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에서 나는 ‘아기를 담은 물건’일 뿐이었다”
“산부인과에서 나는 ‘아기를 담은 물건’일 뿐이었다”
  • 최규화 기자
  • 승인 2017.09.21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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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성은 출산에서 어떻게 소외되는가’ 저자 전가일

【베이비뉴스 최규화 기자】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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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의 나는 그곳에 없었다. 수술 침상 위에 누워 있는 것은 곧 수술로 ‘안전하게’ 꺼내질 태아가 들어 있는 배뿐이었다. (…) 한 여성은 산전 진단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기도 했다. ‘의사에게 나는 한마디로 구멍일 뿐이야. 내가 물건화된다고 할까….’” - ‘여성은 출산에서 어떻게 소외되는가’ 69쪽

 

이 책은 6년 전 ‘조산’의 경험에서 시작된다. 2011년 32주 만에 1.8㎏으로 태어난 아이. 저자는 자신의 조산 경험을 계기로 ‘의료화 출산’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 ‘여성은 출산에서 어떻게 소외되는가’(전가일, 스리체어스, 2017년)는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오게 됐다.


저자는 전가일 연세대학교 교육연구소 전문연구원. 아동학을 전공하고 장안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를 지낸 유아교육 전문가다. 그런 저자에게 ‘의료화 출산’이란 주제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연구에서도 가장 중요한 주제”라며, 자신의 삶은 물론 “뭇 여성들의 삶에서도 출산만큼 큰 사건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자기체험 연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한다.


2015년 ‘의료화된 조산 체험의 의미 탐구’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먼저 발표됐고, 2017년 “완전히 다른 책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 수준으로” 새롭게 고쳐 써서 출간된 책. 지난 12일 경기 광명시의 저자 자택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의료화 출산 체험은 어떠한 경험이었는지, 그 과정에서는 어떤 문제점들이 드러났는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다른 선택’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책 속의 고민을 따라 이야기를 나눴다.

 

Q. 6년 전 둘째아이를 출산한 경험에서부터 이 책은 시작합니다. 그 경험 중에서 ‘아 이건 뭔가 잘못됐다’ 하는 문제의식이 출발한 시점은 언제였나요?


“병원에서 출산한 대한민국 여성들은 아마 산전검사 하면서부터 문제의식을 느낄 거예요. 물론 의료진으로서는 일상적 업무이겠지만, 여성으로서는 가장 내밀한 부분이잖아요.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예상치 못한 의료진이 와서 내진을 한다든지, 특히 대학병원에서는 (다른 의료진들에게) 와서 보라고 하기도 하거든요. 산과라는 특성 때문에 아주 수치스러운 경험들을 하죠.

 

그날 둘째 아이 출산 당일에는 그런 경험들이 극화됐을 뿐이지 문제적인 경험들을 쭉 해왔죠. 산전검사 때는 책까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출산 때는 막 소리치고 싶었어요. ‘나는 물건이 아니에요!’ 언젠가 논문이든 책이든 무언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Q. 선생님이 경험하신 의료화 출산의 과정은 ‘거절’, ‘고립’, ‘소외’, ‘물상화’, ‘분리’ 등의 단어로 순차적으로 집약됐습니다. 그 가운데 의료화 출산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물상화 같아요. 참을 수 없었던 문제의 본질은, 극도로 대상화돼서, 제가 사람이 아니라 ‘아기를 꺼낼 자궁’으로 환원되는 경험이었어요. 마치 하나의 물건처럼 취급되는 거죠. 수술실에서, 분명 제가 의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의사들이 제 배를 가지고 농담을 할 정도로 그들도 (산모가 사람이라는 걸) 잊어버리는 거예요.


하지만 아이의 생명을 의사들한테 맡겨야 하기 때문에 뭐라 한마디 말하지도 못하고, 극도로 약자가 돼서 누워 있어야 했어요. 여성이 인간으로서 누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아이를 보호하는 물건처럼 취급받는다는 것이 의료화 출산의 가장 큰 문제점이죠. 물론 아이의 목숨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동안 여성들이 참아야 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여성이 물건으로 취급받을 수 있는 이유가 되진 않잖아요. 그게 본질이에요.


