고 미루면 눈덩이처럼 문제가 불어나 미래 재앙이 되는 분야부터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눈앞에 보이는 일자리 부족이나, 북한관련 안보 관련 이슈부터 먼저 챙기고 있는 듯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심각할 정도로 출산율이 떨어져, 이대로 가다가는 대한민국의 존립에도 위기가 올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드높다. 지난 10년간 130조를 저출산 대책에 지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2017년 출생아 수가 30만 명대로 떨어질까 고민하고 있을 정도로 출산율이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 당황해 각종 대책을 내고 있으나, 난임시술비 확대 등 과거 해왔던 대책을 되풀이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대통령 후보들은 청년의 고용불안정, 과도한 노동시간, 치솟는 주거비, 워킹맘의 독박육아, 고액의 사교육비 등을 저출산의 주된 원인으로 보고, 이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준비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을 안심하고 맡길 국공립 어린이집을 늘리고, 아동수당을 부모에게 주고, 육아휴직 확대, 유연근무제 확산, 청년고용 촉진, 임대주택 증가 등 각 후보 캠프는 유사한 정책들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공약들을 자세히 보면 볼수록 "과연 우리 아이들이 이런 현실에서 행복하게 자랄 수 있을까?"하는 불안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당장 아이를 맡기고 출근해야하는 맞벌이 부모들에게 교사 고용이 안정되고 개인적 특성에 맞춰 질 높은 보육을 제공하는 기관을 찾을 여유와 정보가 있을까. 아동수당, 양육수당을 부모에게 아무리 준다한들 아동의 발달 특성을 제대로 고려한 질 높은 보육을 보장할 보육기관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다면 아이들은 행복할 수 없다. 부모들은 국가를 믿고 아이들을 맡기지만 안전하고 질 높은 보육이 보장되지 않으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고 그 고통은 부모와 어린이집, 아이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과연 국공립어린이집만 많이 만들면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게 되는 것일까. 제대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우리의 보육제도를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2005년 개정된 영유아보육법이 전면적으로 시행될 때 많은 전문가들이 보육교사의 자격요건 기준과 양성방안에 대해 허술한 점이 많다고 우려를 표했었다. 이에 대한 대책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2012년 18대 대선 당시 ‘무상보육’을 여당, 야당 모두에서 주장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제대로 된 공보육제도 마련, 개별 맞춤 돌봄이 필요한 영유아기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보육의 질을 보장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치권의 의지로 무상보육을 전면 실시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보육교사의 질을 높이고, 고용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안전한 보육환경을 만드는 부분에 예산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무상으로 아이들을 맡기는 쪽으로 비용의 대부분을 쓰게 됐다.

그 결과 어린이집을 지원하는 행정시스템도 졸속으로 만들어졌다. 현장에서는 행정업무에 매달리느라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각 유형별 어린이집의 특성에 맞는 지원을 하지 못해 소규모 가정·민간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의 고용이 심히 불안정하게 되었다. 현 영아의 특성을 무시한 아동별 보육료 방식으로 인해 아동의 입·퇴소는 물론 결석 등으로 결원시에는 교사인건비가 제대로 보존되지 않는 보육현실, 누리과정 비용을 중앙정부가 맡느냐, 지자체가 맡느냐에 대한 갈등까지 보육교사들은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사명감을 제대로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런 현실에서 과연 아이들의 마음까지 세심하게 보살피는 보육이 가능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평생을 좌우하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최근 두뇌발달 연구에 의하면 인간은 생후 4~5세까지 환경의 자극을 받아들여 두뇌의 기능적, 구조적 변화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그 결과가 평생 지속된다. 특히 태어나서 두 돌까지의 영아는 친근한 어른들과 애착관계를 형성하여 정서적 안정을 느끼며 지내는데, 이 애착 대상들이 자주 바뀌게 되면 심한 불안과 더불어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되어 두뇌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즉 아이가 두 돌까지는 애착 대상인 부모와 보육 교사가 안정적으로 주변에 있어야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물리적 환경이 마련된 곳이라도, 돌보는 사람이 자주 바뀌면 아이들은 결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없는 것이 바로 영아기의 발달 특징이다. 하지만 우리 현 보육제도는 이런 과학적 사실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 많은 영아기 아기들은 두 돌이하의 아이들을 맡아주는 소규모 어린이집에서 지내지만, 이 시설들에 근무하는 보육교사들의 고용이 불안정하여 영아담당 교사들의 평균 이직율이 40%에 육박한다고 한다. 관련 단체들은 영아들의 질 높은 보육을 위해 교사 인건비 지급 방법을 개선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아직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뚜렷한 대책이 없는 상태다. 결국 말 못하는 아기들만 불안에 하게 되는 보육현실을 맞이하고 있다.

치밀한 준비 없이 단기간에 공보육 체계로 전환된 우리의 보육시스템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질 높은 보육체계로 개선하는 것이야 말로 저출산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꾸는 첫 걸음이다. 가장 전문적 보호가 필요한 영아들을 돌보는 보육교사부터 이직 없이 안정고용을 보장할 수 있도록 급여지급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보육교사들이 전문성을 갖추도록 보수교육을 강화하고, 사명감을 가질 수 있도록 근무요건을 개선하는 것이야말로 부모들이 안심하고 내 아이를 맡기는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나보다 더 전문적인 교사가 내 아이를 맡아줄 때 부모들은 안심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복잡해 보이는 보육 문제들을 잘 파악하여 맞춤형 공약을 만들어내는 역량이 있는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안보, 경제 등 다른 난제들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대통령이라면 대한민국을 선진국 반열에 올리게 할 훌륭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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