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구멍으로 수박 빼내는 고통" 쌍둥이 자연분만하던 날
"콧구멍으로 수박 빼내는 고통" 쌍둥이 자연분만하던 날
  • 칼럼니스트 전아름
  • 승인 2018.02.1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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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트윈스 육아일기] 용산트윈스, 세상 빛 보기 위한 27시간의 사투

2017년 8월 28일 밤 10시 58분. 2.26kg의 선둥이 도담이(태명)가 태어났다. 2분 뒤인 밤 11시. 후둥이 도토리(태명)가 나왔다. 주치의가 태반을 꺼내고, 절개한 회음부를 꿰맸다. 진통을 27시간이나 했다. 하루 반나절을 물 한 모금 못마시고 분만실 침대에 누워 소변줄과, 관장과, 내진 같은 ‘굴욕’을 당해야 했다.

그래서 아기 낳자마자 “아휴, 배고프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TV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산모들이 아기를 낳으면 되게 애잔한 얼굴로 “우리 아기는 건강한가요?”라고 묻는다던데, 나는 언제쯤 밥 먹을 수 있냐는 말만 했다. 진통, 그리고 자연분만은 너무너무 허기지고 배고프고, 너무 힘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하도 진통이 길어지니까 시어머니가 나 먹으라고 집에서 미역국을 끓여 도시락을 싸 대기실에 있던 남편에게 주고 가셨다는데, 그 도시락을 남편이 다 먹어버렸다. 남편은 “더 오래 걸릴 줄 알고… 너무 오래 두면 미역국 상할까봐. 내가 ‘억지로’ 먹어치웠어”라고 변명했다. 억지로는 무슨…)

출생 직후 남편이 찍은 사진. 서러운 듯 우는 녀석이 2분 형 도담이. 평온하게 자고 있는 것 같지만 청색증의 흔적이 남아있는 후둥이 도토리. ⓒ전아름
출생 직후 남편이 찍은 사진. 서러운 듯 우는 녀석이 2분 형 도담이. 평온하게 자고 있는 것 같지만 청색증의 흔적이 남아있는 후둥이 도토리. ⓒ전아름

◇ 쌍둥이 자연분만, 성공률 높고 안전하다고?... 홀리듯 결정한 분만방식 

딱히 자연분만할 생각은 없었다. 쌍둥이는 제왕절개로 낳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라고 알고 있기도 했고, 진통을 겪고 싶지 않았다. 아기를 먼저 낳은 친구들이 말하길, “출산이란 무릇 콧구멍으로 수박을 빼내는 고통과 같다”고 했거늘, 그렇다면 내가 자연분만을 한다면 콧구멍 두 개에서 수박 두 개를 빼는 고통을 견뎌야 한다는 것 아닌가. 그 흔한 생리통 한번 겪어본 적 없이 고통에 단련되지 않은 나는, 그래서 병원가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나는 아기를 낳는 고통을 최소화 할 수 있다면 무조건 제왕절개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러나 나의 주치의는 달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지간하면 자연분만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는 속사포처럼 빠른 말투로 산모들을 홀렸다. 나도 그에게 홀린 산모 중 1인이었다. 그는 나를 진찰하자마자 “아기들 자세가 좋으니 37주 이후에 유도분만 합시다”라고 말했다. 도담이의 머리는 아래를 향하고 있는 ‘6’자세, 후둥이 도토리의 머리는 내 갈비뼈를 향하고 있는 ‘9'자세였다. 도담이의 머리가 질 밖으로 나올 때까지 진통을 견디고 이후 분만실에서 주치의가 기구를 이용해 도담이의 몸통을 꺼낸 뒤, 내 질 안에 손을 넣어 도토리의 다리를 잡고 빼내는 방식으로 분만한다고 했다. 그의 유려한 설명에 나도 모르게 제왕절개의 '제‘자도 꺼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매일 밤 ’쌍둥이 유도분만‘ 후기를 검색하고 또 검색하며 ’수박 두 개‘를 꺼낼 마음의 준비를 했다. 쌍둥이를 자연분만 한 산모들의 후기를 보니 옛날과 다르게 쌍둥이 자연분만 성공률이 높아졌다는 글이 많았다. 생각보다 안전했으며 분만 직후 식사와 샤워를 할 수 있어서 좋다는 글도 나를 안심하게 했다. 무엇보다 나의 주치의는 쌍둥이 자연분만 성공률이 높은, 그 분야의 권위자라고, 의료진을 믿고 몸과 마음을 맡기라는 ’선배님‘들의 말씀에 조금은 겁을 내려놓고 분만을 기다릴 수 있게 됐다.