출산 순간 산모는 극도로 긴장돼 있잖아요. 의사들이 조금만 실수를 해도 큰일이 나죠. 특히 저는 조산의 상태고, 위급했기 때문에 아이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았고요. 조금이라도 의사들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는 거죠. 또 저는 벌거벗고 누워 있는 상황이고. ‘무슨 말씀 하세요? 저 지금 여기서 다 듣고 있잖아요.’라고 말할 수 없는 거죠. 그 사람들 눈에 저는 그냥 아이를 담고 있는 물건처럼 보였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여성은 출산에서 어떻게 소외되는가’ 저자 전가일 연세대학교 교육연구소 전문연구원. 지난 12일 경기 광명시의 저자 자택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여성은 출산에서 어떻게 소외되는가’ 저자 전가일 연세대학교 교육연구소 전문연구원. 지난 12일 경기 광명시의 저자 자택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의료화된 시스템의 권력 문제… 가부장적 가치와 떼어놓을 수 없어”

 

“의료진은 나의 ‘의견’을 단 한 번도 물은 적이 없었다. 의료진이 물은 것은 나의 재태 기간과 이전 출산에 관한 이력, 그리고 연락처와 주민번호와 같은 ‘정보’뿐이었다. 수술 여부는 말할 것도 없고 수술 시기, 마취 방식, 게다가 주치의나 집도의 선정에 이르기까지 의료진은 나에게 어떤 것도 묻지 않았으며, 나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었다.” - ‘여성은 출산에서 어떻게 소외되는가’ 43쪽

 

Q. 의료화 출산의 문제를 젠더 인식으로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저는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을 처음에는 하지 못했어요. 공부를 하다보니까, 의료화 출산에 대한 의미 있는 연구들은 크게 간호학계와 여성학계에서 해오셨더라고요. 그분들의 주장을 공부하면서, 저 또한 저의 경험을 되짚어보면서 ‘아, 이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병원에서 출산을 할 때 여성은 가장 소외된 상황, 가장 약자인 상황으로 침대에 누워 있잖아요. 권력의 문제라고도 생각되거든요. 의료화된 시스템과, 모성을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여성으로서 그 앞에 서야 하는 저의 권력 관계인 거예요. ‘아이를 안전하게 꺼내야 한다’는 것만 가장 우선시되는 굉장히 가부장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시스템인 거죠. 가부장적인 가치와 떼어놓을 수 없어요.”

 

Q. 의료화 출산의 과정 중 소외의 과정도 잘 확인했습니다. 특히 수술 전 태아의 몸무게를 물어봤다가 의사한테서 ‘그런 거 물어보지 말라’고 면박을 당하신 대목은 놀라웠습니다.


“의사들의 과중한 업무환경과도 연관이 있지만 ‘네가 알아서 뭘 할 거냐’라는 의식과도 연관이 있죠. 산모가 알아봤자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어차피 결정은 우리(의료진)가 한다’는 거죠. 그리고 산모들의 질문을 ‘나를 못 믿는 거냐, 내 권위에 도전하는 거냐’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어요.”

 

“입원 후 다음 날 새벽, 세 번째 검사를 받았을 때 나는 전공의에게 아기가 몇 킬로그램이나 되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전공의가 얼굴을 심하게 찡그리며 ‘왜 자꾸 물어보세요? 그걸 매일 이야기해줄 수는 없죠. 그런 거 매번 물어보시면 안 돼요.’라고 말했다. 질문 자체를 금지당했던 것이다.” - ‘여성은 출산에서 어떻게 소외되는가’ 45쪽

 

Q. ‘왜?’라는 의문이 따라나올 수밖에 없겠습니다. 책에서 구조적인 문제도 지적해주셨습니다만, 그것만으로는 왜 의료화 출산에서는 질문이 거부되는지 다 설명되긴 힘들 것 같습니다.


“구조적인 문제는 인프라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제가 경험한 호주의 의료진들만 해도 그렇지 않아요. 설명을 잘 해줍니다. 왜냐하면 하루에 환자를 몇 명 안 보니까. 업무환경이 다른 거예요. 책에 나오는 미국 의료진들 역시 산모와 협의하는 것은 일반화돼 있어요. 미국은 우리와 의료적 프로토콜은 같은데 문화는 달라요. 문화는 오랜 세월 인프라가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와는 다를 수 있죠.


