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잘 걷는구나~"
사실 18km쯤에서 조금 지친 상태인 둘째아이는 길 초입에서 만난 아저씨를 다시 만나 칭찬을 받고는 금세 쌩쌩해졌다.
첫날 19km를 걸은 아이는 다음날 8km를 더 걷고서야 엄마와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 혼자였다면 엄두도 못낼 거리를 아이가 다리 아프다며 징징거리면 핑계 김에 올레길 사이사이 예쁜 카페에서 같이 아이스크림도 먹고, 쉬엄쉬엄 걸었다. 나도, 아이도 한 뼘 성장해 돌아온 제주.
시작은 나를 위한 여행이었다. 일하는 엄마랍시고 늘 시간에 쫓겨 아이와 '몰아서 놀아주기'를 즐기는 나는 종종 이런 일을 벌인다. 아이와 단 둘이 떠나기.
나에게 위로와 쉼이 필요했던 어느 날, 혼자 떠나려다 "우림아, 엄마랑 제주도 갈까?"하니, 엄마 말엔 아직 무조건 오케이인 둘째는 "그래!"
이것도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언감생심 쉽지 않은 수락이다.
밤늦게 도착한 게스트하우스. 낯선 길, 그것도 저녁이라 버스타고 내려서도 찾느라 많이 헤맸는데, 아이는 게스트 하우스의 2층 침대를 보는 순간 "와아~" 탄성을 지른다.
아마 남편과 동행했다면 온갖 짜증에 한번쯤 싸웠을 법도 한데 아이와의 동행 길은 나만 조심하면 되니 마음이 편하다.
하루 종일 올레길 19코스를 걸었다. 페이스북, 카카오톡, 텔레그램, 다 꺼놓고 아이의 노랫소리만 들으며 걸으니 참 좋다. 너 키우면서 힘들었단 말은 하지 못하겠구나. 이렇게 엄마가 지칠 때 가장 좋은 벗이 되어주는 아이.
다음날 교래자연휴양림을 걸었다. 전날의 19Km의 효과일까, 8Km쯤이야. 아이가 덥석덥석 앞장 서 걷는다.
그렇게 많이 걷고, 많이 먹고, 많이 쉬다가 우리는 절친이 되어 돌아왔다.
또 어느 날 나는, 큰 아이나, 둘째 아이 손을 잡고 훌쩍 떠나겠지. 딸을 낳기를 참 잘했다.
*칼럼니스트 엄미야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두 딸의 엄마다.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노동자 남편의 아내이다. “아이는 국가가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교육 추종자이며, 꿈이 있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은 따뜻한 낭만주의자이기도 하다. 현재 경기지방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 민주노총 성평등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금속노조 경기지부 부지부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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