◇ 쑤시고, 벌리고, 누르고…고문 같았던 27시간의 진통

분만하러 병원 가던 날 저녁, 나와 남편은 병원 앞 닭갈비집에서 닭갈비에 쫄면 사리를 볶아먹고, 900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셨다. 본격 진통이 오기 전, 내게 닥칠 고통이 어떤 건지 알지도 못하면서 친구들과 낄낄대고 카톡을 하며 “야, 애 낳는거 별거 아니네. ㅋ”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자궁문이 4cm 정도 열렸을 때 그야말로 지옥을 경험했다.

30분에 한 번씩 의료진이 내 질에 손을 ‘쑤셔넣고’ 자궁과 아이상태를 체크하는 내진이 반복됐다. ‘천국’이라던 무통주사는 효과가 없었고 몇 번을 혼절할 정도로 진통을 심하게 겪었다. 의료진은 남편에게 “산모의 엉덩이를 세게 눌러주세요. 그래야 산모가 덜 아파요”라고 했다. 남편은 땀을 뻘뻘 흘리며 내 엉덩이를 눌렀지만 영 마뜩찮았다. 나는 울며불며 아프다고 소리쳤고 제발 제왕절개 하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의료진은 “조금만 더 힘내세요. 거의 다 됐어요”라는 말뿐이었다.

내가 하도 아기를 못 밀어내니 두 명의 의사와 두 명의 간호사가 내 사지육신을 찢듯이 벌리고, 당기고, 한 명의 간호사는 내 배위에 올라타 배를 터트릴 듯이 눌러 도담이를 밀어냈다. 남편은 내 위에 앉아 내 양쪽 허벅지를 머리쪽으로 당기며 아기를 밀어냈다. 고문도 이런 고문이 따로 없었다. 다섯명의 의료진과 남편이 힘을 합친 뒤에야 도담이의 머리통이 내 가랑이 사이로 나타났다. 그리고 2분 간격으로 도담이와 도토리가 세상 빛을 보게 됐다. 

◇ 쌍둥이 자연분만, 추천하시겠습니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지만, 이상하게 분만하던 당시를 생각하면 첫째 도담이에게 더 마음이 가고 애틋하다. 겁 많고 요령 없는 엄마 때문에 2.26kg밖에 안 되는 그 작은 녀석이 20시간 넘게 고생한 생각을 하면 괜히 미안해진다. 산도를 통과하면서 애가 너무 힘들었는지 저혈당이 왔다고 했다. 그래서 도담이는 신생아실에서 엄마 젖보다 수액을 먼저 맞았다. 도담이에 비해 도토리는 고생 안하고 쉽게 세상 빛을 본 것 같지만, 또 따지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도토리도 분만 과정에서 잠시 무호흡증상이 있어 약간의 청색증이 있었다고.

단태아보다 작게 나왔지만 씩씩하게 제 힘으로 이 세상에 나온 도담이와 도토리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 않고 신생아실에 있다가 건강하게 퇴원했다. 조리원에서 가장 작은 아기들이었지만 생후 170일이 다 돼 가는 지금 도담이와 도토리는 또래 아기들처럼 우람하고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 사람들이 가끔 내게 묻는다. 쌍둥이를 임신한 산모들에게 자연분만을 추천할 수 있겠느냐고. 글쎄, 그 질문에는 아직도 쉽게 대답을 못하겠다. 아, 적어도 아기 낳고 바로 식사를 하고 싶으신 분에게는 자연분만을 추천한다. 11시에 아기 낳고 새벽 1시에 입원실 침대에서 먹었던 밍밍한 미역국이 얼마나 맛있던지, 아직도 기억난다.

*칼럼니스트 전아름은 용산에서 남편과 함께 쌍둥이 형제를 육아하고 있는 전업주부다. 출산 전 이런저런 잡지를 만드는 일을 했지만 요즘은 애로 시작해 애로 끝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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