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하는 엄마가 되고 나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얼마 전 아침, 여섯살 아들이 겨자색 스웨터를 가져와 내게 내밀며 말했다. "엄마. 할머니가 준 이 옷 입어 오늘. 정치 엄마할 땐 이게 예뻐." 공동육아 등원 직후 인터뷰 약속이 있단 말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익숙하게 후줄한 티셔츠를 꺼내 입으려던 나를 붙잡더니 아이가 건넨 말. (결국 두 아이 등원 시키다 정신줄만 겨우 붙들고 나왔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야 겨자색 옷을 아까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왔단 사실을 자각했다.)
◇ 우리 가족 모두의 삶을 도미노로 바꾼 선언 : 나는 정치하는 엄마다
나의 정치하는 엄마 선언은 나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의 삶을 도미노로 바꿔왔다. 나의 활동은 내 노동과 역할을 대체할 누군가를 필요로 했고 남편이, 공동육아를 함께하는 다른 엄마들이, 친한 이모 삼촌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기꺼이 때론 어쩔 수 없이 그 몫을 나눠 졌다. 어떤 날은 왕복 7시간 거리에 사시는 친정 부모님이 당일치기로 서울에 다녀가셨다. 토론회에 참석한 나를 대신 해 남편이 두 아이를 돌보고 있던 중이었다. 갑자기 바빠진 딸을 대신해 퇴근 후며 주말 할 것 없이 고생하는 사위가 짠하고, 토론회 마치자마자 돌아와 밀린 집안일과 육아에 다시 치일 딸이 걱정된 두 분이 급히 상경하신 것. 우렁각시 마냥 장보고 요리하고 청소하고 아이들과 놀아주신 후 쿨하게 인사하시고선 세시간 반도 넘는 거리를 다시 운전해 가셨다.
◇ 아픈 손가락이 되어 버린 나
그 날 엄마가 차려 준 밥을 먹는데 누구에게도 말은 안했지만 밥알이 잘 안 씹혔다. 엄마는 밥이 아니라고. 엄마에게도 자기 삶이 필요하다고 외치러 나가는 딸의 밥을 해주려 한걸음에 와 준 엄마. 그 밥이 은근히 반가운 내 속내가 싫었다. 엄마는 그렇게라도 밥해주고 갈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아까운 내 딸이 이제라도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자기 이름으로 불리는게 좋은 엄마 아빠가 자주 내 소식을 묻는다. 아빠 엄마와는 SNS 친구를 맺지 않는데 어느 날 친정 아빠가 내 SNS에 올라온 글에 대해 물어오셨다. 알고 보니 단체 홈페이지에 해당 글의 링크가 걸려 있었다. 그제서야 알았다. 나도 잘 못 챙겨보는 홈페이지를 아빠가 챙겨 보고 계셨구나.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엔 외벌이 딸네 부부에 대한 걱정과 '워킹맘'도 아닌 딸의 활동을 보조해야하는(그래야만 딸이 뭐라도 할 수 있는) 사위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가득한, 나의 친정 부모님. 그리고 수시로 모색하신다, 어떻게든 딸네 부부 옆에 가 살 수 있을 방도를. 급할 때 잠시라도 가서 애들 봐주고 집안일도 도와 줄 방법이 없을지 말이다. 그렇다고 생활 터전을 떠나올 수도 없는 일. 당장 올라와서 먹고 살 것도 살 집도 걱정이다. 그래서 하신다는 말씀이. "너희 여기 근처에서 직장 잡고 살긴 어렵겠지?"
나는 그 말의 뜻을 안다. 아끼며 키운 딸, 어떤 남자에 뒤지지 않았던 딸이 가정과 애들을 등지지 않고 사회적 이름을 유지하려면 친정 엄마 아빠가 도와주는 수밖에 없으니 하시는 말씀이란 걸. 그 책임에 대한 부담이 묻어나는 말, 지금 상황에선 그 말이 최선일 수밖에 없단 것도 안다. 그래서 내뱉는 친정 부모님의 한숨 같은 말씀을 마주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 육아(育兒)’는 진정 ‘육아(育我)’일 수 있을까?
