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바보 아빠의 지혜로운 칭찬기술
딸바보 아빠의 지혜로운 칭찬기술
  • 칼럼니스트 최명희
  • 승인 2018.04.19 14: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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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안 되는 아이] 자아를 찾아가는 세 살 짜리 딸에게 필요한 아버지의 첫 번째 역할

Q. 주변에서 딸이 있다고 하면 모두들 부러워합니다. 딸바보라는 별명을 듣는 것은 자랑거리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딸바보가 돼야하는 것이 요즘 대세아빠입니다. 그러나 36개월짜리 딸과의 관계에서 딸바보의 경계가 애매합니다. 무엇이든 다 들어주어야하는 것일까요? 그래도 되는 것일까요?

아버지의 진심어린 공감은 딸의 삶에 에너지가 됩니다. ⓒ베이비뉴스
아버지의 진심어린 공감은 딸의 삶에 에너지가 됩니다. ⓒ베이비뉴스

◇ 딸바보 아빠 대세론

최근 신조어 중에 ‘딸바보’라는 단어가 있다. 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판단력이 흐려져 바보가 되는 아버지를 일컫는 말이다. 아빠육아 예능이 범람하면서 딸과 감성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한 부드러운 아버지의 모습이 대세다. 격투기 선수 추성훈아빠가 세 살짜리 사랑이 앞에서 눈웃음과 혀 짧은 애교로 완전히 무장해제되는 장면은 아빠들의 정서를 흔들어놓았다. 딸이 없는 젊은 남성에게도 ‘딸 바보 미소를 짓고 있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요즘은 아빠들은 딸에 대한 사랑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가정에 경제적 재원을 공급하고 규율을 만듦으로써 가정과 사회를 연결시키는 도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신데렐라의 아버지도 새어머니에게 맡겨놓고 전혀 딸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혼자서 잘도 자라 왕비까지 됐다. 우리나라 콩쥐네 아버지도 그렇고. 옛날 아버지들이 딸은 출가외인이라 치부했고 딸의 인생에 기여한 바는 그저 그랬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들은 가족과 감정을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주 최근에 아버지는 아이의 모든 요구를 다 들어주어야하고 친구처럼 놀아야하고 아이 때문에 눈물도 흘릴 수 있어야 박수를 받는다. 딸의 감성에 부드럽게 반응해줄 정도는 돼야 스탠딩 박수까지 받을 수 있다. 30년 이상 이미 딱딱하게 굳어진 우리나라 남자들이 딸 앞에서는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눈웃음을 짓고 눈물을 떨구기도 한다. 아버지들의 숨겨진 감성을 딸들이 불러내 준다.

◇ 딸과 아버지의 감성

본래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보다 거울뉴런(mirror neuron)이라는 뇌 속의 공감능력이 더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여자아이들은 자기 감정표현도 풍부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도 더 잘 반응한다. 아버지역할에 관한 많은 연구에서도 아버지가 아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딸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하였다. 정신분석 심리학자인 프로이드는 3~5세의 남근기를 거치면서 딸이 어머니에 대해 적대감을 갖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이겨내고 성적 정체감을 찾아가는 과정에 아버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다. 1970년대 몇몇 연구(Hennig, Bernett & Baruch)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은 대체적으로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친밀하고 지지적이고 애정적인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딸은 아버지로부터 어머니보다는 좀 더 구조적이고 논리적인 공감과 지지를 받음으로써 어머니로부터 받는 정서적 지지와는 달리 목적적인 성취감으로 전환할 수 있다.

◇ 딸바보 아빠의 경계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보면 딸바보 아빠가 딸의 삶에 지나치게 주도적으로 개입하면서 오히려 딸의 주체성을 떨어뜨리고 미성숙한 존재로 남게 한다고 볼 수도 있다. 아버지와 딸 사이를 지배적인 구조로 만들고 딸을 아버지에게 의존하게 하려는 남성중심적 사고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만약 딸바보 아빠가 세 살짜리 딸이 남자아이와 손잡고 소풍가는 것만 봐도 질투심을 느낀다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혜로운 딸바보 아빠는 딸의 삶을 좀 더 주도적으로 이끌어주는데 기여할 수 있다. 이제 자아를 찾아 꿈틀대는 세 살의 딸에게 아빠는 중요한 존재이다. 성적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엄마를 사이에 둔 경쟁자처럼 ‘아빠 싫어’를 아침마다 외칠 수도 있는데 아빠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는지가 딸의 자존감에 주춧돌을 얹어주는 역할을 한다. 딸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하되 딸에게 가르치고 싶은 인생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자주 되물어야 한다. 진짜 딸만 아는 바보가 돼 무엇이든 우쭈쭈하고 키우면 딸도 바보가 될 수 있다.

