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생각하는 ‘최고의 교육’이란?
엄마가 생각하는 ‘최고의 교육’이란?
  • 칼럼니스트 신은률
  • 승인 2018.04.1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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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의 일곱살 인생] 아이의 질문을 반갑게 대하자

“배꼽이 보이는 거스은 밸리, 배꼽이 안 보이는 거스은 내복, 한 쪽 팔만 춥게 보이는 거어슨 옛날 사~람.”

연이가 피아노를 뚱뚜둥 치며 노래를 지어 부른다. 문화센터에서 막 밸리를 배우고 온 참이다. 속에 입던 하얀 티셔츠를 벗고 처음으로 배꼽이 훤히 나오게 옷을 입었는데 그게 연이에게 특별한 일이었던 모양이다. 노랫말이 궁금해서, 왜 옛날 사람이 한 쪽 팔만 춥게 보이냐고 물어보니, 입고 있던 내복에서 연이가 한 팔을 쭉 빼며 ‘우우’ 소리를 낸다. 연이 눈에는 원시인의 한 쪽 팔이 추워보였나 보다. 그 의식의 흐름을 알 것 같아 풋, 웃음이 난다. 오늘도 연이는 엄마 얼굴에 한 송이 ‘미소꽃’을 피운다. 아무 가락에 아무 노랫말을 얹어 노래하는 연이를 흐뭇하게 보는 것도 잠시, 나는 그만 후다닥 시간을 달린다. ‘아~ 우리 연이가 작곡가가 돼도 좋겠다’ 엄마의 상상 속에서 미래의 연이는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무용수도 됐다가 작곡가도 됐다가, 수시로 옷을 갈아입는다.

밸리옷을 입은 연이. 자화상. ⓒ신은률
밸리옷을 입은 연이. 자화상. ⓒ신은률

◇ 키울까 VS 자랄까

내년이면 연이는 초등학생이 된다. 몇 달 뒤를 떠올리면 ‘설렘 반 걱정 반’이라는 말이 내 마음 한가운데를 정확히 건드린다. 책가방 메고 뛰어가는 연이를 그려보며 드디어 학부모가 된다는 설렘도 있고, 본격적으로 뭔지 모를 ‘케어’를 시작해야 할 것 같아 걱정이 생기기도 한다. 엄마라면 보여주고 싶은 세상이 분명 있으니까. 만약 김연아 선수가 엄마 따라 언니 따라 스케이트장에 가지 않았다면, 지금은 무얼 하고 있을까.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여자 컬링 선수들에게, 듣도 보도 못한 운동은 접어 두고 공부나 하라고 부모들이 닦달했다면 어땠을까. 누군가는 부모로 인해 꿈을 꾸고, 어떤 이는 그로 인해 꿈의 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내 걸음은 별 수 없이 갈지(之)자다. 반듯해 보이는 길을 보여주고 연이가 순한 양처럼 따라오면 좋겠다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연이가 가는 대로 뒤에서 묵묵히 밀어주는 게 나을 것도 같다. 어떤 우연들이 어디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것도 모르니 엄마라면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 것이다. 그저 지켜보는 것이라도 그 조차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선택이다.

◇ 20세기형 인간이 21세기에 아이를 키울 때 조심해야 할 것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20세기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는 점이다. 그리고 연이가 걸어갈 21세기는 내가 지나왔던 모습과는 여러모로 다를 것이다. 고등학교 때, 나에게도 ‘어떤 우연’이 찾아온 적이 있다. 학교에서 '도전!골든벨' 촬영을 위해 100명의 학생들을 뽑았고, 고3에 할당된 20명 안에 내가 들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때라 녹화하기 전만 해도 그 시간에 문제집이라도 하나 더 푸는 게 맞는 건지, 허투루 시간을 쓰다가 갈 수 있는 대학이 달라지는 건 아닌지 걱정을 했지만 방송에 나온다고 살짝 들뜨기도 했던 10대 끝자락의 어느 날. 8시간이 넘는 녹화가 끝날 때쯤 나는 얼떨결에 최후의 1인이 돼 있었다. 학교에선 유명인사가 됐고, 집에선 더 큰 자랑거리가 됐다. 내 인생에 ‘참 잘 했어요’ 도장을 받은 것 같은 그 일은 지금까지 소소한 얘깃거리가 되곤 한다. 그러나 그때 내가 공부했던 것들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잘 외우는 게 진짜 공부였는지 이제와 돌아보면 아쉬울 때도 있다. 무엇보다 내가 했던 암기식 공부는 적어도 20세기에는 통했을지 몰라도 앞으로 연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구글의 대표 이사 에릭 슈미트(Eric Schmidt)는 현대인들은 이틀마다 문명의 초기부터 2003년까지 인류가 생산한 것만큼의 정보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얘기했다. 또다른 비즈니스 리더들은 2년마다 지식의 양이 두 배씩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정보가 넘쳐나는 빅데이터 시대, 로봇과 함께 살아가게 될 연이. 가까운 미래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걱정인 것은, 연이를 ‘키운답시고’ 내가 배웠던 철지난 방식으로 연이를 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그냥 ‘자라게’ 두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암기대신 '6C'

