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한 마리가 집에 오면서 번뇌가 시작됐다
물고기 한 마리가 집에 오면서 번뇌가 시작됐다
  • 칼럼니스트 백운희
  • 승인 2018.03.1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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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키우는 아이] 물고기 구피와 생태교육에 대한 딜레마

아이를 키우는 것은 어쩌면 답을 내기 힘든 문제를 부모와 아이가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이가 태어난 후 부모 나이를 더하게 되는 것처럼 부모가 아이와 함께 자라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 부모 나이로 여덟 살이 됐다.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다. 크게 교훈적이거나 육아지식을 전파하는 글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나고 보니 그때가 가장 좋을 때였다”거나 “힘든 것도 한때”처럼 멀찍이 선 충고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정직한 이야기라고 자신한다.

아이가 학교 방과후 수업 어항만들기 후 데려온 물고기 구피. 우리에게 기쁨과 고민을 안겨준 녀석이다. ⓒ백운희
아이가 학교 방과후 수업 어항만들기 후 데려온 물고기 구피. 우리에게 기쁨과 고민을 안겨준 녀석이다. ⓒ백운희

◇ 물고기 구피가 집에 오면서 생긴 번뇌

그러니까 작년 가을, 물고기 구피가 집에 오면서 번뇌는 시작됐다. 번뇌라고 쓴 것은 고민이나 갈등처럼 괴롭거나 슬픈 일을 표현하는 단어로 설명될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학교 방과 후 수업 중에 어항을 만들었고, 선생님이 완성된 어항에 물고기를 넣어 보내 준 결과였다. 갑작스럽고, 달갑지 않았다. 우리는 물고기에 관한 지식은 물론 애정이나 책임감을 갖고 이를 키울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물론 아이는 기대에 차 있었다. 그동안 꾸준히 반려동물을 기르고 싶다는 바람을 비쳐왔고,  강아지나 고양이, 햄스터처럼 귀여운 외형을 가진 동물을 특히 좋아했다. 그때마다 나는 “보기에는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동물을 기르는 것은 아기를 키우는 일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의 돌봄과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말로 사실상 반대해 왔다. 돌봄에 필요한 책임감과 생명에 대한 존중의식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반려동물을 맞이하는 것은 아이의 정서 형성에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그때까지 나와 남편의 생각이었다.

특히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는 마당이나 축사 등 주거 공간과는 분리된 곳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지니고 살아가는 동물들이 친숙했다. 그러니 도심의 아파트에서 활동성 높은 동물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모습을 보기가 불편했다. 소리를 줄이고, 움직임을 제한한 채 살아야하고, 때때로 이웃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은 사람도, 동물도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라고. 굳이 우리 가족까지 그 흐름에 편승하고 싶지 않았다.

◇ 동물을 대하고, 소비하는 우리의 형태

우리 사회가 동물을 대하고, 소비하는 행태도 이 같은 생각을 부채질했다. 일례로 최근에는 개와 고양이, 토끼처럼 비교적 인간과의 교류가 친숙해진 동물은 물론 너구리, 라쿤, 미어캣 등 희귀 동물을 모아 전시하고, 만지게 하는 애완동물카페가 성행한다. 또한 육아방송에도 등장할 정도로 대형 뱀과 거북이, 새, 물고기까지 다양한 동물을 직접 만질 수 있어 인기가 높은 체험형 동물원까지, 직간접적으로 아이들이 접하는 동물과의 교감은 가히 일방적이고 인간중심적이다.

교육기관의 생명 교육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태어나 17개월 쯤 됐을 무렵 백화점 문화센터를 다녔는데 프로그램 중에 ‘미꾸라지 잡이’가 있었다. 걸음마가 엉성한 아이들 대부분이 처음으로 경험하는 생명교육으로 미꾸라지 잡기를 경험한다는 게 먼저 놀라웠다. 그리고 수업을 마친 뒤 센터에서 미꾸라지를 나눠줄 때는 당혹스러웠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 보이는 미꾸라지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기인 힘들었지만 그러지 않으면 미꾸라지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 아이의 간절히 원하는 눈빛에 2마리를 데려와 어항에서 길렀다. 하지만 어느 날, 외출 후 돌아와 보니 한 마리가 밖으로 튀어 나와 생을 마감한 상태였다. 충격을 받은 우리는 그제야 나머지 한 마리를 근처 하천에 놓아줬다. 생물의 습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애정은 결국 바람직하지 않다는 교훈을 남긴 채로.  

