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이제 막 깨어난 아기가 기어가더니 아빠를 깨운다.
"아빠... 아빠..."
아빠는 꿈속을 헤매다 비몽사몽 눈을 뜨며 대답했다.
"어......"
아이는 잠에서 덜 깨어난 아빠의 대답이 재미있었는지 킥킥 대더니 아빠에게 말했다.
아까만큼 소곤소곤......
아까보다 더 신중히.
"사랑해~"
그러더니 모로 누워있는 아빠의 옆구리에 뽀뽀를 했다.
이 광경을 나 역시 비몽사몽 실눈을 뜨고 보고 있다가 아이의 행동이 지나칠 정도로 사랑스러워 잠이 확 달아났다. 이제 막 두 돌이 된 아기가 '사랑해'라는 말과 뽀뽀로 아빠를 깨운다. 아이는 '주로' 사랑스러운 존재이지만, 가끔 이렇게 '극도로' 사랑스러워 질 때가 있다. 나는 부러움에 '나도 뽀뽀해달라고, 엄마에게도 사랑한다고 말해 달라'고 졸랐고 아이는 나에게도 공평하게 한 번의 '사랑해'와 한 번의 뽀뽀를 해주었다.
우리 집에서는 '사랑해'라는 표현이 아주 자주 들린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그 말의 대부분을 신랑이 채웠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부터는 절반씩 채워나가고 있다. '나는 아이에게, 신랑은 나에게...'였으면 좋겠지만, 아이에게 '사랑해'라는 표현이 잦아질수록 나에 대한 애정표현은 줄어드는 걸 보니 그것도 한계치가 있나보다. 어쨌든 그렇게 '사랑해'라는 표현에 자주 노출되다 보니 아이 입에서도 그런 말이 자주 나오는 편이다. 내가 그날 아침 놀라고 감동스러웠던 것은 누구도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 않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조른 사람도 없었다. 게다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정신이 없었을 텐데, 아이 입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온 것이 "아빠, 사랑해"였다는 것이 놀라운 것이다.
어떻게 아이가 저렇게 예쁘게 사랑표현을 할 수 있을까. 그 날 이후 신랑과 나는 서로 우긴다.
"역시 내가 사랑한다는 표현을 많이 하니까 아기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
"무슨 소리야~ 내가 많이 하지~ 내 덕이야."
뭐 누구 덕이면 어떻겠는가. 아이는 이미 사랑스러운 걸. 사랑스러운 아이로 키우려면 아이는 충분히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게 먼저인 것이다.
한 지인은 의아해했다. "나는 아이에게 충분히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놀아주는데 왜 아이는 늘 엄마의 사랑이 부족한 것처럼 행동할까." 그렇다. 분명 그녀는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와 충분히 놀아주려고 노력한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하나가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도.
하루에 '사랑해'를 건조하게 열 번 하는 것보다 한 번의 '사랑해'라도 '찐~'하게 하는 편이 낫다. 나의 또 다른 지인은 '사랑해'라는 말을 아이들에게 자주 해준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분의 아이가 엄마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집을 나서면서 "엄마 사랑해"라고 말하고 휙 나가버렸다. 그건 마치 "다녀오겠습니다"와 비슷한 말투라 나는 그 말이 어떤 의미의 말이었는지 한참을 생각해봐야 했다. '사랑해'라는 말은 '말'에 그치지 않는다. 마음이고 감정이다. 따뜻한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입 밖으로 나가는 단어가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건 '사랑해'가 아니다. 사랑해의 밀도를 높여보자. 아이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는 순간만큼은 엄마의 눈빛도 몸도 손도 표정도 말투도 모두 아이를 사랑해야 한다. 어떤 말을 하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온도로 이야기 하는가이다. 예열이 필요하다.
*칼럼니스트 김경옥은 아나운서로, ‘육아는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는 ‘일하는 엄마, 육아하는 방송인’이다. 현재는 경인방송에서 ‘뮤직 인사이드 김경옥입니다’를 제작·진행하고 있다. 또한 ‘북라이크 홍보대사’로서 아이들의 말하기와 책읽기를 지도하는 일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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