◇ 딸의 인생에 기여하는 아버지

나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아버지는 따뜻한 분이셨다. 때로 지나칠 정도로 감성적이셨다. 요즘 아빠들처럼 함께 놀아주신 기억은 없지만 아버지의 칭찬은 늘 내 삶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살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듯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아버지께 털어놓으면 나보다 앞서서 마음 아파하시곤 했다. 내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나에게 아쉬운 일인 것처럼 불평하자 아버지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너에게 가장 적합한 일이다. 너와 같이 사람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 선생님을 만들어 내는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 그게 너에게 딱 맞는 일이다. 학생 한명한명 소중히 아끼는 참스승이 되어라”라고 하셨다.

자녀가 현재 하고 있는 일에서 스스로 가치를 발견하게 하는 부모의 칭찬이 가장 바람직한 칭찬이다. 내가 일생동안 공부하고 있는 아동중심철학을 아버지는 이미 실천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힘겹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나는 네가 참 자랑스럽다”라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이 짧은 한 마디는 내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억만금짜리 유산이 됐다. 아버지의 이 목소리를 잊지 않으려고 그 순간 그대로 자주 기억에서 꺼내 들여다보곤 한다.

◇ 지혜로운 공감과 칭찬의 기술

지혜로운 칭찬은 아빠마음에 드는 행동을 했을 때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행동에 대해서 그 의미를 짚어주는 칭찬이다. 네가 한 행동이 어떤 것이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도움이 됐는지 알게 해줘야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것은 가능하다. ‘아이스크림 잘 먹었네 우리 딸 최고’라고도 해주어야겠지만, ‘아이스크림 막대를 쓰레기통에 버리니까 우리집이 깨끗해졌네’라는 말도 잊지 말아야한다. 아이가 무심코 한 소소한 행동이 다른 사람의 삶을 이롭게 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아빠의 칭찬이 딸의 삶을 바꾼다. 아버지의 칭찬과 격려를 받은 딸이 자신의 가치를 알아가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진심어린 공감은 딸의 삶에 에너지가 된다.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공감은 딸의 감정을 읽어주고 그대로 느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거기서 한발 더 나가서 아빠의 철학을 얹어주면서 아이가 자기감정을 긍정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면 금상첨화이다.

“아까는 화가 많이 났었구나. 화가 나서 장난감을 던졌던 거니? 이리와 안아줄게. 이제 좀 화가 풀렸니? 그런데 장난감을 던진다고 해서 기분이 좋아지지 않아. 그런 행동은 더 화가 나게 한단다. 다음에는 아빠에게 왜 화가 났는지 말해줄 수 있어?”

이 화법이 좀 느끼하다고 생각하는 아빠가 있다면 세 번만 소리 내서 읽어서 외우거나 가수 타블로가 딸 하루에게 하는 대화 동영상을 찾아보면서 심화학습해도 괜찮다. 요즘 아빠들의 세상살이가 여간 팍팍하지가 않다. 지갑 속에 넣어둔 딸 사진으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아빠들도 있다. 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아버지가 딸의 가슴 속에 선명한 한 컷을 영원히 저장해 줄 수 있다. 딸이 있는 아버지에게는 누군가에게 영원히 남아있을 수 있는 인생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칼럼니스트 최명희는 이화여자대학교 유아교육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30여 년간 유아교육 현장과 보육정책 분야의 다양한 영역에서 일했다. 현재는 신구대학교 아동보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생애초기의 삶을 살아가는 소중한 생명체인 영유아와 그들에게 세상을 만나게 해주는 부모, 교사의 역할에 대해 연구하고 나누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많이 읽히는 저서로 「아이와 통하고 싶다」, 「교사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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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ka**** 2018-04-20 09:16:39
더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딸'에 대한 칭찬을 어떻게 해야하는가도 중요하지만 '딸'이기 때문에 다르게 대하는 것들을 해소해가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딸바보는 아들바보와 비교할때 용어의 뉘앙스와 맥락이 다릅니다. 가부장제에서 딸과 아들의 역할을 고려한다면 '딸'을 강조하는 용어부터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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