엄마들이 처한 현실을 얘기하면 "아빠들은 나가 노는 줄 아냐. 좋아서 일하는 줄 아냐"란 비아냥이 돌아온다. 변화의 필요성을 얘기하면 "지들이 제일 힘든 줄 안다며. 부족함 없이 자란 세대가 엄마가 돼 모성과 희생정신이 부족하다"고도 한다.
오독의 바탕엔 엄마들에 대한 공고한 편견과 혐오가 자리한다. 엄마의 자아실현은 모성과 반비례 관계라는 편견.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에 대한 거부감과 된장녀 아줌마 맘충 등으로 이어지는 여성 혐오에 이르기까지. 나는 한 번도 엄마들이 가장 힘들다거나 육아가 지옥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많이들 그런 전제를 바탕으로 내 이야기를 듣는다.
나는 누구보다 육아가 주는 환희를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한다. 그래서 변화를 외친다, ‘육아가 주는 경이로움, 고됨 뒤에 숨겨진 신비로운 힘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누구보다 바라기 때문에. 육아에서 가정에서 소외된 아빠들에게도 동참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육아가 선사하는 신세계는 형용불가한 수준이다. 아이의 성장이 해묵은 내 삶을 새롭게 해주는 순간들엔, '아!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한게 아니라 부모에게 아이가 필요하구나'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 유년 시절이 새롭게 재조명 된 순간들도 많았다. 때론 그래서 괴로웠고 그렇기 때문에 안도했다. ‘엄마라서 다행이야.’하고 말이다. 아이를 껴안으며 어린 시절의 상처받은 나 자신을 껴안았던 경험, 그 경험들에 대해서도 나누고 싶다. 그런데 어렵다. 나에게 육아가 고되면서도 기쁨일 수 있었던 건, 육아를 함께 할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인 걸 알기에. 오랫동안 어린이집 교사로 운영자로 지내 온 한 언니가 "육아가 즐거울 수 있는 엄마들은, 되돌아갈 자리가 있거나 마을 공동체에 속한 이들이었다"고 말하는 순간 내 마음에 자리한 부채감과 부담이 무엇이었는지가 명료해졌다. 그렇다. 되돌아갈 자리도 마을도 없는 이들에게 내 글이 또 다른 상실감을 주진 않을까 두려웠던 것. 정치하는 엄마 선언 이후, 그래서 개인적인 육아일기를 공유하는게 주저됐다. 글도 잘 써지지 않았다. 여전한 한계와 모순 한 가운데서 튀어나오는 내 환호와 고뇌가 어딘가에서 오독될까 두려웠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육아(育兒)’가 ‘육아(育我)’일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매일을 고군분투한다. 두 아이를 키우는 전업모로, 품앗이 공동육아의 교사이자 운영위원으로, 정치하는 엄마로, 또 엄마가 아닌 86년생 조성실로. 칼럼 연재물인 [엄마의 이중생활]은 그러한 일상 속에서 겪는 모순과 고충,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희망과 믿음에 관한 성장일기다. 이어질 글들을 통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또 다른 엄마들과 만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칼럼니스트 조성실은, ‘육아(育兒)가 육아(育我)’인 사회를 꿈꾸는 전업활동가다.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이 엄마가 된 일이라고 믿는 필자는, 아이 키우는 일의 중요성과 기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한다. 그렇기에 엄마 개인을 소진해야만 아이를 길러낼 수 있는 대한민국의 실상을 바꿔야 한다고 믿는다. 때론 엄마라서 벅차고, 때론 엄마라서 보람찬 양가 감정들. 이 모든 경험과 문제의식을 나누고 싶어 글을 쓴다.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 하나마을 공동육아 교사 및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여섯 살 세 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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