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서 성범죄 피해자 보듯" 장애여성은 아이 낳으면 안 되나요?
"병원서 성범죄 피해자 보듯" 장애여성은 아이 낳으면 안 되나요?
  • 김윤정 기자
  • 승인 2017.09.27 1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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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7주년 특별기획] 바퀴 달린 엄마-④김민정 최재선 씨 부부

【베이비뉴스 김윤정 기자】


‘장애가 있는 부모들은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갈까?’ 베이비뉴스는 창간 7주년 특별기획 시리즈 ‘바퀴 달린 엄마’를 연재합니다. 장애가 있는 부모들의 삶과 육아 이야기를 그들의 목소리로 직접 듣고, 우리 사회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 기자 말


김민정 씨와 그의 딸 최고은 양. 김 씨는 때로 딸을 전동휠체어 위에 태우고 이동한다. ⓒ김민정
김민정 씨와 그의 딸 최고은 양. 김 씨는 때로 딸을 전동휠체어 위에 태우고 이동한다. ⓒ김민정


김민정(35) 최재선(36) 씨 부부에게 3.1kg의 딸이 찾아온 건 지난 2015년. ‘효녀’ 딸내미는 체구 작은 엄마 힘들지 말라고 금방 세상 밖으로 나왔다. 외모는 아빠를, 성격은 엄마를 닮은 고은이는 어느덧 22개월 아이로 자랐다.


고은이를 낳기까지 부부에겐 쉽지 않은 일들이 많았다. 선천적으로 뇌성마비를 갖고 태어난 김 씨에게 결혼과 임신 그리고 출산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퀴 달린 엄마’ 김 씨와 그의 남편 최 씨의 삶, 그리고 이들의 육아이야기를 지난 9월 15일 서울 중랑구 중화동 새벽지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서 들어봤다.


김민정 씨 부부를 지난 9월 15일 새벽지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서 만났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김민정 씨 부부를 지난 9월 15일 새벽지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서 만났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결혼 했으면 아이 낳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최 씨와 김 씨의 만남은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사업을 진행하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통해 이뤄졌다. 당시 활동보조인이었던 최 씨는 팀장으로 일하던 김 씨에게 호감을 느꼈다. 김 씨 특유의 환한 미소와 밝은 성격이 최 씨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6년간 연애를 했고, 2013년에 살림을 합친 뒤 지난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두 사람이 결혼을 하기까진 우여곡절이 있었다. 양가집안의 반대 때문이다. 김 씨와 최 씨는 모든 걸 시간의 흐름에 맡겼다.


“저희가 적극적으로 뭘 했다고 해도 별 도움이 안 됐을 거예요. 제가 장애가 있으니 아무래도 염려스러운 부분이 많으셨겠죠. 딸 가진 부모 입장도 그렇잖아요. 어머니가 ‘널 받아들이지 않는 집에 어떻게 보내냐. 헤어져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받아들이실 때까지 기다렸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부모님들의 마음도 달라졌고, 두 사람은 아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은 지지보단 염려스러운 말을 더 많이 건넸지만 김 씨와 최 씨는 임신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았다. 특히 최 씨는 일부 주변의 이런 반응에 대해 그냥 ‘그러려니’ 넘겨버렸다.


“주변에 아는 분은 ‘애기 낳지 말고 둘이 행복하게 잘 살아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저희는 ‘결혼을 했으면 당연히 아이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했어요. 결혼했으면 아이 낳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요?”


김민정 씨와 그의 남편 최재선 씨 그리고 딸 최고은 양이 함께한 가족사진. ⓒ김민정
김민정 씨와 그의 남편 최재선 씨 그리고 딸 최고은 양이 함께한 가족사진. ⓒ김민정


◇ “임신 후 검진 받으러 간 동네병원서 ‘다른 병원가라’더라”


