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어보데요?"
아이가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에 손주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며 친정 엄마가 전화를 하셨고, 이제 전화로도 대화가 제법 잘 되는 아이는 한 손으로 휴대전화를 붙들고 어른 흉내를 내며 통화를 했다.
할머니: "아가~ 뭐하고 있었어~?"
아이: "나는~ 나는~"
그러곤 아이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
나는 아이가 뭐라고 하나 몹시 궁금해하면서 아이의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아이 아빠가 아이에게 말했다. "할머니, 장난감 가지고 놀고 있어요~ 그래." 아이는 그대로 따라 했다. "함머이~ 장난감 가지고 노고 있쩌요." 할머니는 이번에는 밥을 먹었는지, 뭘 먹었는지를 물었고, 아이는 이번에도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어,,,,,, 어,,,,,," 하며 뒷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아이 아빠가 영웅처럼 나타나 아이가 쉽게, 생각하지 않고도 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밥 잘 먹었어요~ 생선 먹었어요~ 그래." 아이는 또 그대로 따라 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할머니에게 아이는 할 말이 있는 듯 "아니, 내가 초록불이~"하면서 엉뚱한 말을 하려고 하자, 아이 아빠는 "저도 사랑해요~"라고 답하라고 깔끔하고 완벽하게 정리해줬다. 아이는 하려던 말을 멈추고 "저도 사랑해요"라고 답했다. 그러곤 입을 닫고 장난감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빠이빠이'를 하는 할머니에게 간신히 '빠이빠이'를 시키고 나는 아이에게 조금 전 무슨 말이 하고 싶었는지 물었다. 하지만 그 말이 무엇이었는지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전화 통화가 끝나고 아이 아빠에게 말했다.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을 완성해볼 수 있게 조금 기다려주면 어떻겠냐고. 아이가 단어를 뱉어내고, 어느 순간 힘겹게 문장을 만들어 나갈 때, 우리는 조금 더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
자전거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나의 아이는 친구들이 타는 세 발 자전거를 보며 늘 갖고 싶어 했다. 이런 아이의 마음을 안, 한 엄마가 타지 않는 자전거를 선물했다. 아이는 정말 기뻐하며 자전거 타기를 즐겼다.
어느 날은 자전거를 타다가 "엄마! 이건, 지언이가...... 엄마가......" 그러곤 말을 멈췄다. 나는 '지언이 엄마가 줬다고 말하고 싶은 거구나' 눈치를 챘지만 아이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아이는 정리된 듯,
"이건...... 지언이가...... 엄마가......" (멈칫)
(스스로에게 다그치듯) "아니!"
그러곤 다시 공을 들여 말했다.
"이건 지언이...... 엄마가 주신 거야."
아이는 여러 번 수정 작업을 거쳐 간신히 '지언이' 뒤에 '가'를 뺐다. 나는 아이가 '가'라는 조사를 하나 빼야 문장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싶어 그 순간 과한 리액션이 튀어나왔다. 자전거를 멈추고 아이에게 정말 대단하다고 엄마가 깜짝 놀랐다고 칭찬해줬다. 만약 내가 아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눈치채고, "응 그래, 이거 지언이 엄마가 줬다고 말하고 싶은 거구나"라고 말해버렸다면 아이는 스스로 문장을 만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아이의 말을 가로챈다. 기다리기 답답해서 혹은 아이가 그 정도의 언어 구사력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야말로 도.와.주.는. 차원에서 문장을 만들어 말해줘 버린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이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는 것이다.
우리가 영어 배울 때를 생각해보자. 영어가 유창한 사람과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어렵게 대화를 하고 있다. 그 사람이 질문을 했고, 나는 입을 떼고 더듬거리며 단어를 조합하고 있다. 그러던 중, 다음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머릿속이 요동치며 적합한 단어를 생각해내고 있는 그때! 상대가 문장을 완벽하게 만들어서 던져줬다. 나는 치열하게 '단어 찾기'를 하던 것을 모두 멈춘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어떻게 될까. 과연 적극적으로 단어를 찾고 문장을 만들어 볼 필요를 느낄 수 있을까.
아이가 문장 만들기를 포기해버렸거나 너무 어려워해 짜증을 내는 상황이라면 도와주는 것이 맞지만, 스스로 말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라면 충분히 기다려주어야 한다. 때로는 아무 말 하지않고 입을 닫아 내가 먼저 말을 해주어야 하나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에도 가만히 기다려주면 아이는 입을 열고 하고 싶은 말을 하나둘 이어 나간다. 내가 입을 닫고 귀를 열면 상대의 말을 들을 수 있다. 상대의 마음을 알아갈 수 있다.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다.
*칼럼니스트 김경옥은 아나운서로, ‘육아는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는 ‘일하는 엄마, 육아하는 방송인’이다. 현재는 경인방송에서 ‘뮤직 인사이드 김경옥입니다’를 제작·진행하고 있다. 또한 ‘북라이크 홍보대사’로서 아이들의 말하기와 책읽기를 지도하는 일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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