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 여섯 살, 육아일기 막차 타볼까?
내 아이 여섯 살, 육아일기 막차 타볼까?
  • 칼럼니스트 한희숙
  • 승인 2018.03.0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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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장, 육아일기 한 줄] 육아일기를 고민하는 엄마들에게

어린 아이 둘을 독박육아로 키우며 블로그에 육아일기를 올리던 그녀. 육아 콘텐츠가 쌓이면서 방문자는 늘어났고 심심찮게 상품 협찬을 받는 블로거로 성장했다. 공짜로 제공받는 육아용품이 탐났던 나. 아기 잠든 틈에 몇 자 끼적여봤지만 웬걸, 며칠도 안 돼 나가떨어졌다. 애 하나 키우기도 버거운 보통의 엄마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아쉬움이 더 커졌다. 이번에는 공짜 상품이 아니라 그녀가 차곡차곡 기록한 육아일기 때문이다.

나도 고만한 아이를 키워서 일기 속 에피소드가 특별할 건 없다. 그렇다고 빼어난 필력에 마음이 사로잡힌 것도 아니다. 이유는 하나, 그 집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육아일기로 기록돼 잊히지 않아서다. 평범한 개인의 일상을 누가 이토록 애정 어린 어조로 기록할 수 있겠는가. 부모라서, 엄마라서 가능했다는 생각에 이르니 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놓친 듯해 정신이 아득해진다.

사진집 『윤미네 집』을 보고 빠져든 이유도 비슷하다. 아빠는 첫딸 윤미가 태어나자 카메라를 든다. 그때부터 윤미와 가족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촘촘히 기록하는데 그 세월이 무려 26년이다. 윤미가 태어나 시집가기까지 아빠는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을 촬영해 한 권의 사진집으로 세상에 내놓는다. 사진의 작품성이나 사진을 찍은 이가 사회적 명망가라는 것과는 별개로 이 책은 매우 특별하다. 꾸준함이 빛난다는 것은 이런 순간일 테다. 이 책은 보통 사람의 이야기가 기록의 힘으로 특별해질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식의 유년기를 기록했던 그들과 달리 나는 아이 키우며 변변한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애호박미음 40숟가락” “새로운 채소, 청경채 도전” 같은 이유식 일지, “엄마, 감기 왔어요?” “아하!” 같이 아이가 말 배울 때 웃음 나게 했던 말을 드문드문 메모해 놓았을 뿐이다. 결국 머릿속에만 내 아이의 아기 때 기억이 있는 건데 그마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출산의 고통도 흐릿하게 만드는 게 시간이잖은가. 

하루하루가 다르던 아기 때_오래 기억하고 싶다. ⓒ한희숙
하루하루가 다르던 아기 때_오래 기억하고 싶다. ⓒ한희숙

제법 어린이 티가 나는 여섯 살 아이를 보고 있자니 지나간 시간이 퍽 아쉽다. 아이가 빨리 자라서 자유롭고 싶으면서도 크는 게 아깝다던 선배 엄마들 말이 이제 이해된다. 엄마 마음도 모르고 아이는 노는 데 온정신이 팔려 있다. 잔뜩 골이 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노는 걸 보면 내 새끼라 그럴 테지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지금이라도 차근히 아이의 밀린 일상을 기록하고 싶다. 뒤쫓아야 할 날들이 많지만 학창 시절 밀린 일기 꽤나 따라잡아봤으니 길을 찾아봐야겠다.

그림책을 들춰보면 좀 더 수월하게 밀린 일기를 따라잡을 수 있겠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소재로 한 그림책들이 많아서 기억을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읽는 데 시간도 별로 안 걸리고 아이와 함께 봐도 좋으니 이만한 게 없다. 박완서 작가의 그림책 『아가 마중』은 육아일기 첫 장에 꼭 맞는 책이다. 『아가 마중』은 엄마가 아기를 배 속에 품고 지냈던 그 특별한 순간으로 우리를 다시금 안내한다. 그림책 한두 장만 넘겨봐도 지독한 입덧과 급격한 신체변화를 겪으며 우리가 얼마나 소중하게 아이를 품었었는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임신했을 때 내 모습, 엄마 마음이 담겨 있다. ⓒ한희숙
임신했을 때 내 모습, 엄마 마음이 담겨 있다. ⓒ한희숙

그림책 속 새댁은 임신 후 좋은 음식만 가려 먹고 자기 수준에서 가장 좋은 아기용품을 장만해 놓고 아기를 기다린다. 임신했을 때 내 모습, 엄마 마음이 거기 담겨 있다. 나도 새댁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아기를 기다렸다. 틈만 나면 아기용품을 비교해 놨다가 좋은 것으로 구입하고 세탁한 뒤 정리했다. 아기용품을 들춰보고 손으로 쓸어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기였다. 새댁의 마음 씀씀이가 전보다 넉넉해진 것도 그때의 나와 같다.

“그전의 엄마는 담장 안의 집 안만 보고, 집안일만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 그러나 아기를 가진 엄마의 넉넉한 마음은 담장 밖을 쓸고, 담장 밖을 지나는 사람들과 말없이 친해집니다. (…) 가끔 소년의 작고 차가운 손과 악수도 해서 소년의 하루를 그지없이 찬란하게 해 줍니다.”

내 아기가 귀한 만큼 뭇 생명도 소중하다는 깨달음. 아기를 품은 엄마에게 아기가 주는 가르침이었다. 이토록 그때 감정과 기억을 되살려주니 고마운 그림책이다. 육아하다 지친 날 꺼내 봐도 좋겠다. 아기를 기다렸던 첫 마음을 기억한다면 당장 육아가 고되더라도 넉넉한 마음으로 아이를 대할 수 있으리라.

그나저나 육아일기를 쓰겠다니 나도 숨통이 트인 모양이다. 아이 키우는 것 말고 다른 데 눈 돌리기까지 햇수로 6년이 걸린 셈이다. 사실 임신 초기에도 육아일기를 시도한 적이 있다. 임신 확인 후 복잡 미묘한 감정을 일기로 남기려 했는데 쓰다 지우다만 반복했다. 배 속에 생명이 자라고 있다니 모든 게 조심스러웠던 탓이 크다. 충분히 기뻐해도 좋았으련만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쉽다.

아기 키우며 그때그때 육아일기를 썼다면 이야기가 더 생생했겠지만 지금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육아환경이 다른 만큼 육아일기의 적기도 다를 수밖에 없다. 아이 여럿을 키우면서 육아일기를 소화하는 활력 넘치는 엄마도 있고 나처럼 육아일기 막차를 타는 엄마도 있을 수 있다. 누군가는 정돈된 글로 아이의 일상을 기록할 테고 다른 누군가는 SNS를 활용해 기록을 남길 것이다. 물론 육아에 지쳐 육아일기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을 수도 있다. 누가 더 나은지 우열을 가릴 일은 아니다. 아이와 보낸 그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든 자식에 대한 사랑이 변하는 건 아니니까. 다만 나는 기억이 흩어지는 게 아쉬워 육아일기에 도전하려는 엄마일 뿐이다. 그림책을 길잡이 삼아 즐겁게 뒤쫓아 가보겠다.

*칼럼니스트 한희숙은 좋은 그림책을 아이가 알아봐 주지 못할 때 발을 동동 구르는 아기엄마이다. 수년간 편집자로 남의 글만 만지다가 운 좋게 자기 글을 쓰게 된 아기엄마이기도 하다. 되짚어 육아일기 쓰기 딱 좋은 나이, 여섯 살 장난꾸러기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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