이후 김 씨에겐 임신이란 축복이 찾아왔다. 하지만 김 씨는 평범한 산모이면서도 평범한 산모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임신을 하고 동네병원에 갔는데 선생님이 겁을 먹으시더라고요. 마치 절 성범죄 피해자인 것처럼 말씀하셔서 많이 놀랐어요. 나중에 한, 두 번 더 갔을 때 ‘다른 병원 가시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서울대학교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결국 김 씨는 약 1시간 거리의 서울대학교병원을 장애인콜택시를 불러 다녔다. 장애인콜택시는 장애인들이 이동할 때 가장 용이한 교통수단이었지만 임산부인 김 씨에겐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휠체어 때문에 앞자리에 탈 수 없으니 뒤에 탔는데 요동이 되게 심했어요. 애기가 잘못될까봐 엄청 불안했죠. 마지막엔 아이가 움직이는 게 느껴질 정도로 힘들었어요. 초기에 조심해야 한다는데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콜택시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아이는 김 씨 뱃속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줬다. 뇌성마비 장애인들은 힘 조절이 힘들어 제왕절개를 하는 경우도 많지만, 김 씨는 장애인들의 출산을 몇 번 경험해본 의사를 만나 자연분만을 할 수 있었다. 김 씨는 아이가 세상에 나온 첫 순간을 또렷이 기억했다.


“신기했어요. ‘내 조그만 공간에서 어떻게 이렇게 큰 애기가 나왔지’하고요. 하하!”


최재선 씨는 아내 김민정 씨에 대해 “좋은 사람이자 중요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최재선 씨는 아내 김민정 씨에 대해 “좋은 사람이자 중요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생각보다 아이들은 훨씬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


맞벌이를 하고 있는 부부는 현재 아이를 김 씨의 어머니에게 맡기고 있다. 주말에만 아이를 보러가는 게 때론 속상하기도 하지만 아이가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을 볼 때면 세상 모든 시름이 사라진다.


부부는 아이와 함께할 때면 역할을 분담한다. 최 씨는 몸이 불편한 김 씨 대신 딸아이와 열심히 놀아주고, 김 씨는 아이가 좋아하는 ‘상어가족’ 캐릭터를 인쇄해 보여주는 식이다. 부부의 노력에 아이는 늘 ‘까르르’ 웃는 모습으로 보답한다.


“요샌 말하는 게 너무 재밌나 봐요. 말이란 말은 다 따라 해요. 저번엔 차를 타고 가는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니까 ‘아, 시원해’라고 하더라고요. 또 아이가 ‘아빠’란 말을 ‘엄마’보다 먼저 했어요. 얼마 전엔 ‘엄마, 이리와’라고 하는데 너무 예쁘더라고요.”


아이는 어린이집을 다닌다. 하지만 김 씨는 인터뷰를 진행한 날까지만해도 어린이집 행사에 단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었다.


“‘안 가야겠다’ 이건 아니지만 ‘아이랑 손잡고 달리기’ 같은 걸 전 못하잖아요. 아빠가 대신 해줘야하는데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다른 엄마들이 불만을 제기하지 않을지 염려는 되더라고요. 맘카페 같은 데도 가입은 했지만 ‘눈팅’만 하지 모임은 가지 않게 되더라고요. ‘내가 가도 될까’, ‘내가 가서 뭘 할 수 있을까’, ‘섞여도 될까’란 염려가 있어요.”


하지만 최 씨의 생각은 김 씨보다 조금 더 여유로웠다.


“저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크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 같아요. ‘엄마는 왜 달라?’란 게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르다’란 걸 배우면 크게 문제될 것 같지 않아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훨씬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거예요.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잘못 가르친 거겠죠.”


남편 최재선 씨는 김민정 씨의 뒤를 묵묵히 지켜주는 존재처럼 보였다. 두 사람이 웃을 때 나타나는 환한 미소는 보는 사람의 기분마저도 밝아지게 만들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남편 최재선 씨는 김민정 씨의 뒤를 묵묵히 지켜주는 존재처럼 보였다. 두 사람이 웃을 때 나타나는 환한 미소는 보는 사람의 기분마저도 밝아지게 만들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홈헬퍼’ 빨리 정착됐으면”


김 씨 부부가 맞벌이를 고집하는 이유는, 일하는 걸 좋아하는 김 씨의 성격 탓도 있지만 경제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까닭이다. 김 씨는 장애가 있단 이유만으로 출산 전 태아보험 가입에 제한을 받았는데, 아이를 낳고 보험 가입자가 된 다음에도 매달 내는 보험료의 부담을 떨칠 수가 없다.


