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 VS 피자와 콜라...미국에서의 산후조리 이야기
미역국 VS 피자와 콜라...미국에서의 산후조리 이야기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18.02.1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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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미국 유학생 엄마의 육아이야기

“너무 잘하고 있어요! 훌륭해요! 당신은 정말 용감해요! (You are doing a great job! Beautiful! You’re so brave!)” 늘 조금은 무덤덤한 편인 나에게는 다소 낯 뜨거웠던 이 격려와 찬사는 첫 아이를 낳을 당시 분만실에 있던 의료진들이 내게 계속해서 외쳐주던 응원의 메시지였다.

첫 아이는 예정일보다 2주 가까이 먼저 나오겠다는 신호를 보냈고, 예정일보다 일찍 미국행 비행기 예약을 잡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산바라지를 위해 오시려던 친정어머니의 미국 입국일은 막상 아이가 태어난 하루 다음 날이었다. 소위 '멘붕'이 온 남편은 나보다도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나는 나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에 침착하게 인터넷에서 보며 익혔던 호흡법을 반복했다.

온 힘을 다해 아이를 낳고나니 회복실로 옮겨졌고, 둥글둥글 친절한 웃음의 간호사는 내게 얼음을 넣은 콜라를 마시겠냐고 해맑게 웃었다. 친정 어머니가 계셨으면 기겁하셨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피식 웃으며 그냥 물이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잠시 뒤에는 식사를 주문하라며 메뉴판을 주었는데, 피자와 치킨 너겟, 햄버거, 그리고 감자 튀김 같은 것들이 주메뉴였다. 남편과 나는 순간 이렇게 다르구나 하고는 낮은 소리로 웃고 말았다. 예정보다 빨리 나온 아이 때문에 친정 어머니는 아직도 이곳으로 오고 계신 중이었고, 김빠진 콜라와 식은 피자를 집었다 놓았다 하며 제대로 먹지 못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잠시 집에 다녀오겠노라며 자리를 비웠다.

한 시간 후쯤 나타난 남편 손에는 미역국이 들려있었는데, 기대에 찬 그의 눈빛 때문에 나는 바삭바삭한 미역이 들어간 특이한 미역국을 억지로 먹을 수밖에 없었다. 임신 기간 내내 입덧때문에 요리를 제대로 못하던 내게, 늘 본인이 좋아하던 피자와 치킨만 덩달아 계속 사다주던 불량남편이 처음으로 부인만을 위해 만들어 본 음식이었다. 그러니 미역국을 끓여본 적이 있었을리가. 미역을 불리지도 않고 그대로 끓여온 탓에 딱딱한 미역은 유유자적 물 위에 부유하고 있었다.

저녁이 되자 간호사가 얼음주머니를 갈아주고, 내게 샤워를 하라고 권유했다. 당황한 내가 아직 샤워할 생각이 없다고 하자, 몸을 움직이기 힘들면 자신이 도와주겠다며 '위생'과 '빠른 회복'을 위한 것이라고 재차 권유한다. ‘중국인이나 한국인이 많은 조금 더 큰 도시라면 이렇지 않았을 수도 있을 텐데’라고 속으로 웅얼거리다가, 나는 간호사에게 한국의 산후조리 방법과 문화적 터부에 대해 설파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너무 고압적으로 들릴까봐 네게 고맙기도 하고 좋은 방법인 줄은 아는데, 내 고유 방법과는 다를 뿐이라고 덧붙였다. 흥미롭게 듣고있던 간호사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알았어. 너희 문화를 존중할게. 그런데 샤워는 빨리 하는 게 위생에 좋을텐데”하고는 병실을 나갔다.

둘째 아이를 낳고 미국 병원에서 제공됐던 식사. 나는 친정어머니가 정성스레 싸주신 미역국과 한식 도시락을 먹고 남편이 대신 병원 메뉴를 먹었다. ⓒ이은
둘째 아이를 낳고 미국 병원에서 제공됐던 식사. 나는 친정어머니가 정성스레 싸주신 미역국과 한식 도시락을 먹고 남편이 대신 병원 메뉴를 먹었다. ⓒ이은

한인이 많은 LA 지역 같은 일부 지역에는 한국식 산후조리원도 있다는데, 내가 있는 지역은 그런 곳과는 거리가 멀었다. 있었더라도 병원비도 부담스러운 가난한 유학생 신분에 꿈도 못꿨을 테지만. 그나마 큰 수술을 하시고도 마다하지 않고 딸의 산후조리를 위해 달려와 물질적, 육체적, 정신적 서포트를 해주신 친정어머니가 있기에 고생을 덜했다. 쇠약한 몸으로 비척거리시면서 아이를 봐주시는 친정 엄마를 보면서, 내 새끼 돌보자고 내 어머니를 혹사하는 모양이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마음이 꽉 막힌 것 같은 날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래도 솔직히 엄마가 있어서 든든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엄마가 되기 위해서 제일 필요했던 건 나의 엄마였던 셈이다.

창밖으로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았던 옆동의 미국 엄마가 발등이 드러난 슬립온을 신고 아파트 단지 앞을 뛰어가는 것을 보면서 겹겹이 껴입은 나는 뒤뚱뒤뚱 미역국을 먹으러 주방으로 향했다. 동부 어느 주에서 이 지역으로 이사온지 꽤 됐다는 그녀는 산후조리원도 없고, 엄마도 없는 이 곳에서 다정한 남편과 단둘이 씩씩하게 아이를 낳고 한겨울 날씨에도 출산 2주만에 강아지와 산책을 다녔다. 혹자의 말처럼 서구체형이라 골반이 넓고 아이의 두개골은 작은 생물학적 요인 때문인가? 아니면, 한국처럼 산후조리원이 존재하지도 않고 가족들의 돌봄 품앗이도 보편적이지 않기 때문에 산후조리 기간을 줄일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인 요소 탓인가? 아직도 그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하겠다. 다만, 내가 경험으로 알고있는 것은 어설프게 이들을 따라하다가는 엄청난 고생을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큰 아이를 낳고 미국 산모들처럼 금세 운동을 시작했다가 손목이며 허리가 아파 아직까지도 고생하고 있지 않은가.

아이를 낳는 고통과 아이를 얻는 환희는 어느 곳이나 다르지 않지만, 회복의 과정이나 방식은 그 모습도 속도도 상이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느릿느릿 혼자만의 템포로 미국에서의 엄마되기를 연습하고 있다. 이곳의 문화를 존중하고 배우되,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사실을 지난 시간을 통해 배웠다. 나는 아직은, 미역국이 훨씬 더 좋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 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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