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엄마라고 미안해하지 마세요
맞벌이 엄마라고 미안해하지 마세요
  • 칼럼니스트 엄미야
  • 승인 2018.02.23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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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야의 '일하는 엄마의 눈으로'] 학교가 더 잘 키운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처음 2~3년간은 그랬다. 반장, 부반장, 회장, 부회장. 학교에서 각 학급 임원을 뽑고 나면 꼭 전화가 왔다.

“반장 누구누구 엄만대요, 임원 엄마들이 모여서 선생님께 인사를 가기로 했어요. 참석해 주실거죠?”

“엄마들이 모여서 청소를 하러 가기로 했는데, 같이 갈 수 있으세요?”

“아이들이 체험학습을 가는데 참가 가능하신 분?”

전화 말고도 엄마들은 반톡방(집단 반 카카오톡방)을 만들어 수시로 학교 소식, 다음날 수업 준비물, 공지사항 같은 것들을 올렸고 체험학습이 있는 날은 출발부터 도착까지 시분 단위로 사진이며 아이들의 동선을 올렸다.

맞벌이들에게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나 또한 그러했고, 입학부터 시작된 학부모 총회, 담임선생님 면담, 무슨무슨 어머니회 참가, 공개수업까지 .... 숨이 턱 막혔다. 이래서 엄마들이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회사를 그만두는구나.

결국 일이 터진 건 그 알량한 5만원 때문이었다.

"체육대회 때 입을 반 단체티를 맞추기로 했어요. 그리고 앞으로 돈 낼 일들이 있을 것 같아서, 그때마다 걷으면 번거로우니까 한꺼번에 5만원씩 내기로 했어요. 어떻게 하실래요?"

5만원이었다. 적으면 적을 수 있지만,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액수 그 5만원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전화기 너머로 한 마디 하고야 말았다.

"그 돈 걷는 게 학교에서 걷는 건가요, 아니면 알아서들 하는 건가요? 꼭 단체티는 맞춰야하는 건가요?"

내 질문을 예상치 못했는지 반 대표라는 그 엄마는 "학교가 원래 그렇게 한다"는 말로 얼버무린다. 당황한 목소리다. 그러면서 "다른 반들도 다 맞추는 데 우리만 안 맞출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했다. ‘참 별 엄마를 다보네’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서로 어색하게 전화를 끊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이 입학 후 학교에서 하라는 것들만 따라가기에도 너무 버거운데, 왜 저 엄마들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자꾸 만들까.

학교에서 지급하지 않는 초등학교 단체티. 꼭, 엄마들이 돈을 걷어 맞춰야 할까요? ⓒ베이비뉴스
학교에서 지급하지 않는 초등학교 단체티. 꼭, 엄마들이 돈을 걷어 맞춰야 할까요? ⓒ베이비뉴스

"박카스 한 박스라도 절대 가지고 오지 마세요."

입학식에서 교장선생님은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저희학교는 운영비가 넉넉하게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도 간식지원, 물품지원 받지 않습니다. 담임선생님과 면담은 자유롭게 하시되 박카스 한 박스라도 절대 가지고 오지 마세요. 좋은 마음으로 '어떻게 빈손으로 가나'하시며 가지고 오신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카스 가지고 오신 엄마들은 그로인해 맘이 편하실지 모르겠지만 가지고 오지 못하는 나머지 엄마들은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시겠습니까?"

이 얼마나 옳은 소리인가. 그런데 학교가 아무리 기존의 나쁜 관행을 바꾸려고 해도 부모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 아닌가. 바로 한 인터넷 언론사에 기고를 했다. 그리고 교육청에 민원도 넣었다. “학부모들의 모금 행위를 금지하는 공문을 발송해 달라, 정말 체육복이 학교생활에 필요한 것이라면 비품비용에 포함시켜야 한다.”

학교가 이 일로 발칵 뒤집혀 졌다고 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교장선생님이 직접 전화를 해서 “학교와는 무관하지만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해서 연신 “죄송하다”고 했다. 학교의 문제는 아니었는데. 미안한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번일을 계기로 이런 관행들에 쐐기를 박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미안함을 눌렀다.

그리고 며칠뒤 각 가정으로 공문이 내려왔다. “학부모들의 일절 학교운영 및 교육과 관련한 모금행위를 하지 말아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라는.

그리고 우리 큰 아이는 유명세 아닌 유명세를 치렀다. 사실 나도 나중에서야 알았는데, 친구 엄마들이 우리 아이만 보면 “아~ 니가 누구누구니?”라며 아는 척을 한다는 거였다. 나는 아이에게 “훌륭한 엄마를 둔 덕으로 알아라”고 하며 웃었다. 나쁘지 않았다.

그 후 학교는 계속 진화했다. 처음에는 “찬조나 선물을 받지 않습니다”로 시작한 학교는 “부모님들이 자발적으로 오시는 청소를 금지합니다”에서 “태권도장이나 시설을 대여하는 생일잔치를 하지 말아주실 것을 부탁 드립니다”까지.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운동회도 교원과 학생들만 참여하는 소규모 운동회로 바뀌었다. 물론 운동회 복장은 '흰 티를 입어주세요‘라고 공지하면 끝.

물론 그것이 못내 서운해 여전히 학교를 아이와 함께 등하교하고, 학교에 무엇이라도 해줘야할 것 같아 늘 고민인 엄마들이 있다고 전해 들었다.

공교육이 많이 바뀌었다. 그간 몇 세대에 걸쳐 평등한 교육, 공평한 복지를 위해 싸워온 분들의 덕이다. 그 변화에 우리 부모들이 발맞춰 잘 따라가주어야 한다. 부모가 교사에게 잘 보여서, “내 아이를 잘 부탁드려요” 한다고 뭐가 달라지는 시대가 아니다. 

학교에 찾아가지 못한다고, 시간을 내지 못하는 엄마라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부모들은 기본적으로 학교를 신뢰하고 맡길 필요가 있다. 학교가 더 잘한다. 단, 더 많은 영역에서 학교의 역할을 높여달라는 주문과 함께 마음으로 보내는 관심이면 충분하다. 교사도 학교도 그것을 원한다.

*칼럼니스트 엄미야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두 딸의 엄마다.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노동자 남편의 아내이다. “아이는 국가가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교육 추종자이며, 꿈이 있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은 따뜻한 낭만주의자이기도 하다. 현재 경기지방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 민주노총 성평등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금속노조 경기지부 부지부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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