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외로울 때는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워킹맘, 외로울 때는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 칼럼니스트 김신희
  • 승인 2017.10.27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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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니까 강하다' 이런 식상한 외침은 잊자

[연재] 워킹맘의 일과 육아 저글링, 어떻게 할 것인가

아이가 이제 다섯 살, 워킹맘 4년 차. 아직도 한창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이기는 하지만 아이와의 대화 속에서 다양한 단어들을 만나게 된다. 

갑작스러운 야근으로 퇴근이 늦어진 날, 잠든 아이를 바라보면 어느새 자라나 쑥 길어져 있는 팔 다리가 눈에 띈다. 그 사이에 또 컸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서른 중반이 돼서야 아이를 낳은지라 이제 몇 달 후면 앞자리가 바뀌는 나이. 아직 아이는 한창 더 커야 한다. 나의 아이 뒷바라지는 한창 더 남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아이가 잘 자라주고 있음에 감사한다. 

가을 소풍에 챙겨 보낼 도시락 장을 보고, 부지런히 일어나 준비물을 챙기는 패턴도 몇 해를 반복하니 이제 조금은 수월히 할 수 있게 됐다. 복직 초기, 아이 걱정에 아직 복귀가 덜 된 유리멘탈에 하루에도 여러 번 찾아오는 다양한 감정들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하던 초보 워킹맘 시절에 비하면 이 정도면 참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도 든다. 

참으로 다행이다. 그러나,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늦가을. 휑한 바람과 함께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 그래도 낮에는 아직 남아 있는 찬 바람 섞인 햇살을 맞을 때 워킹맘들은 또 한 번의 계절 앓이를 하게 된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열심히 살아왔는데' 지금 이 고단함과 휑한 마음은 왜 이런 걸까?

아이를 낳기 전에는 '출산'이라는 단어가 그저 아이가 태어나는 아름다운(?) 과정으로 어렴풋하게 이해되었다가 12시간 전후의 극심한 통증, 출산 이후의 급격한 몸의 변화를 몸소 체험한 다음에야 이 모든 과정이 반드시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엄마니까 강하다' 이런 식상한 외침은 잊자. ⓒ베이비뉴스
'엄마니까 강하다' 이런 식상한 외침은 잊자. ⓒ베이비뉴스

워킹맘의 삶도 마찬가지다. 시대가 변했으니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강요되기도 하지만 (또는 마치 일을 하는 것이 자아실현을 위한 숭고한 임무 인양 묘사되기도 하지만) 사실 많은 부모로서의 삶, 특히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의 삶은 무수한 '내려놓기'의 연속이다. 

초보 워킹맘 시절에는 이 '내려놓기'가 익숙하지 않아 몸과 마음을 닦달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이후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어서 또는 도저히 둘 다 잘 할 기력이 없어서 하나씩 내려놓게 되어 워킹맘은 좀 더 둥글둥글 해진다. 

둥글둥글 해져서 원만해지기도 하지만 사실 사회적인 성취의 욕망, 개인적 탐구의 시간, 네트워킹의 기회 등 한 인간이 사회적으로 좀 더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나 노력의 에너지가 '맘(MOM)'으로서의 오퍼레이션에 할애될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기본적으로 워킹맘들은 맘(MOM)으로서의 열망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워킹(Working)하는 사람으로서의 욕망도 지녔다. 어느 순간 이 둘 사이에 할애되는 에너지와 기회의 양들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면서 '대체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가?' 싶은 우울과 무기력이 몰려들기도 한다. 

특히 찬바람이 호르몬을 간질이기 시작하는 이 계절 가을에는 외로움까지 파고들어 이렇게 애를 쓰고 있는데 세상에 단 하나 내 편이 되어주는 이가 없는 것 같은 고독감에 매몰되기도 한다.

내게도 이런 외로운 가을이 찾아왔다. 겨우 일을 정시에 마치고 막히는 길을 뚫고 뛰어 들어왔는데 마침 아이는 벌써 꿈나라에 가 있었다. 집에서 입는 목 늘어난 티로 갈아입고 갑자기 몰려드는 허기를 달래고자 냉장고에서 반찬 통을 꺼내 접시에 닮을 여유조차 없이 허겁지겁 먹고 있는 내 스스로를 발견하고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보다 더 힘들 날들도 많았는데 오늘 왜 이러지? '나 어디가 아픈 걸까' 이렇게 내가 외로운 날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싶은, 같이 사는 가족도 친한 친구도 위로가 되지 않는 그런 휑한 저녁이 있었다. 

이내 다시 눈물을 닦고 집안 정리를 하고 다음 날 다시 새 아침을 시작했지만 종종 또 그런 저녁이 찾아올 것이다. 그런 휑한 가을이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알고 있다. 내가, 워킹맘이 외로울 때 진정 나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스스로 나뿐이라는 것을. 

'엄마니까 강하다' 이런 식상한 외침은 잊자. 인간이기에 외로운 것이다. 엄마이기 때문에 미션이 많은 것이다. 거기에 일도 하니까 게다가 가을이니까 더욱 그러한 것이다. 지금까지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 해올 것임을 믿고 두 미션을 잘 해나가고 있는 워킹맘 스스로를 한껏 안아줄 수 있는 가을이 되기를 바란다. 모든 일하는 엄마들이 이 휑한 가을을 무사히 넘길 수 있기를 응원한다.

*칼럼니스트 김신희는 초보 워킹맘의 일과 육아 고군분투기 ‘워킹맘의 딸’의 저자이며 14년 차 직장인이자 다섯 살 된 딸을 키우는 엄마다. 일하느라 결혼 7년 만에 아이를 낳고 다시 복귀해 치열하게 일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의 성장과 동시에 스스로도 성장하고 싶은, 그래서 행복하기도 하지만 괴롭기도한 이 시대의 전형적인 워킹맘. ‘워킹(Working)’으로는 오랫동안 경영 컨설턴트였고, 지금은 외국계 소비재 회사의 디지털마케팅팀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맘(Mom)’으로서는 꿈이 엄마이자, 육아좀비, 그리고 동네 아줌마다. 사람들 만나기를 좋아하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함께 하고싶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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