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전 괜찮아요" 난 속깊은 6살 아이와 산다
"엄마, 전 괜찮아요" 난 속깊은 6살 아이와 산다
  • 칼럼니스트 차은아
  • 승인 2018.01.1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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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은 아이에게 용서를 구한 것

[연재] 차은아의 '아이 엠 싱글마마'

6살 난 딸은 울보 엄마인 나를 위로해주는 속 깊은 가족이다. ⓒ베이비뉴스
6살 난 딸은 울보 엄마인 나를 위로해주는 속 깊은 가족이다. ⓒ베이비뉴스

아빠 없이 키운 지 벌써 6년 째, 이제 딸은 나에게 아빠 얘기를 하지 않는다. '왜 아빠는 미국에 살면서 나를 보러 오지 않냐'고 어리광을 부리던 4~5살의 이기적인 나이도 지났다. 이제는 자기 할 말 자기 생각을 곧 잘하는 딸은 아빠와 관련된 이야기는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스스로 금지어를 만들었는지 잘 하지 않는다.

딸은 가끔 밤마다 혼자 훌쩍거리며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자랐다. 엄마가 자기 때문에 우는걸 아는지 아니 자기에게 미안해서 운다는 정도는 아는 나이가 됐는지 이제는 내가 조금이라도 울라치면 휴지를 딱 한 장 가져와 내 눈물을 닦아준다.

그 와중에 감정이 풍부한 이 엄마는 "3장 더 가져와~"라고 정확하게 알려주며 가져온 그 휴지로 코까지 푼다. 우는 이유는 매번 다르지만 거의 전 남편에 대한 억울함, 막막한 현실에 대한 약오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딴에는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기 연민과 교만이 엄청 쌓이면 가끔씩 그 감정 그대로 뒤틀려서 신나게 울곤했다.

역시 울고 나면 모든 감정 쓰레기통이 비워진 것처럼 그 다음날은 아무렇지 않게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바탕 울고 잠을 청해도 먹먹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며칠 째 이 먹먹함 때문에 울어도 보고, 잠을 자보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보고, 신나게 노래를 불러도 보고, 열심히 기도를 해도 풀려지지 않는 이 답답함. 계속되는 이 먹먹함의 원인이 뭘까 고민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사건’이 없었다. 왜 이렇게 가슴이 먹먹하지? 우울증은 아닌거 같은데.

이 가슴에 글자로 새겨 놓은 것처럼 ‘알 수 없는 '먹먹한‘ 감정이 며칠째 계속 되고 있을 때, 우리 딸아이도 재잘거림이 없어졌다. '어디 아픈가?' 우리 딸은 1초도 쉬지 않고 입을 놀리는 아이인데 며칠째 잘 웃지도 않고 그저 그런 무미건조한 반응을 보였다. 어린이집과 집, 다시 어린이집과 집을 오가는 딸을 보면서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구나!'라고 직감은 했지만 그게 뭔지는 모르는 무지한 엄마인 듯 싶었다.

그 날은 일요일. 어김없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먹먹함에 기도를 한 후 낮잠을 자려 하는데 나도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 나왔다. 미안함에 대한 눈물이었다. 딸에 대한 미안한 마음, 아빠 없이 자라게 해준 이 못난 엄마, 내가 힘들고 지친다고 아이의 마음을 힘껏 돌봐주지 못한 죄!

'우리 딸은 자라나면서 아빠와의 추억이 없었구나. 남들처럼 평범하게 가는 놀이동산도 수영장도 자전거를 배우는 것도, 아빠와 손을 잡는 것도…'

우리 딸아이의 기억에는 아빠와의 추억이 별로 없었다. 딸이 비슷한 또래 친구가 아빠랑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다가 넘어진 일이 있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넘어졌는지 알면서도, 똑바로 앞을 안 보고 넘어지냐고 다그쳤다. 그런데 그 날은 딸아이의 상처와 외로움이 너무도 느껴져서 엄청 울었다. '부모의 이기적인 행동에 우리 딸만 이렇게 상처 받는구나'라는 생각에 방에서 놀고 있던 딸을 불렀다.

딸이 방으로 오자 딸을 안고 "엄마가 미안해. 아빠랑 같이 못살게 해줘서 정말 미안해. 엄마를 용서해줘. 그래도 아빠는 사랑이를 엄청 사랑한대"라고 울면서 말했다.

그 순간 우리 딸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엄마, 전 괜찮아요. 아빠가 있는 친구들이 부럽긴 하지만 전 괜찮아요. 그러니 엄마 이제 울지마세요"라고 말했다. 순간, 이게 어디 6살 난 아이 입에서 나오는 소린지 기가 막혔다.

한참 그렇게 둘이 껴안고 실컷 울고나니 내 안에 있던 그 먹먹함이 사라졌다. 요 며칠동안 무미건조한 얼굴로 어린이집을 다니던 딸은 예전처럼 밝고 잘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1초도 쉬지 않는 조잘거림을 보여주는 딸을 보면서 '다행이다. 정말 사과하길 잘했다. 용서 구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 용서 사건 이후, 나와 내 딸은 더 건강해졌다. 그 먹먹한 감정이 '아이에게 아빠와의 추억을 주지 못한 죄책감'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나이는 어리지만, 아이 마음 한구석엔 아빠 빈 자리를 진심으로 사과 받고 싶었나보다. 그래. 엄마가 많이 미안했어. 앞으로 엄마가 2배 더 노력할게! 사랑해 내 딸!

*칼럼니스트 차은아는 6년 째 혼자 당당하게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어설픈 아메리카 마인드가 듬뿍 들어간 쿨내 진동하는 싱글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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