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첫 육아휴직자...복직 후엔 민폐녀"
"나는 첫 육아휴직자...복직 후엔 민폐녀"
  • 칼럼니스트 엄미야
  • 승인 2018.01.12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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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엄마'에게 퇴사 권하는 사회

[연재] 엄미야의 '일하는 엄마의 눈으로'

“언니, 언니 때문에 사람들이 힘들어해요. 그냥 좀 지내면 안 되겠어요?”

내 나이 서른이었을 때, 다니던 직장에서 첫 아이를 임신하고 산전산후휴가를 거쳐 출산 후 1년간 육아휴직을 했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이었고 여성이 절반에 육박하는 곳이었지만, 미혼 비중이 높아 육아휴직이 사람들에게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들리는 얘기로는 이미 자녀를 키운 언니들은 퇴사를 했다가 다시 입사를 하거나, 아니면 출산 후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아이를 시댁이나 친정에 맡기고 복직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첫 육아휴직자였다. 처음 나를 보는 시선이 곱지는 않았다. “나는 아이 낳고 3개월 만에 출근했는데, 유난스럽다”는 수군거림이 있긴 했어도, 그래도 회사나 동료들도 대놓고 불편한 마음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법에 보장된 것이었으니까. 그래도 명색이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이었는데.

그런데 문제는 아이가 첫 돌이 지나고 복직을 한 뒤였다. 돌잔치에서 그렇게 환한 미소로 내 첫 아이의 첫돌을 축하하고 나의 건강을 염려해주던 동료들의 모습은 내가 엄마가 되어 출근을 시작한 뒤 조금씩 사라졌다. 어느 순간 나는 직장에서 ‘민폐녀’가 되어 있었다.

아이는 첫 돌이 지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잔병치레를 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기에 걸렸고, 예방주사를 맞혀야 하는 시기도 이때 집중돼 있었다. 게다가 전염병이라도 돌라치면 어린이집에는 보낼 수도 없었다.

보조양육자도 없이 온전히 우리 부부의 힘으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조건에서 육아전쟁이 시작됐다. 아픈 아이를 어린이집에 두고 잔업을 할 수도 없었고, 병원 시간을 맞추려면 조퇴를 해야 했다. 일주일 내내 잔업을 해야 하는 회사 분위기에서 툭하면 아이가 아프다며 일찍 퇴근하는 나는 동료들의 눈총 속에서 점점 위축돼 갔다.

게다가 주야 맞교대 근무 사업장이었던 터라 원래는 야간근무에 들어가야 하는데, 회사와 면담을 해 야간근무를 유보해놓은 상황. 나 하나로 인해 없었던 주간 고정 업무가 생기고, 그마저도 칼퇴근에 잦은 조퇴, 쏟아지는 눈총… 도무지 배겨낼 재간이 없었다.

우리 사회는 육아휴직 하나 쓰는데도 용기와 강단을 내어야 하는 사회다. ⓒ베이비뉴스
우리 사회는 육아휴직 하나 쓰는데도 용기와 강단을 내어야 하는 사회다. ⓒ베이비뉴스

어느 날 조장이 나를 불렀다. '올 게 왔구나' 싶었다.

“언니, 언니 때문에 사람들이 힘들어해요.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좀 지내면 안 되겠어요?”

사실 나는 억울했다. 내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솔직히 자기들도 여자이면서. 자기들도 나중에 결혼하고 아이 낳고 다 겪을 문제인데 그거 하나 이해 못 해주나.

그날 나는 나보다 한참이나 나이 어린 조장 앞에서 “좀 이해해주면 안 되겠냐”고 눈물을 펑펑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 사건 이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나는 아이가 두 돌이 되기 전에 결국 버티지 못하고 퇴사를 했다. 그리고 소문으로는 이후 그 사업장에 다니던 친구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레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육아휴직도 모두들 1년씩 꽉 채워 쓰고, 요청이 있으면 주간근무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 옛날 펑펑 울던 이 언니 생각은, 내 생각들은 하는지.

나는 이후 세상이 좋아졌을 거라 생각했다. 적어도 십수 년 전 나처럼 육아휴직 하나 쓰는데도 용기와 강단이 필요하고, 아이가 아픈 것도 서러운데 병원 데리고 가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는, 그런 상황은 변하지 않았을까 기대했다. 그런데.

“육아휴직을 한 여성 중 43%는 복직 1년 만에 사표를 냈다.”

김희경 씨가 쓴 <이상한 정상가족>이라는 책에 이러한 통계치가 나와 있었다. '이게 도대체 몇 년도 자료야?' 하고 보니 무려 2016년도. 그 문구를 보는 순간 지금까지 줄곧 나를 쫓아다녔던 ‘그것도 못 견디고 도망쳤다’는 죄책감이 사라지고 묘한 위로를 느꼈다. “너만 힘들었던 게 아니야.” 하지만 곧 뒤따라오는 답답함. “바보야. 달라진 건 없어.”

몇 년간 출산율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종합적인 문제이고 총체적인 난국이다. 최근에는 “여자가 아이 낳는 기계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얼마 전 새 대통령은 “출산율을 올리는 문제로 접근하기보다 아이 키우는 환경의 질을 높이는 문제로 접근하겠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바람직한 얘기다. 하지만 문제의식이 바뀌었다고 좋은 정책이 저절로 나올까.

일하는 엄마들은 스스로 끈끈한 동맹을 맺어야 한다. 나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나만 이 지경에 놓인 것이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위축되지 말고, 더 많이 요구하고, 더 많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환경, 엄마들도 당당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칼럼니스트 엄미야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두 딸의 엄마다.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노동자 남편의 아내이다. “아이는 국가가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교육 추종자이며, 꿈이 있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은 따뜻한 낭만주의자이기도 하다. 현재 경기지방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 민주노총 성평등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금속노조 경기지부 부지부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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