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나라', '촛불지폐'... 아이들 기억 속의 촛불집회는?
'돼지나라', '촛불지폐'... 아이들 기억 속의 촛불집회는?
  • 김재희 기자
  • 승인 2018.03.16 18:2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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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촛불집회 다룬 그림책 ‘촛불을 들었어’ 유현미 작가

【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지난해 3월, 여러분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2016년 10월 29일 ‘박근혜 정부 퇴진’을 외치며 첫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5만 명으로 시작한 집회는 누적 참여인원 10만 명을 넘겼고, 이듬해인 2017년 3월 10일 대법원의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이끌어 냈습니다. 집회를 주최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은 지난해 5월 해산선언을 하면서 23차 집회(2017년 4월 29일)까지 총 1684만 8000명이 참석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12월에 나온 그림책 ‘촛불을 들었어’는 광화문을 비롯해 전국을 밝히던 그 겨울 촛불들의 표정을 기록했습니다. 이 책을 쓰고 그린 유현미 작가는 그동안 진행하던 작업도 미루고 “2017년이 끝나기 전에 촛불집회를 기록해둬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며 그림책을 만든 이유를 말했습니다. 

탄핵 1주년을 앞두고 베이비뉴스는 유 작가와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난해 3월, 탄핵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촛불로 수놓았던 광장의 기억 속으로 독자 여러분들을 안내합니다. 아이와 함께 ‘촛불을 들었어’를 펼쳐본다면 더 좋을 듯합니다.

유현미 작가가 자신의 책 '촛불을 들었어'를 소중하게 들어보였다. 사진 속 횃불 그림은 유 작가가 공들였다고 말한 장면 중 하나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유현미 작가가 자신의 책 '촛불을 들었어'를 소중하게 들어보였다. 사진 속 횃불 그림은 유 작가가 공들였다고 말한 장면 중 하나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촛불의 중심에는 세월호가 있어요”

촛불집회는 1700만 명이 함께 한 건데, 이 그림책은 그 1700만 분의 1쯤 될까요. 집회 이후에 탄핵도 마무리되고, 일상생활로 돌아오면서 연대하는 활동을 하고 싶었어요. 느낌이 남아있을 때 촛불집회 기록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지요. 그래서 작년 7월부터 10월까지 몰입해서 작업했어요. 집회 현장에서 드로잉을 그때그때 그려놓긴 했지만, 손도 시리고 본격적으로 그림책을 생각하고 그리지는 않았거든요. 현장에서 모은 자료들과 손팻말, 사진들을 다시 봤어요. 인터넷이나 책 자료도 참고했고요. 

그림책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세월호가 나와요. 촛불이 활화산처럼 타올랐던 그 뜨거운 역사의 중심에 세월호 유가족 엄마 아빠들이 계시다고 생각해요. 세월호가 있어서 시민들의 기운이 모일 수 있었고, 그런 흐름이 이어져서 JTBC 태블릿 PC 보도도 나올 수 있었다고 봅니다. 세월호 작업을 계속하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제대로 하는 것일지... 고민이 많아요. 

◇ 학생부터 세월호 유가족까지…집회에서 하나된 촛불시민들

집회에서 중고생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촛불집회 초반에 갔을 때 어디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서 봤더니 이 친구들인 거예요. 자기들끼리 집회를 하는데 너무 예쁜 거예요. 현장에서 들었던 ‘박근혜는 하야하라’ 그 카랑카랑한 소리를 잊을 수 없어요. 그건 그 아이들만 낼 수 있는 소리예요. 

시골에 사시는 우리 아버지도 서울에 올라오셨을 때 집회에 참가하고 싶어하셨어요. 연세가 구순이시다 보니 다리가 아파서 행진은 같이 못 하고, 날씨가 추워서 휠체어로도 모시기가 어려웠어요. “아버지는 집에 계시죠” 말씀드리고 저는 집회에 나갈 손팻말을 그렸는데, 아버지께 붓글씨로 글귀를 써달라고 하니까 무척 좋아하셨어요. 그 장면도 책에 들어 있어요. 

