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데리고 회사 체육대회 간 엄마, 민폐였을까?
아이 데리고 회사 체육대회 간 엄마, 민폐였을까?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7.12.15 12: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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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딸과 함께 회사 체육대회에 가다

회사 체육대회 날짜가 잡혔다. 노조에서 올해는 '축구 안 하는' 체육대회를 할 거라고 했다. 운동을 싫어하거나, 하지 않는 직원들이 고문처럼 지켜봐 왔던 종목 축구(대표가 좋아하신다는 건 안 비밀). 직원들 사이에서 올해 체육대회는 이렇게 치르자는, 이전에 없던 각종 아이디어가 튀어나왔다.

멍 때리기, 드론 날리기, pc방을 빌려 e-스포츠를 하자 등. 뭐지? 갑자기 전에 없던 체육대회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했다. 딸아이와 함께 가면 재밌을 것 같았다. 노조에 물으니 흔쾌히 "데려와도 괜찮다"라고 했다. 다른 직원 몇몇도 아이를 데려온다면서. 퇴근 후 4학년 딸아이에게 별 기대 없이 물었다.

"엄마 회사 체육대회에 갈래? 드론도 알려준대."

한참 드론 날리기에 빠져 있는 아이는 묻지도 않고 한 번에 오케이. 드론보다는 현장학습을 이유로 학교에 가지 않는 걸 더 좋아할 나이 열한 살. 사실은 내가 더 설렜다.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 가는 회사 체육대회였으니까. 그런데 며칠 후 아이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엄마, 엄마 회사 체육대회 날이 우리 학교 가을운동회래."

"뭐라고? 어쩌지? 너 운동회 안 가도 돼?"

"응… 안 가도 돼. 작년에 oo이도 안 갔어."

딸아이와 함께 회사 체육대회에 갔다. ⓒ최은경
딸아이와 함께 회사 체육대회에 갔다. ⓒ최은경

나 어릴 적 가을 운동회는 온 마을 축제였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긴 하더라. 심지어 점심도 급식으로 해결한다. 그렇게 학교 운동회 대신 가게 된 엄마 회사 체육대회 날. 매일 출근하던 길을 딸과 걷는 기분도 새로웠다. 지하철에서 아이는 "엄마, 여기는 핸드폰 보는 사람들밖에 없어"라고 속삭인다. 지하철에 '거북목이 되거나 노안이 오니 스마트폰을 너무 쳐다보지 마세요', '스마트폰 대신 책을 보세요'라는 광고가 왜 있는지 알겠다면서.

체육대회장에 도착해 간단히 점심을 먹고 발야구를 시작했다. 쑥스러운 성격 탓에 낯을 많이 가리던 딸도 선수로 참가했다. 첫 번째 주자로 뛴 딸은 연속해서 파울을 먹었다. 응원석에서 아쉬운 탄성과 함께 "힘내", "괜찮아, 괜찮아"라는 응원의 말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때까진 정말 '못해도 괜찮은' 줄 알았다.

고슴도치 엄마가 보기엔 포기하지 않고 뛰어준 딸이 얼마나 대견스러웠는지 모른다. 아이는 2루를 넘지 못했다. 결과부터 말하면 첫 게임 발야구는 우리 모녀가 말아먹었다(ㅜ.ㅜ). 상대팀에게 공이 잡혔는데도 내가 1루에서 2루로 뛰어버린 것이다. 나름 멋지게 몸을 던져 세이프했다고 생각했는데… 투아웃이라니. 곧바로 쓰리아웃 체인지.

"이게 다 선배 때문인 거 알죠?" 팀 내에서 '농반 진반' 아쉬움이 가득 담긴 이야기가 나왔다. 그제야 내가 뭔가 상황 판단을 잘못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건 가족 체육대회가 아니라, 사내 체육대회였다는 사실을 간과한 거다. 1등 팀 전원에게 상금이 걸려 있는. 직원들이 목숨 걸고 뛰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그 후로는 열심히 응원만 했다. 아니, 나 말고 아이들을 데려온 후배들 가족과 따로 2인 3각, 훌라후프 오래 돌리기 등의 가족 운동회를 치렀다. 또 보드게임을 챙겨간 딸은 난생처음 보는 회사 언니 오빠들과 함께 진검승부를 펼쳤다. 뭐든 쑥스러워하는 딸이 처음 보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니, 함께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이 처음 보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니, 함께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은경
딸이 처음 보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니, 함께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은경

그러는 사이 발야구 점수와 달리 우리 팀이 최종 우승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다른 팀과 동점이 되는 상황에 놓인 것. 경기 중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로 재경기를 하네 마네 열띤 토론이 오간 끝에 결국 우리 팀이 최종 우승, 전원 상금을 받았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가슴이 얼마나 조마조마 했던지. 내가 다 손에 땀을 쥐었다. 상금 한 푼 못 받아갔으면 내가 얼마나 미안했을까. 딸은 또 얼마나 실망했을까. 그런데 진짜 미처 몰랐다. 직원들이 이렇게 승부에 집착할 줄은.

집에 오는 길, 딸에게 "오늘 하루는 몇 점이었어?" 물으니 "99점"이란다. 생각보다 높은 점수에 놀라면서도 빠진 점수 1점이 왜 그런지 궁금했다.

"와, 높네? 그런데 1점은 왜 뺐어?"

"발야구가 학교에서 할 때랑 너무 달랐어. 공이 너무 딱딱하고, 뛰어야 하는 거리도 너무 멀어서 힘들었어. 또 가져간 드론이 고장나서 좀 그랬어."

"아, 그렇구나. 아이들용 구장은 좀 더 작았겠구나, 공도 좀 더 말랑했겠고. 엄마가 그 생각은 미처 못했네."

그제야 "발야구 할래?"라고 물었을 때 군말 없이 주자로 나섰던 이유를 알아차렸다.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가 마다하지 않았던 건 그만큼 자신 있어서 였던 거다. 그렇지 않았으면 아무리 주변에서 하라고 등 떠밀었어도 하지 않았겠지. 그런데 웬걸. 학교에서 했을 때보다 공은 딱딱하고 뛰어야 할 거리도 길었으니 놀라고 당황했을 수밖에.

말을 안 했을 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아이도 속이 상했던 거다. 미안하고 고맙고 대견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그래도 딸, 엄마는 함께 땀나게 뛰어준 네가 너무 자랑스럽고 좋았어. 엄마한테는 잊지 못할 100점짜리 하루였어. 요즘처럼 기온이 뚝 떨어진 날, 그날의 너를 떠올리면 하나도 춥지 않을 만큼.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2017년 5월 1일)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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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mr**** 2017-12-16 05:07:13
아이와 엄마의 멋진하루
추억을 함께 만들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