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육아휴직을 쓰게 된 '진짜' 이유
남편이 육아휴직을 쓰게 된 '진짜' 이유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8.03.1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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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남편의 육아휴직 ②

남편이 회사에 육아휴직 사실을 알림으로써 준비 1단계는 끝났다. 준비 2단계는 부모님에게 알리기. 남편이 육아휴직 사실을 알린 그 자리에 나는 없었다. 나중에 물었다.

"어머님이 뭐라셔?"

"별 말 없으시고... 얘들 머리 묶어주는 건 엄마가 더 낫지 않겠느냐고 하시더라."

"으응? 그게 다야?(웃음) 요즘은 자기가 나보다 더 잘 묶는 걸 모르시나 보네. 그래도 다행이다. 혹시 반대하실까 봐 살짝 걱정했거든."

"그러진 않으셨어."

나중에 시부모님과 식사 자리에서 남편의 육아휴직 이야기가 나왔을 때 시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시아버지 : "우리 때는 가장이 쉰다는 건 생각도 못했는데..."

시어머니 : "그때는 뭐 아빠들이 애들한테 신경이나 썼어요. 요즘이야 아이들에게 워낙 신경 쓰는 세상이니까 육아휴직도 한다고 하고... 우리 동생네 사위도 이번에 육아휴직 6개월 쓴다고 하잖아요..."

시아버지 : "그렇지, 우리 때는 돈만 벌었지 뭐."

부모님이 남편의 육아휴직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지 않으신 데는 시이모님 사위의 육아휴직이 큰 역할을 한 듯했다. 또 과거에 두 분이 일만 하느라 남편을 제대로 못 챙겨준 것에 대한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아직 남아있어서인지 육아 휴직하는 남편을 조금 이해하시는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반응은 오히려 친정 식구들이었다.

엄마 : "이서방이 쉰다고? 응? 그럼 월급은 나와?"

나 : "회사에서는 안 나와, 정부에서 주는 육아휴직급여 약간."

엄마 : "그럼 이제 네가 돈을 더 벌어야 하는 거야?"

나 : "더 벌긴... 그냥 줄어드는 거지."

엄마 : "살림 쪼들리겠네. 네가 더 책임감이 커지겠어."

나 : "......"

딸이 종종 거리며 회사에 다니지 않아도 되니 '대환영'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기대에 못 미치는 반응이었다. 오히려 엄마는 몇 달간 생계를 혼자 책임져야 하는 딸이 좀 더 마음이 쓰이는 것 같았다.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선택하지 못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월 수입의 감소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인사상 불이익이다. 베이비뉴스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선택하지 못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월 수입의 감소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인사상 불이익이다. 베이비뉴스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사실 남편의 육아휴직을 생각했을 때 돈 문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해 마시라,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그보다 '육아휴직'이란 시간 자체를 더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돈보다 시간을 선택한 거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육아휴직을 씀으로 해서 우리 가정에 어떤 새로운 일이 생길지, 어떤 즐거움이 생길지, 또 내 삶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 더 좋았다. 아이들이 조금 더 어렸을 때, 그런 것들에 시간을 쓰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내 개인적으로는 한 직장에서 15년 일한 남편에게 잠시 쉬어가는 틈, 매일 하는 일에서 벗어나 딴짓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란 고민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친정 식구들이 돈 문제를 이야기하니 가뜩이나 가벼운 내 귀가 팔랑거렸다. 그제야 3월부터 통장에 꽂히지 않는 돈이 생각났다. 생각보다 많은 액수였다. 그제야 육아휴직이 실감 났다. 가끔은 남편 머리 위로 돈다발이 둥둥 떠있는 착시가 일기도 했다. 이러지 말자. 고개를 '휘휘' 저었다. 남자들이 육아휴직을 하고 싶어도 돈 때문에 못하겠다고 한 말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우리 집만의 일이 아니다. 2014년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 육아휴직자를 대상으로 이뤄진 고용노동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남성 육아휴직 사용이 낮은 이유 두 번째로 '휴직 기간 중에 소득 감소(34%)'를 꼽았다. 1위는 인사상 불이익이었다. 남성 육아휴직을 확대하기 위해 아내의 출산  후 한 달간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제도를 도입하고, 휴직으로 인해 생기는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통상임금의 100%를 지원해 준다는 한 기업이 소식이 반가웠던 건 그 때문이다.

회사가 아니라 국가가 나서야 한다. 물론 정부도 아빠의 달 보너스와 같은 정책을 추진하며 노력하고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남성의 육아휴직은 이런저런 이유로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2016년 7616명에서 2017년엔 1만 2043명으로 늘었다고. 이는 전년 대비 58.1%나 증가한 수치로, 1995년 남성 육아휴직 제도를 실시한 이후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어선 기록이란다. 그러나 '아빠 육아휴직이 당연한 나라'를 만들려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더 많은 부부가, 회사 눈치 보지 않고, 경제적 어려움을 걱정하지 않고 육아할 수 있는 정책들이 계속 나와야 한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 남편은 이런 인사상 불이익과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하고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결심을 굳힌 걸까. 결정적 이유가 뭐였을까 내심 궁금했다. 그와 관련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질 못했는데 우연히 차 한 잔 마시게 된 자리에서 물었다.

"자긴 언제 육아휴직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거야? 처음에는 할까 말까 좀 고민했잖아."

"작년 11월인가, 당신 회사에서 조직 개편했을 때..."

"으응? 나 때문이라고?(정말 놀랐다)"

"응... 아무리 작은 팀이라도 처음으로 팀을 맡았는데 바로 육아휴직 쓴다는 말을 어떻게 하겠어. 그래서 아, 내가 써야겠구나 했지. 그때 확 마음먹었어."

"... 그랬구나."

'아이들'이 아니고 '나' 때문이었다는 말에 토끼눈이 되어 남편을 쳐다봤다. 그만 눈물이 날 뻔했다. 내가 남편과 똑같이 '일하는 사람'이란 걸 인정해주고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한 기분이었다. 내가 엄마라는 역할을 떠나, 일하는 사람이라는 입장에서 좀 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니 반갑고, 놀랍고, 고마웠다. 또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엄마인 나만이 아니라, 아빠인 그도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스스로 깨우치고 행동하는 것 같아 쫌 멋있어 보였다.

3월 2일 드디어 남편의 육아휴직이 시작됐다. 내 삶과 우리 가족은 어떻게 달라질까. 기록으로 남겨야 할 일이 또 생겼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2017년 5월 1일)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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