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신이 아니다
엄마는 신이 아니다
  • 칼럼니스트 조성실
  • 승인 2018.04.2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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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이중생활] 우리 이제, 사회적 육아를 말해야 할 때
©강미정 일러스트레이터(정치하는엄마들)
©강미정 일러스트레이터(정치하는엄마들)

◇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드셨다. 그리고...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고들 한다. 어머니의 중요성과 위대함을 강조하는 이 위대인 격언은 주로 ‘어머니의 숭고한 희생’과 같은 단어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많은 것들을 왜곡시킨다. 마치, 인간 개인에 대한 신적 책임이 어머니 한 사람 손에 달려 있는 것처럼.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자신을 대신해 만든 존재가 과연 어머니 하나뿐일까? 아버지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지역 사회는? 정부는? 이들 모두에겐 책임이 없는 걸까? 이들에게는 보조적이고 부차적인 책임만 존재하는 것일까? 고작해야 불완전한 인간일 뿐인 엄마 한 사람에게 또 다른 인간, 그것도 전적인 의존과 돌봄을 필요로 하는 아이에 대한 책임이 오롯이 전가될 수 있기나 할까?

정확히 얘기하면 이렇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아버지도 만드셨다. 가족을 만드셨다. 그리고 이들 모두가 사회와 국가 안에서 살게 하셨다.’

우리는 너무 쉽게 뒤이은 명제들을 간과한다. 어머니 이외의 신적 대리자가 누구인지, 그들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묻지 않는다. 어머니에 대한 아름다운 찬양과 추앙은 이렇게 착시와 오독을 불러일으킨다. 신을 대신할 연대 책임자들의 존재를 지우고, 돌봄과 살림에 대한 책임을 ‘엄마’ 개인에게 떠맡긴다. 불평등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 핵심은, '사회적 환경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얼마 전 있었던 아동인권 기반 보육 정책 관련 토론회에서의 일이다. 누군가 부모 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마이크를 이어 받은 내가 이어 말했다.

“중요한 건, ‘아동인권 실현이 가능한 사회적 환경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다. 부모들 역시 이전만큼 아동인권에 대해 무지한 세대가 아니다. 특히 많은 엄마들이 아동인권에 대해 고민하며 괴로워한다. 내가 나쁜 엄마인가 수도 없이 되묻고 자기검열 한다. 그러나 현실에선 아이들과 조금 더 눈 맞추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줄 시간이 없다. 그게 핵심이다. 부모들의 삶이 너무 팍팍하다. 부모와 보육교사들의 노동권 자체가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동인권을 지켜줄 힘이 없는 거다. 다 쓴 치약을 더 짜낸다고 능사가 아니다. 외부적 지원을 ‘어떻게’ 해줄 것인가, 이들에게 줄 시간과 재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보육 현장에서의 아동인권 실현은, 교사 한 사람이 돌보는 아이의 수를 줄일 때에야 시작된다. 제아무리 좋은 대책이 나온대도 교사 1인당 아동 수가 줄지 않는 상태라면 무용지물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부모들의 아동인권 인식이 높아지길 원한다면? 아동인권에 관한 실효성 있는 부모교육을 의무화(또는 정례화) 하고, 출석 시 공가 처리라도 해줘야 할 것 아닌가. 가정에서 아동인권이 실현되길 바라는 사회라면, 양육자들이 아이들과 조금 더 질 높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시간과 재원을 지원해줘야 한다. 좋은 부모가 되라고 말하기 전에,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는 현실에 공감하고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실질적 도움을 줘야 하는 것 아닐까?

◇ 엄마도 아빠도 신이 아니다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엄마가 그 아이의 신이 되는 걸 자주 목격한다. 발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성장통을 맞이할 때조차 수많은 엄마들이 자신의 무능과 미숙함을 탓하고 괴로워한다. 아이에게 조금의 특이사항이라도 생길 때면 이내 곧 엄마에게 책임의 화살이 돌아온다. 엄마가 일을 해서 아이가 잘 크지 못 하는 거라고 비난받고, 엄마가 집에서 놀면서 어린이집을 보낸다고 혐오의 대상이 된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건 이러나 저러나 결국 엄마 탓이 되고 만다. 엄마들 역시, 엄마인 내가 부족해서 아이가 잘 크지 못하는 건 아닌지, 아이가 더 힘든 건 아닌지 자책하고 수시로 자기를 검열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건, 우리 사회를 견고히 에워싸고 있는 양육신화, 그 중에서도 엄마들에 대한 모성 강요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대형 서점에만 가봐도 금방 확인된다. 서점 매대를 가득 채운 엄마를 위한 지침서들을 보라. 서로 다른 수많은 책들이 결국엔 같은 결론을 이야기한다. ‘이러이러한 엄마가 돼야 한다’고. 엄마들은 무분별한 정보와 가르침의 홍수 속에 서 있다. 도대체 누구의 말을, 어떤 책을 믿어야 할지 종잡기 어려워 더욱 불안하다. 미디어의 가르침대로라면, 엄마는 웬만한 성인군자여야만 한다. 그래야 아이가 문제 없이 자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문제 없이 자라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아이는 엄마가 성인군자여도 저마다의 문제로 속을 썩이며 자란다. 물론 양육자의 충분한 사랑과 적절한 돌봄이 중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건 엄마에게만 주어진 책임이 아니다. 아빠도, 지역 사회도, 정부도 함께 나눠져야만 하는 몫이다. ‘사회적 육아’에 대한 고민이 없는 양육신화들은, 결국 모든 엄마를 신으로 설정해버린다. 그리고 온갖 책임을 떠맡긴다. 그러나, 엄마도 아빠도 신이 아니다.

◇ 이제 우리, 사회적 육아를 말해야 할 때

우리 사회가 고민할 것은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을 결혼시키고 아이 낳게 할 것인지'가 아니라, ‘육아의 사회화'와 '성평등' 그 자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에 서 있는 셈이다. 정치하는 엄마가, 성평등개헌, 보육의 공공성 확보, 일-가정(생활) 양립 현실화를 목청껏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자고로, 아이는 엄마의 품뿐 아니라 아빠의 품과 사회의 너른 품 속에서 더불어 자라야 하는 법이다. 이를 위한 페미니스트 정부의 책임과 역할이 크다.

*칼럼니스트 조성실은, ‘육아(育兒)가 육아(育我)’인 사회를 꿈꾸는 전업활동가다.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이 엄마가 된 일이라고 믿는 필자는, 아이 키우는 일의 중요성과 기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한다. 그렇기에 엄마 개인을 소진해야만 아이를 길러낼 수 있는 대한민국의 실상을 바꿔야 한다고 믿는다. 때론 엄마라서 벅차고, 때론 엄마라서 보람찬 양가 감정들. 이 모든 경험과 문제의식을 나누고 싶어 글을 쓴다.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 하나마을 공동육아 교사 및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여섯 살 세 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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