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를 만났다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를 만났다
  • 칼럼니스트 신은률
  • 승인 2018.03.2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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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의 일곱살 인생] 내가 쌓은 덕이 언젠가 연이를 위해 쓰여지기를

“그때 생각하믄 여적 등골이 서늘하데이.”

친정 식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한참 수다를 떨다 엄마는 또 그 얘기를 꺼낸다. 새로 이사 간 동네에서 나를 잃어버렸던 이야기. 연이보다 어렸을 때라고 하니 기억이 날 리 없다. 엄마는 나를 찾으려고 길도 잘 모르는 동네를 무작정 헤맸다고 한다. 그러다 경찰서 지구대를 발견하고 도움을 청했는데 발을 동동 구르는 엄마와는 달리 누군가 심드렁하게, 돌아다니다 보면 찾을 수 있겠지요, 했단다. 따질 정신도 없이 돌쟁이 동생을 업고 지구대를 급히 나오면서 엄마는 등골이 서늘하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그때 정확히 알았다고 했다. 경찰의 조언(?)대로, 동네를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다행히도 내가 있었단다. 나는 연이를 잃어버리는 상상만으로도 이내 눈시울이 붉어지고 마는데 그 낯선 골목을 헤매며 엄마는 어떤 시간을 견뎠을지.

지난해 늦가을, 두 아이를 바투 키운 후로 얻은 허리 디스크 때문에 하루가 멀다 하고 집 근처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때였다. 그날도 물리치료를 받고 연이 유치원 하원 시각에 맞춰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연이만 한 여자아이가 눈에 띄었다. 아이는 어디로도 가지 못 하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 엄마를 잃어버렸니?”

조심스레 다가가 물었다. 터지려는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 엄마 전화번호를 알면 일이 쉬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의 몸 어디에도 부모의 연락처는 없었고, 아이는 누구의 전화번호를 알기에는 아직 어렸다. 순간 주변이 낯설어지면서 망망대해가 펼쳐지는 기분이었다. 엄마라는 안전하고 따뜻한 육지를 꼭 찾아야만 한다. 잠시 당황했지만 그런 기색은 어른스럽게 숨기고 아이가 어디 사는지를 물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대개 5살 때부터 버스를 타고 유치원에 다닌다. 매일 그렇게 다니다 보면 본인이 사는 어려운 아파트 이름은 물론, 친구들이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를 신기하게도 다 꿰었다. “○○○이요...” 아이의 울먹거리는 대답에서 등대를 찾은 듯 했다. 몇 동 몇 호까지는 아이가 모른다고 하니 경비실이라도 가보자. 경비 아저씨가 아이를 알까, 방송을 해야 할까. 아이를 안심시키며 아파트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동안 머릿속이 여러 생각들로 덜그럭거렸다.

“언니~~ 어디 가써써~~~”

맞은 편 저 멀리에서 동생처럼 보이는 여자아이가 소리를 지른다. 언니는 줄곧 울 것 같은 얼굴이었는데 동생은 천진하기만 하다. 엄마보다 앞서 뛰어오는 걸 보면 어른이 느끼는 것처럼 당황이니, 황망이니 그런 감정인지는 몰라도, 그저 언니는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동생을 보자 내 손을 나침반처럼 잡고 있던 아이가 스르르 손을 빼더니 인사도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간다. 음표가 달린 듯 머리카락이 경쾌하게 흔들리며 아이는 폴짝, 단조에서 장조로 넘어간다.

어느 때보다 길고 힘든 시간을 보냈을 아이 엄마와 인사를 하고 돌아서며 분명 해피엔딩인데 찔끔 눈물이 났다. 온갖 나쁜 상상들로 가득한 ‘만약에 회로’는 이럴 때마다 연이를 자동 소환하는 까닭이다. 만약에 내가 없는 곳에서, 길이든 유치원이든 그 어디에서 우리 연이에게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면, 누군가 꼬옥 나타나주기를. 옛 어른들 말씀처럼 오늘 내가 덕을 쌓은 것이기를. 그것이 언젠가 연이를 위해 쓰여지기를.

결혼 전에는 어디서든 아이들이 잠시 시끄럽기만 해도 눈살을 찌푸리곤 했다. 아이를 낳고서는 그때의 까칠했던 나를 두고 종종 반성문을 쓴다. 그러지 않고선 연이 곁을 스쳐가는 이들이 연이에게 따뜻하기를 바랄 수 없을 테니까. 연이와 함께하면서 다른 아이들에게 친절해지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아이를 낳아야 철이 든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설핏 알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연이를 늘 걱정하고, 연이는 나를 매번 순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엄마라는 이름들은 그렇게 순해지자고 오래전부터 약속했는지도 모른다.

아이 손은 별 손. 손을 왜 별모양으로 그렸는지 궁금해하자 "손이 반짝반짝거리면 어디서든 엄마가 잘 볼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대답하는 연이. ⓒ신은률
아이 손은 별 손. 손을 왜 별모양으로 그렸는지 궁금해하자 "손이 반짝반짝거리면 어디서든 엄마가 잘 볼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대답하는 연이. ⓒ신은률

“연아, 엄마 전화번호 기억해?”

오랜만에 연이에게 묻는다. 공일공 사하나칠... 엄마가 가르쳐준 그대로 술술이다. 아빠 이름은? 아빠 전화번호는? 우리가 사는 곳은? 모르는 사람이 사탕을 주면? 정답을 아는 이의 여유를 부리며 연이는 엄마의 별의별 질문에 척척 답을 한다. 일곱 살 연이는 그렇게 엄마를 안심시키고는 더는 귀찮다는 듯 말을 우물거린다. 그래, 여기까지만 하자. 연이도 제 자식을 낳고서야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아이가 자신을 얼마나 바꾸어놓는지. 연이와 동갑내기 아이를 키우는 웹툰 작가 ‘난다’는 '거의 정반대의 행복'이라는 육아에세이에서 “자식이 생긴다는 건 끝없는 걱정과 두려움의 저주 속에 갇히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그 마음을 헤아리며, 나는 오래도록 연이가 있는 풍경을 바라본다.

*칼럼니스트 신은률은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일반대학원에서 정치학을 배웠다. 일 년에 절반은 독박육아를 해야 하는, 드라마PD의 아내로 살고 있다. '아이들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믿으며 7살, 5살 남매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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