오랜만에 서점에 들러 책 구경을 하다가 ‘4차 산업혁명 시대 미래형 인재를 만드는’이라는 문구에 혹해 책 한 권을 샀다. 육아를 하면서 이게 맞는 건지, 잘 하고 있는 건지 마음이 무거울 때가 많은데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에서는 이상하게도 두려움보다는 흥미진진함을 느끼게 된다. 역사의 산증인으로 사는 느낌이랄까. 어쨌든 그렇게 집어든, 심지어 제목도 ‘최고의 교육’인 이 책에서는 “현재와 미래의 포춘 500대 기업들이 제공하는 멋진 직업들은 결국 암기만으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깊이 사고하는 힘’을 가진 사람들의 차지가 될 것”이라고 일갈한다.

“웬일인지 우리 문화는 학습내용만이 유일하게 가치 있는 능력인 것처럼 속임을 당해왔다. 학부모, 학교 그리고 교육산업은 학습내용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이 평가해왔다. 이제는 어떻게 아이들에게 보다 깊이 사고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방식으로 교육할 수 있을지 자문해봐야 할 때다. 우리는 학습내용의 정의를 넓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답을 어떻게 찾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정보와 자원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를 포함시켜야 한다.” (p. 166)

미국의 발달심리학자 골린코프와 허시-파섹은 이 책에서 학습내용을 배우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종합적인 사고력을 키워야 한다고 얘기한다. 완벽한 정답은 아니겠지만 두 사람이 제시하는 ‘6C’는 한번쯤 곱씹어볼 만하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아이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마법 같은 주문이다.

협력(Collabration)

의사소통(Communication)

콘텐츠(Content)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창의적 혁신(Creative Innovation)

자신감(Confidence)

잠시, 이 책을 닻 삼아 방향을 잡아본다. 내가 해주고 싶은 것, 또 해줄 수 있는 게 무얼까. 우리 연이가 나를 통해 적어도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모범생으로, 정해진 정답을 찾으며 살아온 엄마는 이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연이에게 알려주고 싶다.

◇ ‘왜’라는 질문을 반갑게 맞이하자

다행스럽게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비판적 사고를 키우는 첫 번째 단추는 ‘존중’이다. 자신의 의견이 소중하게 다뤄진다고 느끼면, 아이들은 편하게 질문하고 아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한다. 21세기형 인재로 키우기 위해 나는 연이의 관점을 이해하고, 연이의 눈높이를 맞추는 엄마가 돼야 한다. 책을 붙잡고 있을 때는 분명 비법을 알아낸 것 같았는데 책장을 탁 덮고 나니, ‘그래서 뭘 해야 하는 거지, 겨우 유치원생한테?’라는 질문이 덮쳐온다. ‘쉬운 게 없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밀린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불현듯 무릎을 탁 치고 싶어진다. 연이의 질문을 귀찮아하지 말자. 말대답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연이의 ‘왜’를 반갑게 맞이해주자! 안 그래도 연이와 나는 ‘왜’의 무한궤도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동안 사방팔방 튀어나오는 질문을 귀찮아했던 나를 슬며시 돌아보게 된다. 마음 한 번 바꿔 먹었을 뿐인데 유치원에서 돌아올 연이와 연이의 다채로운 질문이 기다려진다. 엄마의 욕심대로 무용수니, 작곡가니 먼 미래를 헤매는 대신 이 순간을 또박또박 걸어가 보기로 한다. 내가 앞서거나 연이가 앞서는 게 아니라 같은 속도로, 천천히, 지금을 말이다.

*칼럼니스트 신은률은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일반대학원에서 정치학을 배웠다. 일 년에 절반은 독박육아를 해야 하는, 드라마PD의 아내로 살고 있다. '아이들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믿으며 7살, 5살 남매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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