그리고 다른 이유로, 지식의 권력화와 관련이 있어요. 우리나라는 전문지식이 아주 권력화된 나라죠. 그중에도 가장 권력화된 집단이 의사집단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의사에게 질문하는 것이 의료권력에 도전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산모들이 의사한테 도전하려고 묻는 게 아니에요. 걱정돼서 묻는 거거든요. 답을 얻으면 좀 안심되잖아요. 산모들은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의사와 상의하기를 바라는 거죠. 그런데 지금의 현실에서는 의사들에게 협의란 없어요. 이건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전문가라 할지라도 제 몸이고, 제 아이의 몸이잖아요. 그런데 아무런 결정권이 없다? 협의가 가능해야죠. 그 가능성을 어떻게 열 것인가, 의료화 출산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은 그 지점에 모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의사들에게도 불행한 일이에요. 의사가 자신을 신처럼 무장해야 해요. ‘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없어야 해.’ 환자들도 자꾸 그런 걸 요구하고 그런 관계를 맺죠. 그러면서 서로를 소외시키는 거죠.”

 

‘여성은 출산에서 어떻게 소외되는가’ 저자 전가일 연세대학교 교육연구소 전문연구원. 지난 12일 경기 광명시의 저자 자택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여성은 출산에서 어떻게 소외되는가’ 저자 전가일 연세대학교 교육연구소 전문연구원. 지난 12일 경기 광명시의 저자 자택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어디에서 낳는지는 두 번째 문제… 첫 번째는 여성으로 존중받겠다는 의지”

 

Q. 지식의 권력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회의 다른 분야에 시사하는 바도 큰 것 같습니다.


“저는 교육이 전공이니까, 이 문제와 연결된 저의 큰 화두는 바로 ‘질문하지 못하게 하는 나라’예요. 강의실에 들어가도 학생들은 질문하지 않아요. 웬만한 학회에서도 질문을 두려워해요. 우리 사회는 질문하는 것을 일종의 정치적 행위로 해석해요. 제 강의나 교육의 목표는 하나거든요. ‘어떻게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것인가.’ 질문을 잃어버린 사회. 의료계도 마찬가지인 거죠. 질문은 건방진 것, 도전하는 것, 공격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산모가 자신과 아이의 목숨을 맡기고 질문을 하기는 어려운 거죠.”

 

“산모와 아기의 생명이 위급한 응급 상황이기 때문이 아니라, ‘편리한’ 분만을 위한 의료적 처치로 제왕절개술이 행해졌을 가능성을 말한다. 출산 시의 여러 가지 변수와 복잡한 분만 상황에서 제왕절개술이란 의료진에게 통제가 용이한 방법이다. 즉 의료화 출산 과정에서는 위험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편리’하고 ‘깔끔’한 분만을 위해 수술이 선호될 수 있다.” - ‘여성은 출산에서 어떻게 소외되는가’ 90쪽

 

Q.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의료계부터 보자면, 책에서는 ‘병원의 정보공개 시스템 구축’을 대안으로 이야기하셨습니다.


“공개를 하지 않으면 의사의 선택은 의료편의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어요. 최고의 수익을 낼 수 있으며 가장 의료진들이 편한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정보공개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그리고 여성들도 적극적으로 그런 정보들을 찾아보고 선택하고 요구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출산계획서라는 게 있어요. 예를 들어, 회음부 절개는 하지 말아주시고, 진통이 24시간 이상 계속될 때는 수술을 고려해주시고, 하는 등의 내용을 출산계획서로 쓰는 거죠. 외국에는 보편화돼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출산계획서를 받아주는 병원들이 생기고 있어요. 물론 그 계획을 다 받아주는 게 아니라, 의료진은 전문적인 지식에 따라서 협의를 하는 거죠. 정보공개를 통해서 어느 병원이 친(親)산모적인 정책을 취하는지 알 수 있으면 산모들의 선택도 달라질 수가 있잖아요.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해요.”

 

Q. 책을 통해, 가정출산을 권하는 목소리들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산모들이 의료화 출산 이외의 선택을 하기란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께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 말 있으신가요?


“어디에서 아이를 낳는지는 두 번째 문제라고 생각해요. 첫 번째는 여성으로서 본인이 존중받을 수 있는 출산을 하겠다는 의지, 또는 지향이라고 생각해요. 여성의 출산권이 어떻게 보장될 수 있느냐 하는 질문. 그리고 사회가 그것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가 우선이죠. 병원에서도, 한계는 있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의료화 출산 자체를 반대하진 않거든요. 만약 조산원이나 가정에서 출산하는 게 너무 두렵다면, 최대한 그 첫 번째 조건을 극대화할 수 있는 병원을 찾기를 권해요. 그렇게 해야 병원도 변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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