“지금 한 달에 한 7만 원 돈을 내고 있는데, 태아보험은 거의 모든 산모들이 드는 거잖아요. 이런 사보험이 국가보험으로 전환되면 소득이 적은 가정이나 저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장애인들에겐 금전적인 부분이 해결되는 것만으로 갈증이 해소되진 않는다. 김 씨 부부가 장모에게 아이를 맡긴 것과 같은 맥락으로, 몸이 불편하다보니 직접 육아를 하기엔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아이돌봄서비스는 소득이 조금 있을 경우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적어요. 그런데도 본인이 부담해야하는 비용이 또 있고요. 건강보험료를 내는 비율에 따라서 본인부담금도 달라지는데, 저희가 자립센터에서 일하면 얼마나 벌겠어요. 저희 소득에선 꽤 부담되는 금액이더라고요. 그렇다고 활동보조인에게 아이를 부탁하면 그 분은 저를 케어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부정수급이 돼요. 애를 키워야하니까 어쩔 수 없이 이 방법을 취하는 분들도 더러 있긴 한데 본의 아니게 범법자가 되는 거죠.”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제16조 제2항에서는 ‘수급자가 활동지원급여를 받거나 활동지원기관이 활동지원급여를 제공할 때에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요구하거나 제공해서는 아니된다’고 명시돼 있다. 제16조 제2항 제1호에선 ‘수급자가 아닌 그 가족을 위한 활동보조(신체활동 지원, 가사활동 지원, 사회활동 지원 등)·방문목욕·방문간호 등의 행위’라고 규정한다.


이는 많은 장애인들이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지만, 아이가 있는 장애인 부모들에게 아쉬움을 남기는 이유다. 활동보조인들은 장애인인 지원자만을 도와주기 위한 사람으로, 이들의 아이들을 돌보면 약속한 범위외의 일을 제공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예외적인 경우도 존재한다. 출산 후 6개월 이내의 경우엔 활동보조인에게 아이 케어를 부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6개월이란 시간은 장애인 부모들이 충분한 도움을 받기엔 턱없이 부족한 기간이다.


장애인 부모들이 느끼는 또 하나의 제도적인 아쉬움은 활동보조인서비스나 홈헬퍼 등 성격이 비슷한 서비스들을 한 번에 제공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제2장 제5조 제3호에서는 활동지원급여의 신청자격을 ‘활동지원급여와 비슷한 다른 급여를 받고 있거나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제32조에 따른 보장시설에 입소한 경우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사람’으로 둔다. 이는 김 씨가 앞서 언급한 중복수급 불가에 대한 근거가 되는 내용이다. 김 씨는 이런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홈헬퍼를 들었다.


“홈헬퍼는 몇몇 기관이나 복지관에서 진행되는 자치사업이지만 아직 보건복지부의 정식사업은 아니에요. 그런데 보건복지부에서 지원이 된다 하더라도 비슷한 서비스면 중복수금이 안되게 돼 있더라고요. 저는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어요. 목욕시키고 밥 먹이고, 이런 걸 모두 도움 받아야하니까 홈헬퍼가 빨리 정착됐으면 좋겠어요.”


김민정 씨는 새벽지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서 사무국장으로 일한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김민정 씨는 새벽지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서 사무국장으로 일한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다른 엄마들하고 똑같아요, 저도”


김 씨는 장애인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바뀌어야 하고, 장애인의 접근권 보장을 위한 인프라 개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뇌성마비는 유전이 된다’, ‘출산할 때 위험하다’는 말의 근거는 어디에도 없어요. 그런데 ‘너는 장애가 있으니까 무조건 안 돼’라고 하면 차별이죠. 키즈카페 같은 데도 매트를 깔아놔서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수가 없어요. 물론 멀리서 지켜볼 순 있지만 아이랑 자꾸 분리되다보면 아이가 장애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평범한 엄마’인 김 씨가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은 여느 엄마들과 다르지 않다. 아빠인 최 씨 또한 마찬가지다. 사랑을 하고 가정을 이뤄 아이를 키우는 이 ‘평범한’ 부부는 오늘도 부모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요즘엔 뭘 그렇게 구분하길 좋아하는지. 금수저, 흙수저로 나누기도 하고, 장애, 비장애를 구분하기도 하잖아요. 똑같이 사람 사는 건데 구분 없이 자연스러웠으면 좋겠어요. 다른 엄마들하고 똑같아요, 저도.”


김민정 씨는 딸 고은 양에게 바라는 점으로 “주어진 환경에서 행복하게 희망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재선 씨는 “어떤 부모가 되고 싶냐”는 기자의 질문에 “부끄럽지 않은 부모”라고 대답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김민정 씨는 딸 고은 양에게 바라는 점으로 “주어진 환경에서 행복하게 희망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재선 씨는 “어떤 부모가 되고 싶냐”는 기자의 질문에 “부끄럽지 않은 부모”라고 대답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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