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정가영 기자】
예고 없이 둘째가 태어났다. 첫째 다 키웠다며 이제 좀 살겠다 싶었는데, 다시 신생아 육아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다니, 또 다시 잠과의 전쟁을 치러야 하다니! 한번 해본 육아라 수월할 거란 위로가 와닿지 않았다. 아는 것이 더 무섭다고 하지 않던가. 막연한 두려움이 나를 덮쳤다.
무엇보다 동생을 맞을 첫째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첫째가 사랑을 뺏겼다고 생각할 것만 같았다. “어차피 둘째는 어려서 몰라. 모든 건 첫째 위주로 하자.” 우리 부부는 약속했다. 첫째가 엄마, 아빠의 사랑이 예전과 다름없다고 느낀다면 동생을 미워하고 질투할 이유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첫째가 동생을 만나는 첫날, 많은 신경을 썼다. 집에 들어갈 때 절대 엄마나 아빠가 동생을 안고 들어가지 않기, 동생이 사온 선물이라며 첫째가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함께 들고 가기, 둘째를 돌볼 때는 꼭 첫째에게 물어보기. 할머니가 둘째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고 엄마, 아빠는 동생이 사온 선물이라며 첫째에게 트럭 장난감을 안겨줬다. 엄마, 아빠의 작전이 통한 걸까? 첫째는 선물을 받은 기쁨 때문인지 동생을 꽤 반겨줬다. 가만히 만져보고 안아주며 신기해했다.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잠에서 깬 첫째는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며 동생에게 뽀뽀를 하러 달려갔다. 대견스러웠다. ‘벌써 첫째 티를 내는 거야?!’ 우린 그런 아이에게 화답이라도 해주듯 무조건 ‘첫째 사랑’을 실천해가기로 했다. 둘이 동시에 울면 첫째부터 챙겼고 둘째 젖을 먹이다가도 첫째의 부름에 쏜살같이 달려갔다.
누가 그랬다. 육아는 예측할 수 없어야 육아라고. 하루가 빠르게 성장하는 둘째를 보며 첫째도 태도를 달리하기 시작했다. 둘째가 울면 첫째도 울었다. 둘째를 안아줘야 할 상황에 첫째도 안아달라고 떼를 썼다. ‘내것병’도 생겼다. 동생 이유식도 내 것, 바운서도 내 것, 쪽쪽이도 내 것, 엄마, 아빠는 물론 내 것. 그뿐이랴. 엄마가 잠깐 한눈팔 때를 노려 동생을 괴롭혔다. 찰싹 소리가 날 정도로 동생 뺨을 때리는 건 기본, 두 발을 잡아 질질 끌고 다녔다. 어느 순간 보면 동생 머리 위에 앉아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첫째를 달래던 내게도 한계가 왔다. 둘째를 보호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커지면서 내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 처음엔 “사람은 때리면 안 돼요. 동생도, 친구도, 엄마도 때리면 안 돼요”로 타일렀다가 “너!!!” “그러면 안 된다고 했지???” “엄마 화난다!!!” “혼나볼래???”로 끝났다.
한 시간 넘게 떼만 쓰는 아이를 보자, 겨우 잡고 있던 감정선이 무너져 내렸다. 아이를 앞에 두고 동물이 포효하듯 소리치며 울었다. 아이는 놀란 듯 엄마 품에 매달려 같이 울었다. 엄마의 밑바닥을 아이에게 보여준 것만 같아 자는 아이 옆에서 또 울어야 했다. ‘엄마는 너부터 챙겨주려고 노력하는데 얼마만큼 더 노력해야 하는 거니.’ 자괴감에 죄책감에 모든 감정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지나가는 과정이라지만 아이 둘은 정말 감당이 안 됐다. (쌍둥이, 애 셋 이상 키우는 분들, 정말 정말 존경스럽다.)
문득 옛 어른들 말씀이 떠올랐다. 동생을 본 첫째가 느끼는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남편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집에 왔을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말이다. ‘내 남편이 다른 여자를 내 집에 데려온다?’ 생각만 해도 속에서 천 불이 나고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다 뒤집어버리고 싶은 마음도 들 것이고 어떤 해코지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백 번 천 번 들었다. 사랑받기 위해 갖은 애를 쓸 것이다. 나만 바라보라고 떼를 쓰며 애원할지도 모른다. 이 마음을, 우리 아이가 지금 겪고 있었다는 얘기다.
엄마, 아빠가 아무리 첫째 위주로 하기 위해 노력해도 동생이 없을 때와 같진 않다. 첫째에게 동생은 존재 자체만으로 자신을 위협했을지 모른다. 동생보다 겨우 24개월 더 살았다고 오빠 노릇하라고 하지, 어른들은 가만히 누워서 생글생글 웃는 동생만 예쁘다고 좋아하지, “미운 네 살”이라며 말 안 듣는단 소리나 들리고···. “엄마!” 소리 한 번이면 달려오던 엄마가 동생 젖 먹이느라, 기저귀 갈아주느라 몇 번 씩 불러도 오지 않았으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첫째에게도 동생을 맞이할 많은 시간과 연습이 필요했을 텐데, 그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한 것만 같다.
사실 둘째로 자란 이 엄마는 첫째가 느끼는 마음을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이제 고작 31개월인 아이에게 ‘첫째’, ‘오빠’라는 책임을 주고 많은 것을 바란 건 아니었을까 싶다. 여전히 아기이고 엄마, 아빠에겐 더더욱 아기이고 싶었을 아이. 오늘은 첫째 ‘아기’를 더욱 꼭 안아줘야겠다.
*정가영은 베이비뉴스 기자로 아들, 딸 두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엄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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