세월호 때 희생된 단원고 학생의 부모님 중에 아는 분이 계셔요. 청와대 100m 앞에 유가족이 앉아 있는 장면 그릴 때 그분 생각이 많이 났어요. 그날 저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날 밤에 그분이 SNS에 글을 올리셨어요. “청와대 100m 앞까지 드디어 왔다. 여기서 더 나아갈 수 있게 되길 바란다”라고요.

청와대 앞에 선 유가족을 묘사했다. 유 작가는 유가족과의 통화에서 먹먹해 말을 할 수 없는 시간이 있었다고 말했다. ⓒ보리출판사
청와대 앞에 선 유가족을 묘사했다. 유 작가는 유가족과의 통화에서 먹먹해 말을 할 수 없는 시간이 있었다고 말했다. ⓒ보리출판사

이번에 책이 나오고 그분께 보내드렸어요. 조용하신 분인데 전화를 주셔서 ‘책 잘 받았다. 어떻게 이렇게 직접 그리셨느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분께 “선생님이 올린 글이 생각나서 더 열심히 그렸다”고 그때 얘기를 했어요. 말하고 나니까 마음이 먹먹해져서 둘이 전화기를 붙들고 아무 말 없이 한참 있던 게 생각나요.

◇ 촛불 속에서는 아이도 할아버지도 모두가 ‘올해의 인물’

2017년 12월 6일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촛불을 들었어’가 소개됐습니다.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실린 제 글을 보고 JTBC 작가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촛불시민의 ‘에버트 인권상’ 수상과 연결 지어 쓰겠다고요. 

짜릿했지요. 제 작업이 화면에 나와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들었던 촛불이 화면 가득 실리니까 다시 그 현장의 벅찬 느낌이 되살아나서요. 사람들이 앵커브리핑 보고 인터넷 서점사이트에 검색했을 때 책이 아직 안 올라왔을 때였어요. 애석하게도요. (웃음)

지난해 12월 6일 JTBC '뉴스룸'에서 유현미 작가의 '촛불을 들었어'를 인용했다. ⓒJTBC '뉴스룸' 화면 갈무리
지난해 12월 6일 JTBC '뉴스룸'에서 유현미 작가의 '촛불을 들었어'를 인용했다. ⓒJTBC '뉴스룸' 화면 갈무리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제 책을 ‘숨은그림찾기’라고 했대요. ‘여기 나도 있네. 내 친구도 있어. 그때 집회 나가서 엄마랑 나랑 아빠랑 우리 어묵 먹었잖아’하면서 이렇게 얘기했대요. 

촛불집회에 대한 기록은 앞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더 풍성하게 나오겠지요. 이 책은 그림책 형식에 담아낸 저만의 촛불집회 기록이에요. 책을 넘기면서 어느 한 장면에서든 저마다 함께했던 기억을 나눌 수 있다면 좋겠어요. 내 얼굴과 똑같지는 않지만 ‘어, 나 이렇게 했는데’, ‘우리 할아버지 여기 있었는데’, 혹은 ‘아, 그때 이렇게 촛불 든 사람이 있었지’라며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겠지요. 

엄마아빠를 따라 간 아이들이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구호를 ‘박그네는 돼지나라’로, ‘새누리도 공범이다’는 ‘새누리도 곰돌이다’라고 쓴대요. 저희들 귀에 들리는 대로! 귀엽지요? 아이들한테는 집회에서 함께 소리치는 것 자체가 재미난 놀이인 거예요. 아이들에게도 ‘누가 나쁜 사람이고 그래서 세상을 이렇게 바꿔야 한다’ 이게 아니라, “그때 네가 일기에 ‘박그네는 돼지나라’라고 썼지?”라고 하면서 즐겁게 그날의 이야기를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유 작가 조카가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 그림일기를 재현한 그림. ⓒ보리출판사
유 작가 조카가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 그림일기를 재현한 그림. ⓒ보리출판사

아이들 이야기를 담고 싶어서 조카들이 유치원 때 쓴 일기장을 빌렸어요. 그런데 거기에도 촛불집회가 나오는 거예요.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다녀와서 그렸던 거지요. 깜짝 놀랐어요. “어머나, 네가 먼저 들었구나, 나도 들었지만!”하면서 웃었어요. 아이들은 촛불집회를 '촛불지폐'라고 써요. (웃음)

2016년 10월 29일에 촛불집회가 시작됐다고 하잖아요. 그때 시작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래 지속되어 온 흐름이 있었던 거지요. 그게 폭발한 거예요. 우리가 살아있는, 깨어있는 시민들이기에 이렇게 폭발하는 게 맞죠. 지금 생각해도 잘 믿기지 않아요. 그렇게 추운데, 그렇게 오랫동안 그 많은 사람이 한결같이 어떻게 그렇게 함께할 수 있었을까요?