이후로도 아이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주기적으로 방문해 이뤄지는 동물체험 수업에서 도마뱀이나 이구아나, 토끼 등을 직접 만져본 경험을 신나서 이야기했고, 달팽이나 미꾸라지 등을 함께 관찰한 뒤 집에서 키우도록 권장하는 수업이 있을 때면 그래도 되는 지 우리의 의사를 묻곤 했다. 하지만 동물들이 집으로 오는 일은 없었다.

◇ 생명의 위기를 넘기고 다시 살아난 구피

그런데 덜컥 물고기가 생긴 것이다. 정확히는 옐로우 구피, 딸은 ‘옐피’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밥풀과자를 부셔서 먹이로 주고 수돗물을 갈아주며 두어 달은 순조로웠다. 새해 첫 연휴에 이틀 동안 집을 비웠다가 돌아와 어항을 들여다보니 물고기 상태가 이상했다. 떠 올려서 봐도 몸을 옆으로 누인 채 힘없이 늘어진다. 물갈이를 하고, 먹이를 넣어줬다. 그런데도 반쯤 몸이 기울며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결국 딸에게 소식을 알렸고 아이는 어항 앞에서 한참을 서 있더니 “미안해”라며 울음을 터트렸다.

돌아보면 구피에게 미안한 일 뿐이었다. 어종이 구피라는 걸 뒤늦게야 알게 된 것부터 그랬다. 그전에는 평범한 민물고기 치어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수컷 성체였다. ‘어서 키워 집 앞 하천에 풀어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다 자랐다니 난감했다. 어항에 여과기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뒤늦게 배웠다.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작은 어항에서 생명을 이어 온 대견한 녀석이 움직임을 멈췄으니 죄책감이 몰려올 수밖에. 한편으로는 ‘학교에서는 사전에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물고기에 대한 충분한 정보도 없이 무작정 나눠 준거지’라는 원망도 했다.

이튿날, 세상에나 구피가 움직이고 있었다. 먹이도 말끔히 사라졌다. 물이 문제였을까, 배가 고팠던 걸까. 어찌됐든 바닥으로 가라앉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활기차게 수면에서 헤엄 중인 모습을 보니 그 순간에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다.

지금껏 구피를 키우며 느꼈던 부담감과 불편함은 사라졌다. 아이도 자고 나면 바로 물고기 상태부터 확인하고 먹이를 줬다. 먹이를 먹기 위해 뻐끔대는 모습이나 사람이 다가서면 움찔 반응하는 모습도 새롭게 다가왔다. 대형마트의 수족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물고기가 구피지만 우리 집의 구피 ‘옐피’는 하나뿐인 존재이니까.

◇ 우리 집에 온 구피가 알려준 교훈

우리는 구피가 어떤 습성을 지닌 물고기인지 책을 들여다보고 나아가 어디에서 태어나 어떤 경로로 우리 집까지 오게 됐는지도 생각해 보게 됐다. “아이들에게 자연의 이름을 가르쳐줄 것이 아니라 자연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가르쳐야 한다”(레이첼 카슨)는 말은 경험을 통해 이뤄질 수 있음을 실감했다.

반려동물 기르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생각도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지켜보지 않고 상대를 이해하고, 사랑하긴 어려운 노릇 아닐까. 정답은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생명을 사랑하는 방법은 고유의 습성을 알고 이를 존중하기 위해 배우려는 노력에서 시작해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서로를 속박하지 않게 적당히 간격을 유지하며 이뤄져야 함은 정확히 알겠다. 우리 집에 온 구피가 알려준 교훈이다.

*칼럼니스트 백운희는 여전히 육아와 관련한 이야기에는 흔들리는 눈빛과 팔랑거리는 귀를 가지고 초등생 딸을 키우고 있는 전업모입니다. 아이와 함께 부모로 성장하며 겪은 시행착오들을 통해 조금 덜 실망하고 좌절하는 육아 팁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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