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처음으로 킨더가든에 입학시키고 교문으로 들어서는 아이를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몽글몽글했던가. 미국에서도 흔해져버린 선행학습도 그리 시켜본 적이 없고, 한국에서 꽤 오랜 시간을 지내다 다시 돌아온 탓에 아직은 영어도 서툴 것을 알기에 뒤늦은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너무나 씩씩하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웃으며 들어가는 아이를 보면서 괜스레 내 가슴이 쿵쾅거렸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새 학년이 시작되는 8월이 될 때까지 만 5세가 된 아이들은 미국의 유치원인 킨더가든에 다닐 수 있다. 몬테소리 등을 비롯한 사립 킨더가든도 존재하고 홈스쿨링을 진행하는 부모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부모들은 미국 공립초등학교에 포함돼 있는 킨더가든에 아이들을 진학시킨다. 이 때부터 아이들의 미국 초등학교 생활이 시작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부모들은 처음으로 학부형이 되는 셈이다.
큰 아이의 학교의 경우, 매일 가지고 다니는 파란 폴더 안에는 학교 행사 안내문이나 아이가 학교에서 했던 활동들, 그리고 가끔씩 숙제가 들어있었다. 숙제는 주로 집에서 다양한 재료로 그림을 그려본다든가 학교에서 했던 만들기 활동을 집에서 부모님과 새롭게 해본다든가 달의 모양을 관찰해 온다든가 하는 것들이었다.
학교 행사도 자주 있었는데 할로윈, 크리스마스, 밸런타인데이 등에 학부모들이 간단한 먹을 것이나 행사에 필요한 접시, 냅킨 등을 미리 나눠서 준비하고 교실에서 간단한 파티를 하는 것이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친구들과 같이 음식을 나눠먹고 이야기하는 것을 지켜보고 선생님과 다른 학부모들과 간단히 이야기도 나눈다. 이 외에도 몇몇의 행사들이 있는데 파자마 파티, 책 읽기 행사, 다문화 행사 등과 같은 것들이다.
이 과정 중에는 한국의 학부모회와 같은 PTO가 적극적으로 행사를 지원하고 PTO 소속이 아니더라도 선생님의 전체 공지와 요청으로 학부모들의 자원봉사가 원활히 이뤄지는 편이다. 큰 아이의 학교에서는 평창 올림픽 시기에 학교에서 올림픽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나 역시 담임 선생님의 요청 이메일을 받았다. 혹시 한국과 평창 올림픽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짧은 수업을 해줄 수 있겠냐는 요청이었다. 사실 평창 올림픽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았지만 전날 열심히 자료를 찾아보고는 학교에서 큰 아이 반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이 기억난다. “왜 스키를 타면 아래로 빨리 내려와요?”라는 한 친구의 참신하고 과학적인(?) 질문에 순간 당황하기는 했었지만 말이다.
이 외에도 책 읽기 행사에 초대돼서 반 아이들에게 연기 혼을 불사르며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다문화행사에서는 전교생 중 홀로 한복을 입고 입장하는 아이를 보면서 혼자 괜스레 뭉클해했던 기억도 있다. 이 모든게 워킹맘이 아니었고 학교 가까이 살아서 더 가능한 일이었지만, 보통은 조용히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아이 학교 행사 참여를 가능하게 한 것은 부담없이 끊임없이 소통하고자 한 담임 선생님의 공이 컸다.
처음부터 아이의 학교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학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미국의 초등학교 시스템에 대해서 무지한 편이었고,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도 많았다. 지각을 하면 왜 학교 사무실을 통과하고 기록을 하고 입장해야만 하는지, 왜 한달에 한번씩 체육관에서 조회라기보다는 작은 파티같은 전교생 모임을 하는지 등등.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모든 것들을 알게 해주고 이해하게 해준 것은 선생님들의 관심과 참여유도였다.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줄 때 교문 앞 정차를 지도하고 도와주시는 아주머니는 나중에 알고 보니 교장선생님이셨다. 모든 아이들이 교문에 들어갈 때마다 활짝 웃으며 이름을 불러주고 하이파이브를 해주시며 서 계시는 할머니는 알고보니 음악선생님이셨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해하던 아이도 학교 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선생님들을 참 좋아했다. 그렇다고 모든 일에 자유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이 반 남자아이 하나가 장난치듯 같은 반 아이를 때리자 그 아이도 그 남자아이를 때렸고 결국 그 남자아이가 울음을 터뜨린 일이 있었다. 아이들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일이었겠지만 결국 두 아이는 모두 교장실에 불려갔다. 교장 선생님께 폭력은 나쁜 일이고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한참 주의를 받았고, 학부모들에게 연락이 갔다고 한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이 미국의 학교였기에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다행이 큰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넉넉한 예산이 배정된 학군에 소속된 학교였고, 전교생 규모도 400명 남짓의 자그마한 학교였다. 도시 외곽의 조용하고 작은 학교였기에 가능했던 배려이고 또 따뜻함이었으리라. 미국 안에서도 얼마나 다양한 형태와 성향의 학교가 있을까.
하지만 공부 스트레스 없이 노는 듯 활동하지만 커리큘럼을 철저히 따르고, 격식없는 듯 하지만 규칙과 규율은 철저히 가르치는 기본 방침은 미국 어디서나 지향하는 바라고 하니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다. 적어도 공부 스트레스 없이 매일 좋아하는 그림그리기와 만들기를 실컷하고 온 우리 아이에게는 미국 킨더가든이 재미있는 장소인 것 같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 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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