◇ ‘촛불은 나에게 좋다’…설레고 신비했던 6개월

촛불집회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어떤 멋있는 게 아녜요. 발 시려웠던 거! 따로따로 있다가도 집회가 끝나면 친구들과 한데 모여 뒷풀이를 하는데, 만나서 서로 손발을 주물러 주는 거예요. 한 시간쯤 지나야 언 발이 녹고 그랬어요. 그랬는데도 너무 행복했어요. 

촛불을 정의하면, ‘촛불은 나에게 좋다’. (웃음) 처음엔 분노로 시작했을지 몰라도 자기도 모르게 비폭력으로 무장된, 아기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나와 똑같은 시민들이 모아주는 기운 때문에 가슴이 설렜어요. 집회에 나갈 때마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기분이었어요. 설레서 기다려지고요. 

2016년 11월 19일 박근혜 대통령 하야·탄핵 요구 집회 4차 현장 당시 모습. 이기태 기자 ⓒ베이비뉴스
2016년 11월 19일 박근혜 대통령 하야·탄핵 요구 집회 4차 현장 당시 모습. 이기태 기자 ⓒ베이비뉴스

흥겨웠어요. 어두워서 얼굴도 잘 안 보이는데, 그 얼굴들 반짝반짝 빛났을 거예요. 어둠 속에 촛불이 반짝이며 일렁일 때는 어떤 숭고함도 밀려들고요. ‘우리가 모여서 만들어내는구나. 이것이 혁명 아닐까’ 생각했어요. 살면서 이런 경험 또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 집회에 함께할 때마다 매번 새로웠어요. 

전철 타고 광화문역 도착할 때쯤 보면 다 집회에 오는 사람인 거예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요. 서로 눈빛을 보고 웃는 거예요. 지금도 그 눈빛이 생생해요. 촛불을 함께하며 신비로운 체험을 했어요. 나도 모르게 나보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으로 바뀌더라고요. ‘내 속에서 이타심이 이렇게 샘솟을 수가 있나?’ 하면서 깜짝 놀랐어요. ‘내가 이렇게 바뀔 수 있구나. 앞으로도 연대하면서 변화를 찾아가야겠다’는 깨달음을 준 그런 촛불이기도 했지요. 

모두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나던 그날의 기억을 유 작가는 '촛불을 들었어'에 꼼꼼하게 담아냈다. ⓒ보리출판사
모두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나던 그날의 기억을 유 작가는 '촛불을 들었어'에 꼼꼼하게 담아냈다. ⓒ보리출판사

그림책 말미에 주인공과 세월호 아이들이 만나 손을 잡고 둥근 원을 만들어요. 진실과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과 연대를 뜻할 수 있지요. 그 의지와 실천이 큰 물결로 이어져 세월호를 어두운 바닷속에서 끌어올립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인양된 세월호는 목포신항을 향해 항해하지요. 제목을 ‘촛불을 들었어’로 정한 건, 촛불은 마침표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이 항해는 지속해야 해요. 이제 진짜 시작이에요. 세월호는 마땅히 진실을 규명해야 하고, 우리는 저마다 있는 곳에서 ‘으쌰으쌰’ 해야 하고요.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항해가 이제야 시작됐어요. 지난 겨울 촛불 승리의 기억은 너무나 너무나 소중합니다. 촛불 집회는 끝났지만 언제라도 촛불로 다시 만날 수 있어요. 그 마음을 삶 속에서 이어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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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 2018-03-19 16:57:41
아이들에게 행복한 세상이 되길 바래요~!

kingka**** 2018-03-18 12:22:11
퇴진하라를 돼지나라로, 촛불집회를 촛불지폐로 알아들었던 점이 인상적이네요. 아이들의 시각에서 다시 한국사회를 돌아보는 시간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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