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한테는 딸이 필요한데..." 아들맘이 듣기 싫은 한마디
"엄마한테는 딸이 필요한데..." 아들맘이 듣기 싫은 한마디
  • 칼럼니스트 한희숙
  • 승인 2018.03.1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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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장, 육아일기 한 줄] 엄마를 괴롭히는 말들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임신 5개월, 배 속 태아가 아들이라는 의사 말에 적잖이 실망했다. 아들인 게 훤히 보인다고 의사가 못 박았던 날에는 골치가 아파 와 병원 옆 약국에서 두통약을 사 먹어야 했다. 그날, 딸이 아들을 임신했다는 소식에 친정엄마는 무척이나 반가워하셨다. 당신은 아들을 낳느라 출산을 네 번이나 했으니 이만한 희소식도 없었을 것이다. 재차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못난 엄마였던 나는 딸에 대한 미련을 임신 막바지까지 떨치지 못했다. 신기한 것은 출산과 동시에 그런 감정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낳고 보니 아들인지 딸인지는 조금도 중요치 않았다. 내 아기라는 게 중요했고 그것만으로 넘치도록 충분했다.

그 후로 지금까지 딸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다. 문제는 주변에서 딸을 종용한다는 건데 우리 애가 여섯 살이 됐음에도 여전하다. 딸 없는 엄마가 그리 걱정되는지 특별히 누구랄 것도 없이 여러 사람들이 마음을 흔든다. “딸이 없어서 어떡하니?” “엄마한테는 딸이 필요한데...” “둘째는 딸 낳으면 되겠다.” 이런 말들이 불편한 이유는 매우 사적인 일에 지독한 관심을 보여서이기도 하지만 딸의 존재 이유를 엉뚱한 데서 찾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좋기 때문에 딸을 낳는다니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더욱이 없는 걸 찾아 헤매면 불행해지는 건데 진실로 우리 가족의 행복을 바라고 하는 말인지도 의심스럽다.

물론 딸은 좋다. 내가 얼마나 딸을 원했는데 왜 모르겠는가. 특히 엄마 입장에서 보면 더욱 좋다. 딸이 좋은 이유를 알고 싶다면 그림책 『딸은 좋다』를 추천한다. 딸이 태어나 성장하고 결혼해 아기를 갖기까지 엄마의 시선에서 딸이 좋은 이유를 조목조목 짚어준다. 70년대 초반 출생한 딸의 성장과정이 당시 느낌을 살린 그림 속에 담겨 있다. 예쁜 옷을 입힐 수 있는 딸, 엄마와 나란히 누워 오이 마사지를 하고 목욕탕에 가서 엄마의 등을 밀어주는 딸,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는 속 깊은 딸. 앙증맞게 옷을 차려 입은 어린 딸의 모습은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딸에 대한 사랑이 담뿍 담긴 그림을 넘기다 보면 딸 가진 엄마들이 세상 부러워진다. 이렇듯 딸은 좋다.

그림책 '딸은 좋다'의 한 페이지. ⓒ한희숙
그림책 '딸은 좋다'의 한 페이지. ⓒ한희숙

엄마와 딸의 애틋한 관계를 담고 있지만 딸이든 아들이든 자식 키우는 엄마 마음은 같아서 아들 엄마인 내게도 특별한 책이다. 엄마가 나를 키울 때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조금이나마 헤아려볼 수 있어 의미가 더 깊다. 다만 우리 세대 딸들이 자랄 때 이야기라 읽다 보면 묘하게 불편한 지점이 있다. “딸은 작은 엄마이다”, “딸은 아버지를 어떻게 즐겁게 하는지 알고 있다”라는 대목에서 그 시절 딸들에게 기대되었던 성역할이 짐작된다. 문제는 시간이 이만치 흘렀음에도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돌보고 간혹 집안일을 챙기며 부모에게 애교 넘치는 딸을 기대하는 시선이 있다는 것이다. 나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림책에서 꼽은 이유와 비슷한 생각으로 딸을 바랐으니까. 내가 그렸던 딸의 모습은 다름 아닌 나, 그리고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딸들이다. 아들 낳으면 기차 타고 딸 낳으면 비행기 탄다는 말로 딸 낳은 엄마를 위로하던 시절에 태어난 딸들. 그리하여 아들보다 살갑게 부모 곁에서 ‘딸 노릇’ 하는 그 딸들 말이다. 부모라는 이유로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두고 멋대로 기대했다가 아들이라니까 우울해했던 것, 아이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다.

그런데 내가 꼭 아들 키우는 엄마라서가 아니라 아들도 좋다. 일단 『딸은 좋다』에서 꼽은 이유 전부 아들에게도 해당된다. 딸을 안고 나가면 사람들이 “엄마 닮아 웃는 것도 예쁘다” 해서 좋다 했지만 아들 엄마도 그런 말을 듣는다. 자랑 같아 우습지만 우리 애가 아기 때 얼마나 예뻤던지 외출하면 한 번씩 여자애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 또 딸은 예쁜 옷을 입힐 수 있어 좋다 했지만 요즘은 성별에 관계없이 아이들 옷 잘 입히는 엄마가 부지기수다. 그리고 아들은 공룡과 자동차같이 엄마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에 눈을 뜨게 해준다. 무엇보다 부모에게 다정하고 살가워서 딸이 좋다면 아들도 그렇게 키우면 된다. 자식이 좋은 방향으로 자랄 수 있게끔 안내하는 게 부모가 할 일이니까.

아이는 엄마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에 눈을 뜨게 해준다. ⓒ한희숙
아이는 엄마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에 눈을 뜨게 해준다. ⓒ한희숙

 더 나아가 딸이든 아들이든 부모 입장에서 좋고 나쁘고를 따지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닌가 싶다. 자식은 부모에게 예속된 존재가 아니잖은가. “너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너는 바로 너라는 거야.” 아동작가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은 그림책 『중요한 사실』을 통해 비, 눈, 사과, 바람 등 세상 만물의 근본적인 속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이르러 너는 너로서 충분하다며 한 사람의 존재 가치를 힘주어 강조한다. 부모에게 필요한지를 따져 자식의 성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딸이든 아들이든 존재만으로 부모에게 큰 기쁨을 줬는데 더 바라는 건 욕심이다. 그러니 부디 “딸이 없어서 어떡하니?” 혹은 “집안에 아들은 있어야지” 같은 말로 엄마들을 괴롭히지 말았으면 좋겠다. 있는 것에 집중하겠다는 게 내 선택이니 존중해주길, 지금 우리는 행복하다.

*칼럼니스트 한희숙은 좋은 그림책을 아이가 알아봐 주지 못할 때 발을 동동 구르는 아기엄마이다. 수년간 편집자로 남의 글만 만지다가 운 좋게 자기 글을 쓰게 된 아기엄마이기도 하다. 되짚어 육아일기 쓰기 딱 좋은 나이, 여섯 살 장난꾸러기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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