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부모의 거울이 아닐 수도 있어요"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 아닐 수도 있어요"
  • 칼럼니스트 최명희
  • 승인 2018.03.1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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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안 되는 아이] 자식농사, 뿌린 대로 거둔다?

Q. 아이가 세 살(25~36개월)이 되니 부모의 양육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둘 간의 관계의 문제인 것 같아요. 부모가 잘해야 아이가 잘 큰다는데 정말 부모의 역할이 아이의 인생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가요? 부모역할에 대한 글을 보면 전적으로 부모의 영향이 가장 큰 것 같아 두렵습니다. 아이의 생활반경이 점점 넓어지는데 나는 어떤 부모여야 할까요?

부모의 양육태도가 자녀의 사회적 태도, 언어의 유창성, 창의적 사고능력 등에 영향을 끼친다는 국내외 연구결과가 많이 있습니다. ⓒ베이비뉴스
부모의 양육태도가 자녀의 사회적 태도, 언어의 유창성, 창의적 사고능력 등에 영향을 끼친다는 국내외 연구결과가 많이 있습니다. ⓒ베이비뉴스

◇ 자식농사

'자식농사'라는 말이 있다. 옛날에는 농사가 온 가족의 생업이고 최대 노동력을 쏟는 일이었다. 해가 솟아서 해가 질 때까지 논밭에서 허리 숙여 땀을 쏟아야하는 고된 일이었고 그 고된 노동의 끝에 끼니를 때울 낟알을 얻을 수 있었다. 아마도 자식을 키우는 일이 농사처럼 고된 정성을 기울여서 되는 일이라고 여긴 것에서 연유된 말일 것이다. 농부가 얼마나 부지런한지에 따라 그 집안의 수확이 다른 것처럼 부모도 또한 얼마나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따라 그 집안 자식이 잘 되는지가 결정된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부모에게 '자식농사'라는 말은 무척 부담이 된다. 부지런한 농부가 될 자신이 있는가. 농부가 농사법을 배워 농사를 짓듯이 부모는 양육방법을 배워서 자식을 잘 키워낼 자신이 있는가. 자식이 어떻게 크는지는 모두 부모의 탓인가. 부모가 자녀에게 끼치는 영향에 관한 많은 국내외 연구 결과만 보면 그게 모두 부모 탓인 것 같다. 부모의 양육태도에 따라 자녀의 사회적 태도, 언어의 유창성, 창의적 사고능력 등에 영향을 끼친다고 결과를 보여준다.

◇ 콩 농사와 자식 농사

농사도 방법과 지혜가 필요하다. 때를 맞춰 씨를 뿌리고 물을 대고 풀을 뽑아야 한다. 콩도 파종시기가 이르면 웃자라서 줄기가 여려 병충해가 들기 쉽고 파종시기를 놓치면 덜 자라서 수확이 적어진다. 물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어서 물이 많은 토양에서는 씨가 움트기도 전에 썩을 수 있으니 수분이 줄어드는 시기에 파종한 후 어느 정도 자란 후 물을 듬뿍 주어야 한다. 자식 키우는 일을 농사에 비유한 것은 자식을 키우는 일도 이와 같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입으로 씹어 먹이고 품에 안아 재워야하는 시기가 있는가 하면 넘어져 무릎이 깨져도 밖으로 내놓아야할 때가 있다는 뜻일 게다. 자식에게 줘하는 때에는 듬뿍 주고, 거둬야 하는 때에는 야멸치게 거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자식 농사법을 배우고 싶어 하는 부모가 많다. 한 알의 콩을 들고 언제 파종할지, 언제 물을 줘야할지를 배우고 싶어 한다. 어떻게 키워야 하는 것인지, 어떤 부모가 잘 하는 것인지를 묻는다. 마치, 농사는 어떻게 짓는 것인가요? 어떤 농부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를 묻는 것과 같다.

◇ 부모 탓만은 아니다

그러나 자식농사는 콩 농사처럼 꼭 뿌린 대로 거두는 것만은 아니다. 사람이라는 것이 콩알처럼 종자만 같으면 똑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콩도 매 한가지 방법은 아니어서 조생콩, 검정콩, 나물콩에 따라 파종시기와 작법이 다르다고는 하나 종자에 따라 알맞은 방법을 배워서 게으름 부리지 않고 꼬박꼬박 일하면 원하는 대로 수확할 수 있다. 콩 농사의 수확은 절대적으로 농부의 능력과 노력에 비례한다.

그러나 자식농사는 꼭 그렇지는 않다. 부모에게 절대적인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애정적이고 민주적이며 사회적으로 성공하였다고 자식이 그대로 부모를 보고 배워 그렇게 자라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똑같이 여러 자식을 키워도 어떤 자식은 애를 태우고 어떤 자식은 부모를 느긋하게 한다. 한 자식에게만 모질게 대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위험한 발언일지 모르나 어쩌면 자식의 어딘가에 어떻게 자랄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에 대한 미리 정해진 내면의 지도가 숨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 아닐 수도 있다

나의 경험으로 봐도 그렇다. 나는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부모교육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지만 부모의 역할에 능숙하지 못하다. 두 명의 아이밖에 키우지 않았는데 완벽하게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두 아이는 나의 양육법에 대한 정체성을 흔들어 놓았다. 도대체 내가 어떤 양육법을 사용했는지 알 수가 없다. 두 아이가 보여주는 생활방식, 사회적 태도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두 아이만 놓고 보면 내가 이중인격이거나 철저하게 편애를 하며 키운 가학적 부모인 것 같다. 큰 아이는 번번이 나와 충돌해서 하면 안 되는 부모-자녀 관계의 유형을 그대로 반복했고 작은 아이는 나를 교과서에 나오는 부모로 만들어 주었다. 큰 아이의 세 살은 매일 맹렬한 전쟁이었고 둘째 아이의 세 살은 잔잔한 풍경화와 같았다. 큰 아이를 키울 때는 아직 미숙했고 둘째 아이를 키울 때는 완전히 유능해져서 그랬다고 보기는 어렵다. 겨우 세 살의 터울이었고 내가 부모로서 무엇을 깨달을 만큼 긴 세월이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부모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아이의 결과를 그대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식이 부모의 거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고, 문제아이 뒤에 문제 부모가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결론을 혼자 내렸다. 물론 극단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한 여러 연구를 반박할 수는 없다. 비록 나의 논문이 부모교육의 효과성에 대한 것이지만 여전히 부모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혼돈스럽다.

◇ 죄책감을 갖지 말자

'그래도 자식농사법의 공통 원칙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요? 그것을 배워서 적용하면 되지 않을까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함정이다. 딸기모종을 심으려는 사람, 옥수수 씨를 받아둔 사람, 가을 무씨를 들고 있는 사람이 모두 한 가지 농사법을 배우려는 것과 같다. 사람은 오묘하기 이를 데 없어서 이 세상 누구도 같은 점이 없다. 그러니 경험 많고 부지런한 농부가 수확물을 거두듯 부모도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을 배워서 열심히 노력하면 자식을 뜻한 바대로 잘 키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농사와 또 다른 점은 한번 밖에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농부는 올해의 농사에서 실패한 것을 내년 농사에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절기를 꼼꼼히 세어서 파종날을 다시 잡고 물길을 돌려 가뭄을 대비해서 작년보다 더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자식은 그 시간을 되돌릴 수가 없다. 지금 돌아보면, 나의 가장 큰 실수는, 내 탓으로 돌려도 할 말이 없는 한 가지는 모든 게 내 탓이라고 여겼던 어리석음이다. 이가 안 맞는 뚜껑을 힘으로 끼워 맞추듯 애쓴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다. 둘 사이에는 애초부터 피할 수 없는 갈등의 시간이 필요한 만남이었을지 모른다. 그것이 부모 탓만은 아닌데 무수한 밤을 죄책감으로 지냈다.

아이는 아이에게 내면의 지도가 있고, 부모 외의 또 다른 무수한 사람과 환경으로 인해 성장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는 것이다. 이제 세 살의 아이는 부모 외의 무수한 만남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이다. 내가 다 해주려고 하지 말고 아이가 만나는 세상을 담담하게 지켜보자. 마음 다쳐오면 어루만져주고, 지고 돌아오면 질 수도 있다고 말해주자. 그렇게 아이와 함께 걸어가자.

*칼럼니스트 최명희는 이화여자대학교 유아교육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30여 년간 유아교육 현장과 보육정책 분야의 다양한 영역에서 일했다. 현재는 신구대학교 아동보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생애초기의 삶을 살아가는 소중한 생명체인 영유아와 그들에게 세상을 만나게 해주는 부모, 교사의 역할에 대해 연구하고 나누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많이 읽히는 저서로 「아이와 통하고 싶다」, 「교사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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